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블렌드 구성요소는 왜 자꾸 바뀔까?<br>#006. 블렌드 재료가 바뀌는 이유
글쓴이 김소연 Soy
발행일 2021/05/05
코비드19로 오랫동안 멈춰있던 신규 바리스타 로스터리 세미나가 다시 열렸습니다. 팀에 조인한지 반 년이 되어가는 오니와 몰리, 그리고 어느새 1년 반이 지난 모네와 어쩌면 다 아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여전히 여러 명이 모이기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오랜만에 둘러앉은 자리에 생기가 돌았습니다. 세미나를 준비하다가 BB레터 구독자 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로스터리에서 이 질문 자주 받거든요.
“블렌드 재료는 왜 자주 바뀌나요?” (그러면 커피맛이 들쭉날쭉해지는 것 아닌지?)
어느 로스터리 카페에나 시그니처 블렌드가 있습니다. 빈브라더스에는 세 가지 커피가 있죠. 다크초콜릿과 견과같은 블랙수트, 시트러스 과일같은 벨벳화이트, 구수한 보리차같은 몰트.


새삼스럽지만, 시그니처 블렌드는 왜 있어야 하는 걸까요?
• ‘날씨 추워지니까 그집 커피 생각난다.’ 하고 찾아가서 ‘그래, 이 맛이지.’ 할 수 있는, 아는 커피.
• ‘거기 가면 블랙수트 아메리카노 먹어봐.’, ‘여름엔 벨벳화이트 아이스 롱블랙이 좋더라’ 처럼 내 취향을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재료.
평양냉면 단골집에서 기대하는 것처럼, 시그니처 블렌드는 '늘 먹던 걸로'를 가능하게 합니다.
보릿고개 내내 뉴크롭이 쏟아져 들어오는 이 시즌을 오래 기다렸습니다. (여러분, 갓 재배된 햇커피를 마음껏 즐길 때입니다. 같은 블렌드여도 재료가 햇열매(뉴크롭)로 바뀌면 클린컵이 어떻게 좋아지는지 비교 테이스팅하며 신날 준비를 합시다!) 블랙수트도 재료 세 가지가 차례대로 뉴크롭으로 바뀌게 됩니다. 3월 브라질에 이어 6월에 에티오피아, 8월에 콜롬비아가 차례로 변경될 예정이에요. 6월은 '벨벳화이트'와 '몰트'의 구성요소도 변경되고요.
이렇게 변경 공지가 잦아질 때가 되면 바리스타 분들과, 파트너카페 사장님들이 생각납니다. 고객들에게 일관된 커피를 내어드리려는 프로들의 긴장감이 전해지는 것 같아요. 커피 맛이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하실 거고, ‘일관성있는 향미를 유지하려고 하면, 꾸준히 같은 재료를 소싱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드실 거잖아요.
뻔한 얘기 같지만, 로스터리에서는 시그니처 블렌드의 테마가 유지되도록 변수들을 튜닝하는 루틴이 정말 많아요. 그걸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의문이나 걱정이 좀 누그러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적어봅니다. 1) 구성요소별 비율, 2) 로스팅 포인트가 조정되는 경우도 있지만, 가장 규칙적으로 생기는 굵직한 변화는 3) 구성요소의 변화입니다. 돌아보니 지난 1년간 블랙수트 구성요소는 총 7번 바뀌었네요. 두 달에 한 번씩은 구성요소가 변한 겁니다. 그럼 왜 그렇게 자주 바뀌어야 했던 걸까요?

로스터리 세미나 현장. © 정애라 Po
블렌드 구성요소가 바뀌는 가장 큰 이유는, 한 가지 커피로 1년치를 사고 싶어도 이름표 붙은 커피로는 그렇게 큰 물량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빈브라더스에서는 농장주와 농장명, 워싱스테이션, 품종, 프로세싱, 고도 등의 정보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추적가능한 커피들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이름표가 붙은 생두의 양은 제한적입니다. 예를 들어 블랙수트에 어울리는 브라질로 마음에 드는 커피 1년치 물량을 사려면 적어도 3가지는 골라야 해요. 블랙수트는 브라질만 1년에 3번은 바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구성요소가 세 가지이니 변경횟수도 늘어나는 거죠.
