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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 6인의 인생 커피
#075. 기억에 남은 최고의 커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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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 6인의 인생 커피#075. 기억에 남은 최고의 커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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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리스타 6인의 인생 커피<br>#075. 기억에 남은 최고의 커피는?

글쓴이 박은실 Momo

발행일 2022/09/28

최근에 드신 가장 맛있었던 커피, 기억하시나요? 저는 지난달 신촌의 카페 미네르바에서 마신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G1 워시드 커피가 기억에 남네요. 맛도 맛이었지만 그날의 온도, 습도, 조명…(!) 같은 맥락이 최고의 한 잔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사장님의 설명이나 일행과의 대화도 포함해서 말이에요. 독자님이 최고의 커피를 만난 순간 역시 훌륭한 커피와 공간 그리고 사람을 담고 있을 듯합니다.


빈브라더스 바리스타 6인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져 보았어요.



“기억에 진하게 남아있는 최고의 커피는 무엇인가요?”



오늘은 개성 넘치는 6가지 글을 통해 커피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1. 로마 공항의 카푸치노 | 김자영 바리스타(제인)


2016년 2월, 시간에 쫓겨 도착한 로마 공항. 0.99유로의 카푸치노. 여느 휴게소와 다름없는 종이컵. 그러나 맛은? 충격. 뒤를 돌아 정신없이 지나쳤던 바리스타를 한참 바라봤습니다. 무심합니다. 이렇게 정신없는 공간에서! 이렇게 맛있는 커피를! 아무렇지 않게 만들다니! 경외감이 들었습니다.


맛있는 커피는 어디에 어떤 형태로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커피를 진심으로 다루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렇게 되겠지요. 이탈리아처럼 말이죠. 훌륭한 커피와 바리스타에 대한 기억은 많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아보면 이런 무심한 옆모습이 떠오릅니다. 맛있는 커피 때문에 돌아봤을 때 마주하는 무심한 옆모습. 환한 미소와 관심 어린 친절함보다 맛있는 커피와 절제된 호스피탈리티가 늘 제게 여운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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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으로 남긴 SNS. ©김자영Jane





2. 운동 후 마시는 벨벳화이트 아이스 롱블랙 | 편효범 바리스타(피엔)


음료도 음식처럼 상황에 따라 맛이 달라집니다. 당구장에서 먹는 짜장면, 한강에서 먹는 라면, 캠핑장에서 먹는 바비큐처럼요. 제가 가장 맛있게 느끼는 커피는 운동 후에 마시는 아이스 커피입니다.


그중 최고였던 커피는 벨벳화이트 아이스 롱블랙이에요. 운동을 마친 뒤 마셔서 더 그렇게 느끼긴 했지만, 상큼한 산미가 운동 후의 갈증을 채워주는 듯했어요. 애프터에서 느껴지는 단맛도 무척 달게 느껴졌고요.


누가 제게 ‘인생 커피’를 묻는다면 ‘운동 후에 마시는 벨벳화이트 아이스 롱블랙'이라고 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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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의 벨벳화이트 아이스 롱블랙. ©편효범Pian





3. 바리스타의 세심한 배려 | 문혜진 바리스타(진)


스무 살부터 맛있는 커피를 많이 접했지만, 결국 기억에 오래 남는 커피는 좋은 경험이 더해진 맛있는 커피인 것 같아요. 최근 기억에 남은 커피 경험을 나눠볼게요.


지난 여름, 친구 결혼식이 끝난 뒤 근처에 가고 싶었던 카페가 있어 가보기로 했어요. 같이 참석한 친구와 함께요. 평소에 잘 신지도 않는 구두를 신어서 도보 15분 정도의 거리였는데도 둘 다 발이 몹시 아픈 상태였죠. 가까운 카페를 두고 친구를 데려간 거라 친구에게도 미안했어요. 그날따라 날씨도 너무 더웠죠. 땀을 뻘뻘 흘리고 도착한 작은 카페에는 다행히 저희가 앉을 한 자리가 남아있었습니다.(야호!)


메뉴판으로 돌진하여 콜롬비아와 케냐 아이스 드립커피를 주문했어요. 이 두 잔으로는 더위를 해소할 수 없을 것 같아 ‘라임 그라니따’도 같이 주문했지요. 자리로 돌아와 한참 고민에 빠졌습니다. ‘커피를 먼저 즐기고, 그라니따를 조금 이따 달라고 할까?’ 하고요. 그때 마침 사장님이 드립커피 두 잔을 내어주시면서 말씀하셨어요. 그라니따는 천천히 주시겠다고요. 고객 입장에서 느끼는 이런 세심한 배려는 아무나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고객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살피는 깊은 관심이 있어야 가능하죠. 물론 커피도 너무 맛있었고요. 감동한 저와 제 친구는 다음에 또 오자고 약속했고, 바로 그날 저녁에 또 방문했답니다.


빈브라더스에 방문하시는 분들께도 맛있는 커피와 함께 오래 기억되는 커피 경험을 드리고 싶어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고객 입장에서 느낀 좋은 경험을 제 방식으로 녹여서 진심을 전하고 싶습니다. 딱 한 분이라도 제 진심을 느끼셨다면 저는 참 행복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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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라임 그라니따. ©문혜진Jin





4. 치앙마이 외양간의 커피 | 박지혜 바리스타(디아나)


태국 치앙마이를 여행할 때 마셨던 커피가 기억나요. 현지 택시 기사님이 관광객이 많이 오지 않는 작은 마을에 데려가 주셨어요. 기념품으로 많이 판매되는 가방을 주로 만드는 마을이라고 하더라고요.


