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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미식’일까?
#077. 기호 식품을 넘어 미식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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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미식’일까?#077. 기호 식품을 넘어 미식으로 가는 길

FACT SHEET

제목 커피는 ‘미식’일까?<br>#077. 기호 식품을 넘어 미식으로 가는 길

글쓴이 김민수 Derek

발행일 2022/10/12

커피는 인류의 대표적인 기호 식품이지요. 세상에 먹고 마실 게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커피를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진지한 태도로 커피를 내리고 마시는 사람들을 보면 순전히 카페인의 힘만으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커피의 매력은 누가 뭐래도 커피 특유의 향미겠지요.


저는 종종 커피가 기호 식품을 넘어 ‘미식’으로도 불릴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명확한 답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쯤은 정리해보고 싶었던 주제랄까요. 최근 이 주제를 생각했던 것은 올해 옥션 시리즈의 테이스팅 코스를 준비하면서였어요. 코스로 만들고 보니 웬만한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의 런치 코스에 근접하는 가격이 나오더군요. 고객들이 비슷한 예산으로 즐길 수 있는 두 가지 선택지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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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옥션시리즈 테이스팅 코스. ©박은실Momo


‘커피는 미식일까’라는 거창한 질문을 가져오긴 했지만, 사실 오늘 레터는 ‘미식’을 소재로 한 커피 수다에 가깝습니다. 과연 이 수다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 저도 궁금하네요. 그럼 시작해보겠습니다.






전통적인 미식의 맥락


'좋은 음식’ 또는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라는 국어사전의 넓은 정의에도 불구하고, 저는 ‘미식’이란 단어를 들으면 왠지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떠오릅니다. 그것은 어쩌면 미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서구, 그중에서도 프랑스에서 태동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서울이나 뉴욕에서는 한식 파인 다이닝도 볼 수 있지만, 음식이 제공되는 형태는 프랑스 미식의 원형을 본뜬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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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질의 음식을 격식을 갖추어 제공하는 파인 다이닝. ©Unsplash


그래서인지 ‘커피는 미식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커피가 궁금하더라고요. 어떤 품질의 커피인지, 그걸 전달하는 방식은 어떠한지 말이에요. 파인 다이닝 경험이 별로 없는지라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보고,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기도 했는데요. 훌륭한 음식에 걸맞은 커피를 제공받은 경우를 찾지 못했습니다. 전 세계에 파인 다이닝 제국을 건설한 알랭 뒤카스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파인 다이닝 업계 내에서 커피가 코스의 중요한 요소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점을 언급하긴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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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뒤카스(왼쪽)와 헤드 로스터 베다 비라스와미. ©Pierre Monetta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현재 커피를 가장 높은 수준으로 다루는 사람들은 역시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의 바리스타들인 것 같습니다. 요리와 잘 어울리는 커피를 골라야겠지만, 현재의 스페셜티 커피가 파인 다이닝 코스의 요소로 쓰인다고 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적어도 지금 쓰이고 있는 평균적인 커피들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고요.


또 하나 고려해볼 만한 것은 파인 다이닝 코스의 요소로서가 아니라 ‘커피가 주인공이 되는 코스’입니다. 순수하게 커피로만 승부를 보는 경우도 있고, 과일이나 크림 같은 다른 재료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을 텐데 둘 다 나름의 매력이 있지요. 요즘 서울에서는 여러 종류의 커피 코스를 만나볼 수 있는데요. 기본적으로 파인 다이닝과 가격대가 다른 만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코스를 이루는 메뉴들의 완성도가 기존 미식의 맥락으로 봐도 훌륭한지 따져볼 수는 있겠지요. 저는 긴 역사의 파인 다이닝과 비교하여 스페셜티 커피의 역사가 매우 짧은 점을 고려하면, 아직 같은 맥락에서의 비교는 좀 어렵다고 보는 편이긴 합니다.


혹시 독자님은 인상 깊은 커피 코스를 경험해보신 적이 있나요?





