제목 커피나무에서 씨앗을 빼면<br>#097. 식목일에 살펴보는 ‘씨앗이 아닌 것들’
글쓴이 김민수 Derek
발행일 2023/04/05
얼마 전에 모모랑 이야기하다가 4월 첫 레터가 식목일에 발행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바로 오늘이죠. 식목일에 가볍게 할 수 있는 커피 이야기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보는데 자연스럽게 ‘커피나무’가 떠오르더라고요. 작년 11월에 로사와 함께 브라질에서 보고 온 다양한 품종의 커피나무들이 생각났습니다.

파세이우 농장 경영인과 대화중인 로사 그리고 다양한 품종의 커피나무들. ©️김민수Derek
커피나무를 실제로 보신 적 있으세요? 제가 커피나무를 처음 보고 가장 놀랐던 사실은, 나무 한 그루에서 생산되는 생두 양이 고작해야 1-2kg 정도라는 것이었습니다. 커피가 ‘씨앗’에서 추출되는 음료임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1년 동안 커피나무 한 그루가 남기는 것이 그뿐인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허전했습니다. 1kg 원두 봉투 크기를 생각해보면 정말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사실 커피나무에서 나는 것들 중에 씨앗만 활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커피 농가에 씨앗이 가장 중요한 상품임은 사실이지만, 커피 산지에서는 나무에서 나오는 것들을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거든요. 이번 식목일 기념 레터에서는 커피나무에서 나는 것 중 씨앗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 가볍게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늘 주인공으로 살아 온 씨앗이 이번 레터로 서운해하지는 않겠죠?
먼저 커피 씨앗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과육과 껍질, 흔히 ‘카스카라(cascara)’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보겠습니다.
1. 카스카라
스페인어로 ‘껍질’이란 뜻을 가진 카스카라는, 커피 열매에서 씨앗을 제외한 부분인 과육과 껍질을 모두 일컫는 말입니다. 대부분 커피 생산과정에서 버려지거나 비료로 사용되지만, 예멘에서는 음료 '키쉬르(qishr)’의 재료로 사용합니다. 잘 말린 카스카라를 물에 우린 후 생강이나 계피 같은 향신료를 첨가해 마시는 따뜻한 음료인데요. 카스카라는 단독으로 우려 마시기도 하지만, 키쉬르처럼 다른 음료의 재료로 활용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카스카라. ©️Al Mocha
에티오피아에서도 카스카라 티를 마십니다. 에티오피아의 대표적인 커피 산지인 오로미아에는 커피의 탄생에 관한 전설이 있는데요. 신 와카(waqa)가 아끼던 부하를 어떤 연유로 사형시키고 나서 흘린 눈물이 최초의 커피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신의 눈물에서 기원하였기에 커피는 지금도 오로미아 사람들에게 신성한 작물로 여겨진다고 하는데요.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카스카라 티를 마시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아닐지 상상하게 되네요.

오로미아 커피 의식. ©️ADVOCACY FOR OROMIA
카스카라는 산지에서만 즐길 수 있는지 물으신다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스타벅스나 블루보틀에서 카스카라 시럽을 이용한 음료를 출시한 적이 있고, 카스카라를 파는 커피 브랜드들도 드물지만 있습니다. 커피에 비해서 접근성이 매우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요.
이렇게 카스카라가 음료의 재료로 직접 활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에는 커피 발효 과정에서 카스카라를 미생물의 영양분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작년에 출시한 옥션 시리즈 커피 중 하나가 나인티 플러스의 쿨레(Kulé)라는 커피였는데요. 씨앗과 과육 모두를 사용하는 에티오피아인들의 커피에 대한 태도를 기리며, 카스카라를 발효에 사용한 커피였습니다.
다가오는 5월에 출시하는 에티오피아 커피 역시 카스카라를 사용해 발효한 커피인데요. 우리가 좋아하는 에티오피아 워시드 커피의 프로파일에 가깝고, 시트러스 향미가 뚜렷한 것이 장점이라 3월에 출시했던 '개화' 블렌드의 재료로도 쓰였습니다. 에티오피아 워시드 커피를 좋아하신다면 5월에 한번 시도해보셔도 좋겠습니다.
2. 잎
일반적으로 차는 잎을 우린 것이죠.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서는 커피나무의 잎을 덖어서 차로 내려 마시는데 이를 ‘카와 다운(kawa daun)’이라고 부릅니다. 나무 한 그루에 얼마나 많은 잎이 붙어 있는지 생각해보면, 나뭇잎도 활용하고자 했던 인도네시아 농부들의 마음이 이해되기도 합니다.

