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페루 커피의 발견<br>#065. '페루 커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글쓴이 김민수 Derek
발행일 2022/07/20
오늘 레터의 주제는 ‘페루 커피’입니다. 최근 몇 년간 스페셜티 커피 업계에서 큰 주목을 받는 페루지만, 제가 느끼기엔 아직 그 관심이 주로 업계 안에서 머무는 느낌입니다. 실제로 커피를 마시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페루 커피의 지위가 얼마나 올라갔냐 하면 글쎄요. 아직은 업계와 시장에서 보여주는 반응에 다소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오늘 페루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메일창을 열었습니다. 제가 업계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커피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들려드릴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서요. 페루 커피 산업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고, 제가 경험한 페루 커피는 어떠했는지 들려드리려고 해요. 만약 이 레터를 읽으시고 페루 커피에 대한 희미한 느낌이나마 건져가신다면, 그걸로도 이 글은 목적을 다한 셈일 겁니다. 그럼 시작해볼게요.

오늘의 주인공, 페루 커피.©eatperu
‘페루 커피’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세요? 로스터리 커핑 세션에서 종종 페루 커피를 맛보게 되는데요. 맛본 후에는 어떤 커피인지 팀원들에게 설명해야 합니다. 저도 나름 커피를 설명하는 일을 하는 사람인데 희한하게도 페루 커피를 맛보고 나면 ‘커피 향이 난다'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날 진지하게 팀원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저는 왜 이럴까요?”
그때 한 팀원이 얘기해주었습니다. “어쩌면 맥심 모카골드의 주재료가 페루 커피라서 그렇게 느끼신 게 아닐까요?” 맥심 모카골드의 정보를 찾아보니 정말 그러했습니다. 제가 본 버전은 페루와 콜롬비아의 블렌드였던 것 같아요. 스페셜티보다 한 등급 아래인 커머셜 등급의 페루와 콜롬비아를 합하면 딱 제가 ‘커피'라고 생각하는 향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광고는 아닙니다만. ©동서식품
최근에는 페루에도 스페셜티 등급의 커피들이 여기저기서 등장하고 있지만, 20세기의 페루는 커머셜 등급의 커피들을 주로 생산하는 나라였습니다. 사실 상황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고요. 비교적 잘 개발된 북부 카하마르카와 비교했을 때, 남부 쿠스코 지역은 상대적으로 스페셜티 시장에 덜 노출된 편입니다. 커피의 퀄리티가 좋은 경우에도요.

페루 남부의 쿠스코 지역. ©redfox coffee merchants
평균적인 페루의 커피가 유통되는 방식을 잠깐 설명해 드리면 좋을 것 같은데요. 일반적으로 한 마을에서 수확된 모든 커피들을 한데 모아서 가공하고 지역의 협동조합을 통해 수출합니다. 결과적으로 농장 정보나 품종 정보를 알 방법이 별로 없죠. 그 안에는 스페셜티 커피로 분류될 수 있을 정도로 품질 좋은 커피가 섞여 있을 수도 있지만 아마 그 커피를 판매한 농부조차도 본인의 커피가 훌륭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페루 커피의 잠재력을 알아본 사람들이 미국에 있었습니다. 생두회사 레드 폭스(Red Fox)의 창업자 알레코(Aleco)가 그중 한 명이었죠. 페루 남부 쿠스코 지역의 문을 여러 번 두드리던 알레코는 결국 2008년에 새로운 조합을 만나 거래를 시작하게 되는데요. 좋은 커피 품질에도 제값을 받지 못하던 농부들에게 적절한 가격을 지불하고, 지역 농민들을 교육하는 것과 동시에 재무적인 지원도 제공하게 됩니다.

생두회사 레드 폭스의 창업자 알레코. ©Aleco Chigounis
그로부터 13년 후인 2021년, 빈브라더스에서도 레드 폭스를 통해 이 지역의 커피를 구매하고 여러분께 소개를 드렸습니다. 바로 '잉카와시 루시오 루케'라는 커피였는데요. 달콤함이 매력적인 커피로 기억에 남아있어요. 이 커피를 레드 폭스로부터 구매한 이후에, 창업자 알레코가 페루 커피의 현주소를 어떻게 진단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이메일로 세 가지 질문을 드렸는데, 알레코의 친절하고 자세한 답변을 모두 소개해 드리기엔 지면이 좁지만 꼭 나누고 싶어서 아래에 요약해보았어요.

