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커핑 초보만 들어오세요<br>#069. 커핑할 때 알아두면 좋은 7가지
글쓴이 박은실 Momo
발행일 2022/08/17
독자님은 커핑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커핑으로 오늘 하루를 열었습니다. 매주 로스터리에서 열리는 주간 커핑에 참여하고 있거든요. 제가 중요한 의견을 내는 건 아니고요, 뉴스레터 담당자로서 커피 전반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단기적 학습 중이랍니다. 커핑에 참여해보니 집에서 브루잉만 하던 것과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더라고요. 작은 것에도 놀라고 재미있어 하는 커핑 초보로서, 오늘은 저처럼 커핑 경험이 없으신 분들을 위한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로스터리 주간 커핑 풍경. 왼쪽부터 데릭, 로사, 린다, 케이브. ©박은실Momo
빈브라더스의 주간 커핑은 리드 로스터 케이브, 생두 소싱 코디네이터 로사, 바리스타 린다와 포니 그리고 수석연구원 데릭이 꾸려가고 있어요. 저는 ‘QA팀(Quality Assurance)’이라고 쓰고 ‘미각 정예 부대’라고 읽습니다. 놀랍도록 디테일하고 민감하게 향미를 분석하거든요.
커핑은 말 그대로 커피를 맛보며 파악하는 행위인데요. 생두 구매를 위해 블라인드 테스트로 커피 샘플을 판별하는 용도로 주로 진행되지만, 주간 커핑에서는 구매뿐 아니라 배전도를 결정하거나 원두 카드에 들어갈 노트를 작성할 때도 커핑을 합니다. 물론 로스터리 밖에서는 커피의 향미를 즐기기 위해 시음이나 친목을 목적으로 여는 경우도 많지요.
간단히 알아보는 커핑 순서
커핑은 보통 이렇게 진행됩니다.
분쇄: 커핑볼이라고 불리는 그릇에 분쇄한 커피를 담고 향(아로마)을 평가합니다.

침지: 뜨거운 물을 부어 4분 정도 침지합니다.

브레이크: 윗부분의 크러스트(거품층)를 저어 퍼트립니다. 이때 한 번 더 향을 평가하기도 해요.

스키밍: 위에 남은 잔거품과 부유물을 제거합니다.

평가: 본격적으로 맛을 보며 평가를 시작합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커핑 시트를 사용해 아로마와 플레이버, 여운, 산미, 단맛, 밸런스, 균일감, 바디감, 클린컵 등을 평가하고 점수를 매겨요. 진지한 집중의 시간이 지나면 함께 모여 총평을 나눕니다.

SCA 커핑 시트를 사용 중인 로사. 필요에 따라 빈브라더스의 커핑 시트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박은실Momo
제가 커핑에 처음 참석한 건 지난 12월이었는데요. A, B, C, D, … 순서대로 늘어놓은 커피를 조금씩 맛보는데, 뭐가 뭔지 감이 잘 오질 않았어요. 처음 A를 맛보고는 ‘오, 맛있다!’싶었는데, 다음 컵인 B 커피를 맛보니 ‘오, 이것도 맛있는데?’ 싶은 거예요. 이후 C를 맛보고는 ‘A랑 같은 건가…?’하는 대혼돈이 시작되었습니다. 제 머릿속에 커피는 ‘맛있는 커피’와 ‘맛없는 커피’만 있던 것 같아요.
평가를 마친 뒤 함께 의견을 나누는 자리에서는 더 식은땀이 났습니다. 제가 ‘A 커피는 산미가 있다' 정도로 생각했다면, 미각 정예부대 4인의 의견은 다채로웠습니다. ‘구운 견과나 밤처럼 편안하지만 조금 떫다’라든지 ‘아카시아꿀처럼 단맛이 후미에 충분하게 느껴지지만 아주 약간의 알코올 느낌이 난다’ 같은 구체적인 표현이었어요. 다른 팀원이 먼저 향미를 표현할 때면, 저는 채점을 기다리는 학생이 되곤 했죠. 시험이 끝나고 정답을 불러주는 반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요.