하지만 지역명이나 항구명만 알 수 있는 '브라질 산토스' 한 가지보다, 농장명이나 워싱스테이션 이름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세 가지 커피가 훨씬 일관성 높은 '블랙수트다움'을 구현해줍니다. 재료가 바뀌어도 구성비율이나 배전도 변경이 필요 없을만큼 비슷한 캐릭터의 재료들이거든요.
한편, 블렌드용으로 구매하는 커피는 저희가 함께 성장하고 싶은 수입업체(importer)나 수출업체(exporter) 파트너에게 내미는 손이기도 합니다. 한 달만 판매하는 싱글오리진에 비해, 1년 내내 판매하는 블렌드용 커피는 구매량이 훨씬 많으니까 그 구매가 더 의미있게 사용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매년 고심하게 돼요.
스페셜티 커피 유통 씬에도 진짜 멋진 플레이어들이 있어요. 훌륭한 커피를 만들어놓고도 이익구조에서 소외되기 쉬운 생산자들 편에 서는 실력자들입니다. 커피 퀄리티는 결과로 따라오고요. 농부들이 지속가능하게 성장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수입업체와 수출업체들입니다. 미국의 Red Fox Coffee Merchants, 영국의 Falcon Coffees, 과테말라의 Primavera, 콜롬비아의 Cofinet 같은 곳들이에요.
파트너들과 함께하며 배우며, 일에 대한 자부심이 더 커집니다. 이런 파트너들과 오래 함께하며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요. 굵직한 블렌드 물량을 구매하는 건 함께 가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우리가 지지하는 파트너가 성장하는 데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기도 합니다.

케이브와 패트릭의 주간 QC - 관능평가
시그니처 블렌드가 늘 그맛 그대로 있기 위해 참 많은 사람의 공이 들어갑니다. (잠시 팀원들에게 취할테니 마음의 준비를!)
• 매일 | 로스터 패트릭은 생산할 때마다 온습도와 대기압, 생두별 수분함량, 화력, 배출온도, 로스팅 시간 등의 트래킹 가능한 모든 정보를 기록합니다.
• 매주 |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있는 QC에서는 과녁에서 벗어난 요소가 없는지 로스터 케이브와 함께 검토합니다. 커핑으로 하는 관능평가와 데이터에서 튀는 요소를 모두 확인합니다. 블렌드 비율 차이에 따른 변수를 최대한 제거하기 위해 에스프레소는 6개 샷을 섞어 테스트합니다.

주간 QC - 데이터 리뷰
생두 변경이 없어도 계절에 따른 결과물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배전도나 로스팅 프로파일이 수시로 세부 조정되는데요. 패트릭이 매주 업데이트된 내용을 모든 팀원에게 공유합니다. 스테이지(카페) 팀은 그 정보를 참고해서 추출 세팅을 잡고요. 주간 QC로 맛보지 못한 배치에서 이슈가 있다면 바리스타 팀의 현장제보가 힘을 보탭니다.
새로운 생두가 도착하면 로스팅팀이 바빠집니다. 모든 생두 백bag을 열어 수분함량이 높은 건 없는지 측정하고 다시 잠그는 작업입니다. 수분함량이 높은 백bag이 있다면 수입/수출업체에 피드백도 줘야 하지만, 상대적으로 품질이 변하기 쉬운 상태이니 빠르게 사용해야 하거든요. 함께하는 팀원들이 너덜너덜(?)해지는 대작업이지만 1년 동안 쓸 중요한 재료라 스킵할 수가 없어요.
구성요소가 변경될 때마다 변경 2주 전부터 내부에서 테스트가 진행됩니다. 구성비율이나 배전도가 조정될 필요는 없는지 확인하는 등 최대한 일관된 테마가 유지되도록 조정하는 작업입니다. 샘플로스터와 메인로스터 테스트를 거쳐 QC 후 최종 튜닝 후에야 빈브라더스의 모든 매장, 그리고 카페 고객사로 출고되는 제품에 변경이 적용됩니다.
시그니처 블렌드는 자신있게 권할 수 있는 커피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계속해서 움직이는 과녁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독자님에게 시그니처 블렌드는 무엇인가요?