커피 잎. ©️PERFECT DAILY GRIND
에티오피아에서도 커피 잎차를 내려 마십니다. '쿠티(kuti)'라 불리는 음료인데요. 커피의 발상지답게 열매와 나뭇잎을 모두 활용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커피 잎차에서 커피 맛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으레 실망한다고 해요. 잎을 우리는 것이라 오히려 녹차와 향미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저도 아직 마셔보지 못했는데, 혹시 우리 독자분들 중에 인도네시아나 다른 곳에서 마셔본 경험이 있으시다면 알려주세요.
3. 꽃
커피는 인내심을 요하는 작물입니다. 올해 심는다고 내년에 바로 꽃을 피우고 수확할 수 있는 작물이 아니라서요. 나무를 심은 후,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까지 기본적으로 2-3년 이상을 기다려야 비로소 수확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 기다림에 대한 보상인지 모르겠지만, 커피 꽃의 향미는 재스민꽃처럼 진하고 향긋한데요. 몇 년 전에 콜롬비아에 다녀온 로스터 케이브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우연히 커피 꽃이 피는 시기에 농장을 방문했는데, 커피 꽃 향에 황홀했었다고 해요.

커피 꽃. ©️SPRUDGE
작년 11월에 브라질 갔을 때 카챰부(caxambu)라는 농장을 방문했었는데요. 커피 꽃잎을 우린 차를 대접받았습니다. 본격적인 커피 테이스팅을 알리는 웰커밍 티의 느낌이었지요. 커피 농장에서 마시는 커피 꽃차라니, 그보다 잘 맞는 맥락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브라질 컵 오브 엑설런스(COE) 심사위원이 내려주었던 커피 꽃차. ©️김민수Derek
농장 곳곳을 둘러보는데 꿀이 담긴 유리 단지가 보였습니다. 농장주 마리아에게 물어보니 커피 농장에서 생산한 꿀이라고 하더라고요. 사업적으로는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지만, 지역사회 일자리 마련을 위해 농장에서 진행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아직 먹어보지도 않았는데 그 꿀 참 달달하겠다 싶었습니다.
4. 나뭇가지
커피 농장에서는 나무의 건강을 위해 주기적으로 가지를 치고, 자른 가지들을 땔감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몇 년 전, 브라질에 이상한파가 닥쳐 상상할 수 없는 양의 나무들이 말라 죽는 일이 발생했었는데요. 그때는 그 나무들을 땔감으로 사용하는 것이 열매를 맺지 못한 나무를 활용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파로 말라죽은 나무를 자르는 농부. ©️Bloomberg
엉뚱한 생각이지만, 커피 나뭇가지를 태운다고 커피 향이 나진 않겠죠? 왜, 에티오피아 토착종 중에 데가(dega)라는 품종은 그 나무를 태우면 커피 로스팅할 때 나는 달콤한 향이 난다고 하잖아요. 혹시나 에티오피아에서 데가 나무를 태워보신 독자님이 계신다면 답변 부탁드립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커피나무가 은근히 여러 용도로 쓰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커피 일을 하기 전에는 잘 몰랐던 사실이에요. 생각해보면 다른 과일들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는 매한가지인 것 같습니다. 혹시 자몽 나무를 보신 적이 있으세요? 예전에 우연히 인터넷에서 검색해보고 자몽 열매가 맺히는 모습이 낯설고 기이해서 놀란 적이 있습니다. 바나나 나무의 모양은 또 어떻고요. 과일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나무인데, 정작 그 나무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커피나무의 여러 가지 쓰임에 대해 한번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리들이 산지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어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겠지요. 눈앞의 커피만 마실 때는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요. 저도 ‘사람’이기에 커피 이야기할 때도 자연스럽게 사람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이번 레터에서는 식목일을 맞아 ‘커피나무’ 그 자체에 관해 이야기해보았습니다.
혹시 오늘 소개한 것 중에 경험해보신 것이 있으신가요? 떠오르신 장면들을 다른 독자분들께도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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