마을을 구경하다가 작은 외양간 쪽으로 안내해 주셨는데, 예상치 못하게 그곳에 바리스타 한 분이 계셨어요! 그곳에서 마셨던 커피는 정말 색다른 경험을 주어서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마을 주민 대부분이 나이가 많으셨지만, 바리스타님은 그 마을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나이가 많으셨거든요.


90대 바리스타를 만난 것도 멋진 경험이었고,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된 핸드밀과 드리퍼로 내린 커피도 정말 훌륭했어요. 제가 살아온 세월만큼 긴 시간 커피를 해오신 분이 내려주신 커피라니. 특별한 향신료가 들어간 것처럼 스파이시한 향이 느껴지는 커피였는데요. 마을이 워낙 외진 시골이라 다양한 커피를 접하지는 못하셨기에 항상 그 자리에서 같은 원두로만 커피를 내려오셨다고 하더라고요. 오랜 시간 묵묵히 한 자리에서 커피를 내린 바리스타. 제가 되고 싶은 바리스타의 방향성과 닮아있다고 생각해서 더욱 기억에 남는 순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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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에서 만난 90대 바리스타. ©박지혜Diana





5. 인연을 만들어 준 커피 한 잔 | 김서연 바리스타(이브)


어느 5월 무렵, 산책 중 홀린 듯이 한 카페로 들어갔습니다. 빈티지한 느낌이 가득한 카페에 '빈티지'가 사람이라면 이분일까 싶은 사장님과 무심한 듯 인사를 나눴죠.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저를 바리스타로 소개한 날이기도 했어요. 사장님은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어주시며 원두 소개를 해주시고는, 빈브라더스 바리스타분들처럼 해봤다며 쑥스럽다는 듯 웃으셨습니다. 커피를 들고 테라스에 앉아있는데, 사장님이 절에서 느껴지는 향이 가득한 인센스 하나를 들고 다가오셨어요. "옆에 앉아도 돼요?"라는 말에 흔쾌히 옆을 내어드렸습니다. 그게 인연의 시작이었어요.


유난히 힘들던 날이었습니다. 초면인 사람을 어색해할 기운도, 오디오를 채우려 애쓸 기운도 없었지요. 얼음이 녹고 있는 커피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초면에 둘이 앉아있는데 침묵이라,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저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 저 자신의 용기에 고마워집니다. 신기하게도 침묵으로 대화를 했어요. 커피 마시는 소리, 코를 감싸는 절 향으로만 정적을 채웠습니다. 나란히 앉아 유리창에 기대고 있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제야 컵을 다 비울 수 있었어요. 그때 마신 얼음 다 녹은 커피가 여전히 진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렇게 친구가 됐습니다. 그날이 손님과 사장으로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날이었네요. 우린 여전히 테라스에 앉아 같이 멍을 때리기도 하고, 쉴 틈 없이 수다를 떠는 친구가 됐습니다. 커피가 나에게 이런 인연도 만들어주다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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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친구가 된 사장님. ©김서연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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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김서연Eve





6. 라우스터프의 에스프레소 | 윤현백 바리스타(밤비)


대구의 '라우스터프'에서 마셨던, 레몬 같은 산미를 가진 에스프레소가 인상 깊네요. 제 인생에서 처음 맛본 에스프레소였거든요.


대학생이었던 2014년, 동기들과 방문한 그 카페에서 저는 '에스프레소'를 주문했습니다. 커피에 빠져들기 시작한 때였고, 그 카페는 당시 꽤 입소문을 타는 곳 같아 괜히 마셔보기 힘든 메뉴를 선택한 거죠.


그렇게 처음 마셔본 에스프레소는 레몬같이 상큼하면서도 쓴맛 없이 깔끔하게 넘어가는 커피를 경험하게 해 주었습니다. 지금은 향과 맛을 분리해서 설명하기 때문에 ‘레몬 같은 향’과 함께 ‘상큼한 산미’를 느꼈고 ‘쓴맛이 없는’ 에스프레소를 마셨다고 할 수 있겠네요.


놀라운 맛이었습니다. 쓴맛이 거의 없는 에스프레소였거든요. 커피에 빠져든 지 얼마 안 된 시기이기도 했지만, 지금 마셔도 놀랄 것 같습니다. 단순하죠. 에스프레소에서 쓴맛이 없어서 놀라웠다니. 그저 잘 만든 에스프레소에 불과한 건데 말이죠.


하지만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도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기 위해 꾸준히 도전하는 것은, 그때 환상 같은 커피를 맛봤기 때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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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라우스터프 커피. ©김혜연Bell





오늘 레터, 어떻게 읽으셨나요? 커피 한 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는데 먼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네요. 음료 한 잔이 그날의 기분과 관계를, 심지어 인생을 바꿔낸다는 것이 늘 신기합니다. 독자님의 인생 커피도 궁금해지네요. 피드백 버튼을 통해 다른 독자분들께도 독자님의 인생 커피를 소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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