더 정확한 표현이 필요할 때, 플레이버 휠을 보는 로사, 이미지를 검색하는 케이브, 다시 맛보는 데릭. ©박은실Momo
하지만 커핑 시간이 어려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집중해서 몸의 감각을 깨우는 경험이 신비롭고, 커핑을 할수록 인지할 수 있는 향미의 스펙트럼을 조금씩 넓히는 기쁨도 있었어요. 다른 분들의 향미 표현을 들으며 이런 맛은 이렇게 표현되는구나 학습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커핑에 몇 차례 더 참석하면서 크고 작은 팁을 얻을 수 있었는데요. 오늘은 저처럼 커핑 경험이 전무하거나 시작 단계에 있는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삐약삐약 커핑 초보를 위한 팁을 정리해 볼게요.
✍🏻 커핑할 때 알아두면 좋은 7가지
1. 첫 모금은 무시하기
데릭이 이 방법을 말해주기 전까지 전 늘 처음 마신 컵을 가장 맛있다고 선택했어요. 로스터리를 가득 채운 커피 향을 맡으며 온몸이 커피를 기다리는 상태라 첫 모금이 그렇게 달더라고요.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놀랍게도 첫 모금이 매우 쓰고 자극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모두가 꽃과 과일 향을 느낀 에티오피아 워시드였는데도 말이에요!) 데릭은 커핑 전에 매운 음식을 먹으면 커핑할 때 매운 향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첫 모금은 많은 변수를 포함하고 있지요. 그렇기에 첫 모금은 늘 의심해야 한다고 해요.
2. 순서를 바꿔가며 맛보기
순서대로 커피를 맛보다 보면 이전 커피의 영향을 받곤 합니다. 한번은 A, B, C 순서로 맛보다가 아주 특별한 향미를 가진 C를 만났는데요. 꽃이나 과일을 연상시킨 A, B 커피와 달리 C는 피톤치드 향이 강하고 나무나 숲을 연상시키는 강력한 향미였어요. C를 맛보고 나니 D, E, F 커피 모두 비슷한 향미가 느껴졌어요. 계속 숲속을 거니는 느낌이 되더라고요. (사실은 모두 다른 개성을 가진 커피였습니다.) 데릭은 순서대로 커피를 맛본 뒤에는 역순으로 마셔보면 좋다고 알려주었어요. 커핑 순서가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꼭 순서를 바꿔보세요.
3. 구강 전체로 맛보기
일반적으로 커피를 마시듯 커핑을 하면 커피 전체의 캐릭터를 완전하게 경험할 수 없습니다. 후룩! 하고 입안에 커피를 분사해 향이 잘 퍼지도록 하는 ‘슬러핑’이라는 방법도 있어요. 데릭은 입안에 커피를 머금고 혀를 굴려 가며 구강 전체에 커피 성분이 닿게 하라는 팁을 전수해 주었습니다.
4. 맛과 향을 구분하기
처음 커핑을 할 때 케이브가 해준 조언인데요. 커피는 맛과 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평소에는 구분해서 느끼기 어렵죠. 케이브의 조언대로 커핑을 해보니 정말 맛이 괜찮아도 향이 아쉬운 커피가 있고, 향이 진하고 길게 남아도 맛이 아쉬운 커피가 있었어요. 분쇄 단계에서 향을 맡으며 맛을 상상해본 뒤 맛과 향을 비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네요.
5. 색깔로 떠올려보기
이건 제가 잘 사용하는 방식인데요. ‘마카다미아!’, ‘라임!’ 이런 식으로 바로 노트가 생각나지 않고 갸우뚱하게 될 때는 큰 범주를 먼저 생각해봐요. 예를 들어 블랙수트(견과, 초콜릿)와 벨벳화이트(꽃, 과일) 중에 뭐랑 가까울까? 같이 양자택일로 생각해보는 거죠. 그게 익숙해지면 색깔을 떠올리는 방법을 사용해봅니다. 분홍 꽃, 빨간 과일, 노란 시트러스, 초록 숲, 보라 과일, 브라운 견과 등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으면 어느 범주인지 선택이 쉬워지죠. 거기서 좌표를 잡고 나면 디테일을 생각해보기 쉬워져요. 제가 갸우뚱할 때 로사가 플레이버 휠을 옆에 가져다주었는데, 이 단계를 거치고 플레이버 휠을 보니 훨씬 선명한 노트를 찾을 수 있었어요.
6. 다른 온도로 맛보기
뜨거울 때부터 커피가 거의 식어갈 때까지 다양한 온도로 맛보는 것이 좋습니다. 지난 레터에서도 보셨듯 커피는 온도에 따라 조금씩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잖아요. 또 어떤 커피는 식었을 때 훨씬 단맛이 살아나서 ‘이건 아이스로 마시면 좋겠다'는 의견까지도 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간다면 ‘이건 따뜻한/아이스 라떼로 마시면 좋겠다’ 같은 디테일한 상상도 해볼 수 있습니다.
7. 당당하기
제가 얻은 최고의 ‘꿀팁’은 ‘당당하기’예요. 미각 정예부대에 주눅 들지 않고 제 생각을 분명히 말하는 것. 이것은 태도의 연습이기도, 학습의 방법이기도 하지만 좋은 커핑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미각은 상대적이라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쭈구리 커퍼의 의견이라도 중요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거든요. 또 모두가 다른 미식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무엇이 더 보편적인 표현인지는 다양한 의견을 바탕으로 조율이 필요합니다. ‘자두'라고 했을 때 데릭은 다홍색 자두를, 케이브는 검붉은 자두를, 저는 자두 맛 사탕을 떠올리는 것처럼요.

커피처럼 달고 쓴 커핑 시간. ©박은실Momo
돌아오는 금요일, 드디어 구독자 여섯 분을 모시고 커핑하는 시간을 가지는데요. 처음 구독자 모임을 구상할 때 뭘 해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데릭이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에겐 이미 커핑이라는 좋은 문화가 있잖아요." 그러고 보니 커핑은 정말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력적인 장치이더라고요. 다양한 맛의 세계를 함께 탐구하며 의견을 교환하고 차이와 공감을 나눌 수 있으니까요. 첫 번째 구독자 모임에는 커피 애호가이신 구독자님부터 카페 준비 중이신 구독자님, 현직 바리스타 구독자님 등 다양한 분들이 신청을 해주셨는데, 어떤 시간이 될지 무척 기대됩니다. 구독자 모임의 소식은 다음 레터에서 전해드릴게요.
독자님도 다양한 원두로 주변에 계신 분들과 간이 커핑을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모든 장비를 갖추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함께 커피를 맛보고 대화 나누는 것만으로도 커핑은 우리 삶을 향긋하게 만들어줄 거예요. 혹시 저처럼 커핑을 시작하시면서 경험하신 에피소드나 커핑 팁이 있다면 아래 피드백 버튼으로 남겨주세요. 구독자 여러분의 커핑 이야기를 읽으며 저도 한 수 배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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