보편적인 미식의 맥락


최근에 미식이 진화의 산물이라고 이야기하는 흥미로운 글을 읽었습니다. 탄 냄새를 잘 맡아 산불을 피할 수 있었던 사람들, 쓴맛을 잘 느껴 독초를 피하고 신맛에 예민하여 부패한 음식을 뱉어낼 수 있었던 사람들이 진화과정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였어요. 과거에는 주로 부정적인 것들을 판별하는 데 사용되었던 감각이 요즘에는 ‘좋은 음식’을 추구하는 것, 즉 ‘미식’으로 나타났다는 것이지요.


이 글에서 제가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은, 커피 맛 판별에 자신감이 없는 수강생들에게 필자가 건넨 말이었어요. “여러분은 진화의 승리자입니다. 조상께서 맛을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을 유전자에 담아주셨지요. 커피에서 특정한 맛을 꼭 짚어내려 하지 말고, 음식을 먹었던 경험 중에서 느낌이 같은 맛이 감지되는지를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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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핑 중인 바리스타팀. ©김혜연Bell


‘진화의 승리자’라니. 많은 사람과 커핑을 해왔지만, 저는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격려의 말은 들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먹어본 음식 중에서 비슷한 걸 찾아보라는 말은 실용적인 조언이기도 하고요. 어떻게 보면 미식의 엘리트주의를 타파하는 개념이라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보통의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곧 미식’이라고 발전시킬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이 맥락에서 누구나 좋다고 생각할 만한 커피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커피의 좋음’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바리스타의 역할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커피들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요. 상당수의 커피가 훌륭한 바리스타와 대화하며 마신 것들이었습니다. 대화의 내용은 이랬어요. 바리스타가 어떤 커피인지 소개해주고, 어떠한 이유로 이렇게 추출했는지 알려주고, 어떻게 마시면 좋은지를 가이드해 주었지요. 커피가 좋았던 것은 물론이고, 실제로 그 말들이 딱딱 들어맞았을 때 느꼈던 감흥은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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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과 커피 신도림팀 바리스타 아도이. ©박은실Momo


그래서인지 저는 ‘미식으로서의 커피’를 상상할 때 ‘커피 코스’라는 정형화된 모습보다는 바리스타의 따뜻한 환대와 전문적인 응대로 구현되는 어떤 커피 경험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일상적인 커피 바에서 일어나는 것일 수도 있고, 커피에 집중할 수 있는 어떤 공간에서 일어날 수도 있겠지요. 물론 정교하게 기획된 커피 코스라면 그 경험의 진폭은 더욱 커질 테고요.


사실 본질적으로는 ‘모든 과정에서의 훌륭함’을 목표로 하는 파인 다이닝과 닿아있는 이야기입니다. ‘먹는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기에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다만 커피라는 음료의 개성이 워낙 강하니, 음식으로 구성된 코스와는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데요. 어두운 색깔을 띠는, 카페인을 함유하고 기본적으로 쓴맛이 나는 음료. 그런데 또 그 안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향미를 보여주는 커피라는 음료가 기호 식품을 넘어 미식으로 구현된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오늘 레터에서는 전통적인 맥락과 보편적인 맥락에서 ‘미식으로서의 커피’를 살펴보았는데요. 전자는 프리미엄 영역, 후자는 대중적인 영역에 가깝더라고요. ‘미식’이라는 주제로 글을 시작할 때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제 생각이 ‘스페셜티 커피의 대중화’라는 주제로 이르더군요. 그동안 스페셜티 커피를 대중화하는 방법은 ‘사람들에게 쉽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왔는데, 이번 레터를 쓰다 보니 커피를 미식으로 발전시키는 것도 스페셜티 대중화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각해보면 커피의 매력을 알리는 방법이 하나만 있지는 않겠지요. 그 일을 누가 할 것이냐 생각해보면, 결국 커피를 좋아하고 그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하는 우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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