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커피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을까?<br>#051. 커피가 세계 변화에 기여한 4가지 방식
글쓴이 김민수 Derek
발행일 2022/04/06
여느 날처럼 인터넷 세상에서 랜덤한 것들을 보며 놀던 어느 저녁, 커피 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6 Ways Coffee Helped Transform the World>라는 제목의 기사였습니다. 번역하면 ‘커피가 세계의 변화에 기여한 6가지 방식’ 정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개인적으로 한창 눈앞에 펼쳐진 일들 쳐내기에 바쁘던 시기였는데, 이 기사를 읽으니 한동안 커피에 대해 잘 하지 않던 큰 생각들을 해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독자님과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기사 내용 중에 제가 재미있게 읽은 4개의 이야기를 발췌하고 거기에 제 생각을 약간 버무려서 들려드릴게요.
커피는 오랫동안 애호가들에게 기호식품으로 기능했지만, 인류 전체의 관점으로 보면 그를 넘어서는 역할들을 해왔습니다. 단순히 사람들의 잠만 깨웠던 것도 아니고, 커피로 인해 인류에게 좋은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니에요. 오늘의 첫 이야기는 수백 년 전 유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 커피의 세계화 : 노예제를 강화시키다
17세기 무렵 커피가 유럽에서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영국과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제국들은 본격적으로 식민지에서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합니다. 18세기가 되면 커피가 설탕, 면, 담배와 함께 식민지에서 재배하는 가장 중요한 작물로 다뤄지게 되지요. 한마디로 커피가 ‘매우 돈이 되는 상품’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커피를 재배하기 좋은 땅을 갖게 된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인력이었습니다. 물론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면서 인력을 고용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인도네시아에서 아메리카 대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노예들이 커피 재배를 위해 착취되었습니다.
19세기 브라질의 커피 플랜테이션 ©SLAVERY IMAGES
노예제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말 무렵이었습니다. 아이티(Haiti)에서 일어난 혁명을 시작으로 많은 중남미 국가들에서 노예제가 폐지되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그 시절 아직 브라질을 지배하고 있던 포르투갈 정부는 오히려 더 많은 노예들을 동원해 커피를 재배했고, 결과적으로 브라질은 세계 최대의 커피 생산국의 자리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어요. 1888년에는 브라질도 서방국가 중 거의 마지막으로 노예제를 폐지하게 됩니다.
2. 커피 하우스 : 공적 토론의 장이 되다
커피 하우스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슬람 국가였던 오스만 제국에는 그 당시 유럽국가들에는 흔했던 술집이 허용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모여서 정치와 종교를 논할 수 있는 유일한 공적인 장소가 커피 하우스였다고 합니다.
훗날 오스만 제국을 통해 유럽에도 커피 하우스 문화가 들어오게 됩니다. 영국의 경우 런던 증권거래소나 동인도회사 같은 곳들의 시작이 커피 하우스였다고 해요. 당시 런던에서는 커피 하우스를 페니 대학(penny university)이라고 불렀는데, 커피 가격인 1페니를 내면 진행 중인 지적인 토론에 참여할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커피 하우스는 런던 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의 주요 도시들에서도 나타났고, 그중 당대 지식인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곳은 역시 프랑스 파리였던 것 같습니다. 루소나 볼테르 같은 자국의 사상가들 뿐만 아니라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 같은 미국의 저명한 작가들 역시 당시 파리의 커피 하우스에 모여서 철학과 예술을 논했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커피 하우스에서 그렇게 거창한 이야기만 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기능적으로 보면 현대의 카페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우리가 카페에서 진지한 이야기도 하고 누가 어떻다더라 하는 가십을 전하듯이, 당시 사람들도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다만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의 발달로 빠른 단발성 소통이 가능해진 지금과 달리 그 시절 커피 하우스의 대화들은 보다 밀도 있고 진한 농도의 것들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17세기 런던의 커피 하우스 ©Brewminate
3. 커피의 킥 : 산업화를 강화하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이른바 ‘산업 혁명'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증기기관을 비롯한 다양한 기계의 발명으로 생산성이 혁신적으로 향상되었어요. 높아진 생산성으로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공장주들이 해야하는 일은 하나였습니다. 24시간 내내 공장을 돌리는 것이었죠.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게 되면서 필요한 인력은 줄어들고,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착취하기 편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자본가들의 선택은 적은 인력을 뽑아서 최대한 오랜 시간 동안 노동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맞춰 돌아가던 노동자들의 삶이 ‘시계'에 맞춰 돌아가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그들은 카페인에 기대게 되었습니다. 무려 3세기 전의 이야기지만, 마치 오늘날의 이야기처럼 생생한 느낌이네요.

산업혁명의 이미지 ©Sucafina
4. 스타벅스 : 커피 하우스를 다시 유행시키다
1987년에 미국의 하워드 슐츠가 스타벅스라는 이름의 에스프레소 바를 연 이래, 이 회사가 세계적으로 어떤 성공을 거뒀는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죠. 스타벅스는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이탈리아의 커피 문화를 알리고, 커피를 다 마신 후에도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집과 직장이 아닌 ‘제3의 장소’의 위치를 카페가 가지게 되었고요. 이 단락을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럼 스페셜티 커피는?’이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스타벅스가 세상에 등장한 것이 이미 오래전인 것 같은 기분이지만, 긴 커피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여전히 최근의 일에 가깝습니다. 18세기 영국 노동자들이 마셨을 커피를 생각하면 스페셜티 커피는 더더욱 현대적인 것으로 느껴집니다. 스타벅스가 커피의 역사에서 가져온 변화가 무엇인지는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스페셜티 커피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요?
1971년에 설립된 스타벅스의 첫 매장 ©Starbucks
스페셜티 커피가 남길 발자취
지금까지 많은 스페셜티 커피 회사들의 접근은 고품질의 생두를 사용하고, 과학적인 로스팅과 추출 방법론을 통해 커피의 향미를 최대로 끌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20년 간 우리의 미각을 즐겁게 해준 훌륭한 커피들은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이었죠.
스페셜티 커피의 정의가 수학 공식처럼 딱 떨어지지 않듯이, 현재의 스페셜티 커피 업계의 플레이어들이 보이는 모습도 모두 같지는 않습니다. 맛있는 커피라는 목표를 향해 정공법을 펼치는 사람들도 있고, 맛으로만 사람들을 설득하기는 어렵다며 좀더 쉽고 대중친화적인 방식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지금 당장 기후변화로 인한 아라비카 커피품종의 위기를 대비하고, 산지의 생산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게 급선무라고 보기도 합니다.
커피의 역사에 기록될 스페셜티 커피는 아마도 이 모든 움직임의 상호작용을 통해 나올 결과물이 아닐까요? 스타벅스의 시대처럼 어떤 하나의 방식으로 천하통일되는 모습은 잘 상상이 되지 않지만 어쩌면 그런 현실이 찾아올지도 모르죠. 지금은 도무지 알기 어려운 그 미래를 향해 전 세계 스페셜티 커피 회사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매일 걸어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내딛는 이 걸음들이 역사에 어떤 의미로 남게 될지, 그날이 오면 이 레터가 어떻게 다시 읽히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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