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게이샤의 추억<br>#073. <과테말라 산 안토니오 차키테 게이샤> 회고
글쓴이 김민수 Derek
발행일 2022/09/14
오늘은 지난여름 무척이나 마음이 쓰였던 한 게이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저희가 7월과 8월에 판매했던 <과테말라 산 안토니오 차기테 게이샤(이하 과테말라 게이샤)>라는 긴 이름의 게이샤였는데요. 팀이 정말 좋다고 생각해서 소개한 커피였지만 기대했던 것보다는 아쉬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이번 레터에서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제 나름의 회고를 해보겠지만, 혹시 이 커피를 드셔보셨다면 개인적인 경험을 남겨주셔도 좋아요. 그럼 시작해보겠습니다.
시계는 2021년으로 되돌아갑니다.

커핑 진행 중인 데릭. ©박은실Momo
| 2021년, Bb 로스터리
과테말라의 농장 ‘산 안토니오 차기테’에서 온 뉴크롭을 맛보는 커핑이 있었습니다. 여러 샘플 중에 두 가지 커피가 유독 훌륭했는데 (그리고 매우 비쌌는데) 바로 게이샤 워시드와 게이샤 내추럴이었습니다. 저희가 게이샤를 자주 소개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둘은 어떤 식으로든 판매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구매를 결정했습니다. (게이샤 내추럴은 다음해에 출시된 9주년 블렌드 ‘개화’의 재료로 맹활약하였습니다.)
| 2022년 5월, Bb 로스터리
개화 블렌드의 성공적인 출시에 힘입어 산 안토니오 차기테 농장의 게이샤 워시드를 7월에 싱글 오리진으로 출시하기로 했습니다. 1월 파나마 레리다 농장의 게이샤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출시하는 게이샤였는데, 기존 게이샤와 차별화되는 매력적인 향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출시를 알린 과테말라 게이샤. ©이혜민Mini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이 커피를 마시고 떠오르는 노트는 크게 두 가지 카테고리였어요.
1. ‘게이샤’ 하면 떠올릴 만한 꽃과 시트러스 과일
2. 과테말라 커피에서 느낄 법한 고소하고 달콤한 노트들
전자는 아카시아와 라임으로 나타나고, 후자는 고구마와 홍차로 표현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 향미의 조합이 잘 어울리지 않게 느껴졌다면 구매하지 않았을 텐데, 무척 신선하고 긍정적으로 느껴졌어요. ‘이런 게이샤를 어디서 마셔본 적 있나?’하고 자문해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라임이 선명하게 연상되는 산미였어요. 아카시아꿀 같은 달콤함도 좋았고요.
마시면 마실수록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특별한 게이샤라는 생각이 들었고, 원두 카드에 그 마음을 꼭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얼른 출시가 되어 고객분들의 반응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과테말라 게이샤 원두 카드. 자신있었던 데릭. ©빈브라더스
| 2022년 7월, Bb 합정 & 스타필드 하남
마침내 과테말라 게이샤가 출시되었습니다. Bb 매장 중에 유일하게 이 커피를 에스프레소로 판매하던 합정 매장으로 달려갔어요. 마침 바에서 근무 중이던 바리스타 베로에게 에스프레소 한 잔을 부탁했습니다. 베로는 에스프레소를 건네며 온도가 낮아짐에 따라 커피의 뉘앙스가 달라지는 지점이 있을 거라 말해줬어요. 온도가 어느 정도 내려간 후에는 설탕을 약간 넣어서 마셔보라는 가이드와 함께요.
에스프레소 첫 모금을 마셨더니 라임이 연상되는 산미가 느껴지고 곧이어 고구마의 진한 달콤함이 찾아왔습니다. 그 조합이 낯설면서도 재미있게 느껴진 점은 좋았는데, ‘게이샤’ 하면 떠오르는 꽃과 과일 향미가 느껴지지 않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느 정도 식은 후에는 베로가 말한 대로 설탕을 약간 넣어봤어요. 마셔보니 커피의 산미가 더 편안하게 느껴졌는데, 그 순간 머릿속에 ‘라임’이 선명하게 떠올라서 놀랐습니다. 고구마의 달콤함이 베이스로 깔려 있고, 라임의 산미가 혀를 즐겁게 하는데, 커피의 온도가 낮아지니 여운에서 꽃 향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게이샤 맞네'라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초반의 아쉬움이 감동으로 바뀐 순간이었습니다. 놀란 눈을 하고 베로를 쳐다보니 베로가 다 안다는 표정으로 빙긋 웃더군요.