알레코의 메일. ©김민수 Derek
Q1. 레드 폭스에게 페루는 단순히 하나의 커피 산지가 아니라 상당히 중요한 산지로 다뤄지는 인상을 받습니다. 왜 페루였나요?
A. 우리를 페루로 이끈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커피들이 낮은 접근성으로 인해 적절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일하는 훌륭한 생산자들과 그들의 커피를 잘 평가해줄 구매자들을 연결해주고 싶었어요. 2006년에 처음 페루 남부 잉카와시 밸리를 방문했는데, 지역의 부패한 협동조합으로부터 배척받았고 결국 발을 붙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2년 뒤에 새로운 협동조합이 등장한 이후에야 드디어 거래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 후 페루 국내 옥션에서 다뤄지는 훌륭한 커피들을 맛볼 수 있었고, 몇 년 뒤에는 수도인 리마에 오피스를 열게 되었습니다.
Q2. 말씀해주신 것처럼 2008년부터 페루 커피를 판매해오고 계시는데요.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때와 지금의 페루 커피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A.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선 커머셜 등급으로 가격이 책정되어 있던 양질의 커피들이 더 높은 가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렴한 블렌드 재료로 인식되었던 페루 커피가 이제 훌륭한 품질의 스페셜티 커피로도 받아들여지게 되었죠. 수확과 가공,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큰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Q3. 커피 로스터리로서 우리는 여러 커피 산지를 비교하게 됩니다. 최근 들어 커피의 정보가 투명해지고 있는 에티오피아, 가공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콜롬비아처럼 각 산지들이 보여주는 특징들이 있는데요. 아직 페루가 어떤 발전을 보여준다는 느낌을 체감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커피 산지가 같은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것은 아닐 텐데요. 페루 커피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 것으로 예상하세요?
A. 커피 산지로서 페루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합니다. 커피의 품질이 향상되고 있고, 정보의 추적가능성도 좋아지고 있죠. 우리와 함께 일하는 농부들은 실험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들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재무적인 안정성입니다. 안정적인 현금 흐름이 있어야 수입이 발생하지 않는 수확기를 견딜 수 있기 때문이에요. 향후 몇 년간 페루에서 우리가 집중하고자 하는 부분입니다.
제가 빈브라더스에서 일하며 특히 좋아하는 것이 있는데요. 매장을 방문하고 바리스타분들과 현재 판매 중인 커피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사무실이나 로스터리에만 있으면 알기 어려운, 살아있는 현장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무척 흥미로워요.
저희가 6월에 이어 7월에도 페루 커피를 판매하고 있는지라 매장에 들를 때마다 바리스타분들께 반응이 어떤지 물어보고 다녔는데요. 반응이 뜨뜻미지근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반응을 요약하면, 고객분들이 페루를 커피 산지로 선호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이었어요. 브라질이나 에티오피아와 달리 ‘페루 커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도 딱히 없고, 페루를 커피 산지로 인식하지 않으시는 경우도 왕왕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신도림점에서 데릭과 전인주 바리스타(아도이). ©박은실Momo
이 이야기들을 듣고 솔직한 마음으로 ‘페루 커피를 계속 팔아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커피 하나 출시하는 데 정말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데, 이왕이면 고객들이 선호하는 산지의 커피를 판매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얼마 전 로스터리에 들렀을 때 팀에게 저의 이런 생각을 넌지시 전했습니다. 그런데 제 이야기를 듣던 생두 코디네이터 로사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그런데 이 페루 커피들, 우리가 정말 좋다고 생각해서 산 거잖아요.”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맞는 말이었거든요. 비록 에티오피아나 케냐처럼 개성이 뚜렷하거나 과일스럽지는 않지만, 이 페루 커피들처럼 달콤하고 편안한 커피도 충분히 훌륭하다고 생각했기에 구매했던 것이었죠. 고객들의 반응이 그만큼 크지 않다면 오히려 우리가 어떻게 더 잘 설명하고 전달해 드릴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게 맞는 것인데 말이에요. 그것이 바로 스페셜티 커피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자 맥락이기도 하고요. 잠시나마 요행을 부리려고 했던 저 자신을 반성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스타필드점의 페루 산 페르난도 내추럴 바닐라 라떼. ©박은실Momo
지난주에는 이번 달 페루 커피를 아메리카노와 라떼 같은 에스프레소 메뉴로도 팔고 있는 스타필드 매장에 들렀습니다. 바리스타 베니에게 아메리카노와 라떼 한 잔씩을 부탁하고 마셔보았어요. 그리고 베니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에스프레소 메뉴로 세 가지의 원두를 고를 수 있는데 그 안에서 이 페루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베니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블랙수트가 너무 다크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코스타리카의 산미가 걸리시는 분들에게 추천해 드리기 좋아요. 고소하고 편안한 커피니까요”. 그 말을 듣고 다시 한번 페루 라떼를 한 모금 마셔보았습니다. 그리고 몰려드는 손님들의 주문으로 바빠서 저와 대화할 겨를이 없어 보이는 베니에게 굳이 말했습니다. “이 페루 커피의 미덕이 편안함이란 걸 알겠네요.”
서두에 여쭤보았던 질문을 다시 한번 드려볼게요. ‘페루 커피’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전 이제 ‘커피 향이 난다'는 말보다는 좀 더 좋은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모든 커피에는 각자의 존재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에티오피아 커피가 하는 역할, 과테말라 커피가 하는 역할이 있는 것이겠죠. 페루 커피는 아마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저에게 평균적인 페루 커피는 ‘달콤하고 고소한 커피'이지만, 또 모르죠. 계속해서 발전해갈 페루 커피의 5년 후 그리고 10년 후의 모습은 지금과는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다음에 어딘가에서 페루 커피를 만나게 되신다면 한번 시도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클리셰지만, 알게 되면 보이는 것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원래 커피는 이것저것 다양한 스타일을 돌아가며 마시는 게 제일 재미있습니다. 그안에서 본인의 새로운 취향을 찾으실 수도 있고, 원래 좋아하던 것을 다른 방식으로 좋아하게 되기도 하니까요. 저는 당분간 어느 카페에 가든 페루 커피를 고르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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