그린빈 소싱 관련 용어
해외 생두업체 아티클을 번역해 읽을 때, 해외에서 소싱하는 로스터리 카페에서 하는 퍼블릭 커핑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를 이해할 때 유용할 몇 가지 단어.
• 스팟 Spot 구매
로스터리에서 생두가 필요할 때, 수입업체가 갖고있는 재고 중에 구매하는 것. 미리 구매하겠다고 약속할 필요 없이 쿠팡이나 수퍼마켓에서 주문하는 것처럼 필요할 때 언제든 살 수 있다. 단, 수입업체에 있는 재고 중에서 고르는 것이라 필요한 게 없으면 못 산다. 그리고 스팟 재고는 국내에서 팔기 때문에 다른 로스터리와 라인업이 겹치기 쉽다. (예) "올해 코로나라고 겁먹고 조금만 샀더니, 뉴크롭 들어오기 전에 재고가 다 떨어졌어. 그래서 국내 수입업체에서 스팟 재고를 사서 한 달 버텼지. 비싸긴 해도 마음에 드는 게 있어서 다행이야."
• 수입업체 Importer 로스터리들의 생두 소싱 파트너
주로 로스터리들이 있는 나라에 있다. 유럽, 미주권, 호주, 아시아 등. 로스터리가 구하고 싶어하는 생두 라인업을 구해서 갖춰놓는다. 이마트나 마켓컬리같은 존재. 업체에 따라 강점과 큐레이션 방향이 다르다. 특정 원산지에 특화돼있기도 하고, 협동조합에 포함돼있지 않은 영세농부 트레이닝 및 판로개척에 힘을 쓰기도 하고, 블렌드용 혹은 프리미엄 라인업 등 특정 카테고리에 강하기도 하다. 어떤 수입업체는 로스터리에서 생두 구매하는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분할 배송, 보관할 공간 제공 등) (예) "미국 수입업체 A사는 디카페인 라인업의 폭이 참 넓어. 프로세스별, 원산지별로 다양한 옵션이 있어. 디카페인 라인업을 늘리고 싶으면 그 업체에서 샘플을 받아봐."
• 수출업체 Exporter 커피산지 생산자의 수출 파트너
커피 산지에 있다. 커피 수출에 필요한 업무를 대행한다. 수입업체가 연결되지 않아도 먼저 구매해주기도 한다. 각종 서류 준비, 계약 및 수출통관 업무, 항구까지 운송해줄 운송업체 예약 등을 커버한다. 수입업체를 통해 입수된 로스터리 고객의 의견을 농장에 전달하고, 새로운 트렌드나 기술을 가르쳐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수확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융통해주기도 한다. 지역 농협 (농업협동조합) 같은 존재. 대규모 농장 일부를 제외하면수출업체를 끼지 않고 직접 수출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소위 다이렉트 트레이드도 계약은 수출업체와 하게 된다.
• 랏 Lot
판매하는 한 묶음. 좁은 범위일수록 일관성이 높다. 커피를 기억하고 다시 찾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예를 들어, 우리 할머니네 참외밭에서 파는 참외만 포장해서 ‘구희 참외’로 이름붙여 팔면 마이크로 랏Micro Lot이다. 이게 입맛에 맞는 MD는 매년 예약해서 산다. 수확 직후 예약된 곳으로 차례대로 판매된다. 문제가 있다면 구희 할머니한테 연락이 온다.
할머니네 동네 농협에서 같은 품종을 모아서 팔면 ‘상주 참외’가 된다. 지역 이름이나 협동조합 이름이 붙는다. 지역 블렌드Regional Blend다. 당연히 랏의 크기도 커진다. 토양 성분이나 기후가 비슷한 한 동네에서 생산되니까 열매도 대체로 비슷하지만, 우리 할머니랑 옆집 할머니의 비료 사용이나 물 주는 주기 같은 게 다르니 약간씩 차이가 난다.
마지막으로, 남은 참외들을 다 모은 것. 나라마다 부르는 이름은 제각각이다. 랏의 크기는가장 크고 일관성은 가장 낮다. 대신 그만큼 가격이 저렴하다. 시장 전체 수요/공급에 따라 가격이 출렁인다. 이걸 수출하면 ‘한국산 참외’가 되려나. 산토스 항에서 모여 출발한 여러 브라질산 커피가 퉁쳐서 ‘브라질 산토스’로 불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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