설탕을 더하니 더욱 살아난 꽃 향. ©김민수Derek
‘올해 최고의 커피 경험'인 것 같다며 호들갑 떨고 있는 저를 CEO 루이가 발견하고 다가왔습니다. 베로에게 본인도 게이샤 에스프레소 한 잔을 부탁하고 제 옆에 앉았어요. 루이는 어떻게 느낄까 하고 지켜보는데, 커피를 마시는 루이의 표정이 밝지 않았습니다. 싸한 느낌을 안고 루이에게 어떠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음, 어려운데?”라고 답하더라고요.
아차 싶었습니다. 루이가 어렵다고 느낄 정도면 큰일인데 싶었어요.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려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얼마 후에는 스타필드 하남점의 바리스타 준이 또 다른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과테말라 게이샤를 주문하신 고객님이 한 모금 마신 후에 다시 내려달라고 하셨다고요. 본인은 게이샤를 주문하셨는데, 이건 게이샤가 아닌 것 같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분께 새로 한 잔을 내려드리며 준은 이 커피가 ‘게이샤라는 명찰'을 달지 않았다면 오히려 고객들이 더 좋아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했다고 합니다.

스타필드 하남점에서 브루잉 중인 바리스타 준. ©박은실Momo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난 어느 아침, 합정 매장에서 에스프레소 추출 조건을 세팅하던 바리스타 제이를 만났습니다. 제이가 과테말라 게이샤로 따뜻한 라떼를 내려주어 같이 마셔보았는데요. 밀크티처럼 달큰한데 코에는 은은한 꽃향이 맴돌았습니다. 정말 맛있었어요. 그런데 그다음에 이어진 제이의 질문은 저를 다시 고민에 빠지게 했습니다.
“데릭, 근데 이거 우리만 맛있어하는 거 아니고, 다른 분들도 맛있어 할 만한 거 맞죠?”

합정점, 제이와 데릭. ©박은실Momo
| 2022년 8월, 언스페셜티
7월 빈브라더스에서의 판매를 마치고, 8월에는 매달 새로운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의 커피를 소개하는 언스페셜티를 통해 과테말라 게이샤가 판매되었습니다. 온라인으로 어떤 반응이 올라올까 궁금해하며 기다렸는데, 판매는 곧잘 되었지만 고객분들의 반응은 거의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무반응이 곧 불만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만족한 커피의 후기가 올라오지 않는 일은 드물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언스페셜티 상세 페이지 중, 과테말라 게이샤 소개. ©빈브라더스
구매하신 분들께 큰 즐거움을 드리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과테말라 게이샤의 판매가 ‘조용히' 완료되었습니다.
이 과테말라 게이샤를 지켜보며 제가 다시 한번 생각해본 것은 매달 출시할 커피를 고르는 우리 팀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였습니다. 매주 로스터리에서 수십 종의 커피를 평가해야 하는 우리는 예민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각 샘플의 미묘하고 섬세한 차이를 언어로 설명해낼 수 있어야 하고, 부정적인 쓴맛이나 떫은맛 같은 단점을 가진 커피들을 엄격하게 탈락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커피 경험치가 높은 소수의 숙련된 커퍼들만 가능한 일이지만, 기존 커피에 없는 ‘새로운 매력'을 찾아낼 수도 있어야 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늘 비슷한 카테고리의 커피들을 출시하게 될 것입니다. 그게 로스터리로서 일을 잘 못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새로움을 추구하는 고객들에게는 아쉬운 일일 수도 있겠지요.
위에 언급한 일들을 잘해낼수록 커피의 품질은 좋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새롭고 다채로운 커피들을 출시할 가능성도 커지겠지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언제나 실제로 이 커피를 마실 사람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은연중에 ‘새로움’을 가장 중요한 미덕으로 여기게 되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과테말라 게이샤 바닐라 라떼와 아메리카노. ©박은실Momo
과테말라 게이샤는 어쩌면 이 지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게 아니었나 생각하게 됩니다. 다시 돌아가도 우리는 이 커피에 좋은 평가를 내리겠지만, 다수의 고객에게 어떻게 느껴질지를 좀 더 면밀하게 고려해보았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오랜만에 ‘게이샤'를 마셔보고 싶어 주문한 사람에게 ‘기존과 다른 매력을 지닌 게이샤'를 마시는 게 어떤 경험일지, 우리가 발견한 새로움이 그저 낯설게만 느껴질지 아니면 진짜 매력으로 느껴질지와 같은 것들이 고려되었다면 우리가 이 커피를 소개하고 다루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커피가 그렇기는 합니다만, 전문적인 바리스타의 가이드와 함께 마시는 게 가장 좋은 방식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요. 저에게 바리스타 베로와 함께 마신 게이샤 에스프레소가 훌륭한 커피 경험이었듯이요.
오늘 레터에서는 저에게 추억이 될 <과테말라 산 안토니오 차기테 게이샤> 이야기를 들려드렸는데요. 혹시 이 커피를 드셔보신 분들은 어떻게 이 게이샤를 기억하고 계신가요? 여러분들 마음속에 남아있는 게이샤와 관련된 추억이 있으신가요? 여러분의 게이샤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배송안내
교환/환불 안내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상품이 찜 리스트에 담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