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커핑 자신감은 어디서 올까요?<br>#003. 개비의 커피 커리어 인터뷰
글쓴이 개비 Gabby Wright, 김소연 Soy
발행일 2021/04/14
"이 커피에서 뭐가 느껴지세요?"
여러 명이 둘러선 커핑이 막 끝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내게 처음으로 의견을 물어본다면 어떠신가요? 나의 커핑 노트를 사람들과 나누는 게 편안하신가요? 다른 사람들 의견을 먼저 들어보면서 내가 느낀 걸 검토해보고 싶은가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저는 참 운이 좋았어요. 커핑을 무척 우호적인 환경에서 시작했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그냥 느끼는 걸 편하게 말씀해주셔도 돼요.’ 같은 배려의 말이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그렇지만 여전히 제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커피의 특성을 항목별로 구분해서 인지할 수 있게 되기까지, 그리고 내가 느낀 것을 표현하는 데 자신감을 갖게 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말 팩시밀리 커피의 원격 라이브 커핑(링크)을 보면서, 커핑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커피에 부은 물이 식는 16분 동안 그날의 게스트인 개비Gabby Wright가 지금까지 걸어온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 시간이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커퍼로서 인정받고 싶어서 자격증을 땄어요. 그게 뭔가를 담보해주진 않지만, 더 많은 사람들과 같은 언어로 제가 느낀 걸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기회였어요.
커핑을 많이 하세요. 더 많이 해본 분에게도 배우고, 처음 하는 분과도 해보세요. 경험이 쌓이면 자신감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예요."
미국 유명 로스터리들의 러브마크인 생두회사 레드 폭스(Red Fox Coffee Merchants) 에서 '에콰도르 그린빈 세일즈 리드'를 맡고 있는 개비 커피인으로서 걸어온 길에서 배운 것들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요.
연관된 내용을 모아 대화 형식으로 재구성해봤습니다. 잘못된 번역이 있다면 제보 부탁드려요!
오늘 레터는 누가 보면 좋을까요?
• 스페셜티 씬에서 일해온 한 커피인의 성장기가 듣고 싶은 분
• 커핑 실력을 키우는 법을 알고 싶은 분
• 큐그레이더 자격증이 무슨 의미일까? 고민해본 분
내가 느낀 노트에 대한 확신이 들기까지
Q 큐그레이더시잖아요. 자격증을 따게 된 배경이 있나요?
Gabby(이하 G)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 때문이었어요. 같이 커핑하자고 부르지 않거나, 내게 노트를 물어보지 않았죠. 전 커핑테이블에서 늘 가장 어리고, 유일하게 여자였거든요. 큐그레이더들이 진지하게 커핑하고 있으니 내가 느낀 ‘화이트와인’ 노트가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질문하기가 어려웠어요. 처음 몇 년 동안은 커핑하면서 노트를 적긴 했어도, 다른 커퍼들의 테이스팅노트에 내가 느낀 걸 맞추려고 했지, 제 컵 노트를 공유하진 않았어요.
Q 자격증을 따고 나서는 어떤 게 달라졌나요?
G 제가 느끼는 노트에 대해 인증받은 느낌이 들게 됐어요. 커핑테이블이 초보 커퍼에게는 엄청 주눅드는 분위기일 수 있어요. 숙련된 커퍼들이 마시면서 ‘오, 이건 포도같네요. 오, 이건 커런트같고, 프랄린 노트도 느껴져요.’라고 하면 속으로 ‘프랄린이 뭐지? 나는 안 먹어봤는데.’ 이런 생각이 들지만 얘기하기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커핑할 때 주변에 커핑 초보자나 내성적인 사람이 있으면 제가 먼저 같이 하자고 해요. “어떻게 느껴지는지 저한테는 얘기해줘도 돼요” 하면서요.
커핑 실력을 키우는 방법
'근육 기억'을 장착하려면
Q 커핑은 어떻게 훈련하면 좋을까요? 큐그레이더는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요?
G 커핑, 커핑, 커핑이요. 큐그레이더는 커핑 스킬 테스트의 연속이에요.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1. 의식하면서 맛보기 : 맛보는 근육 기억* 키우기
2. 많이 커핑하기
3. 사람들과 같이 하기
커핑을 같이 할 사람은 누구라도 좋아요. 나보다 더 숙련된 사람과 함께 커핑하면 어떻게 표현하고 평가하는지 배울 수 있어서 좋고요. 초보 커퍼라면 가르쳐줄 수 있어서 좋아요. 누군가를 가르쳐줄 때 제일 많이 배우잖아요. 그렇게 커핑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자신감으로 이어져요.
*근육 기억 (Muscle Memory) : 반복을 통해 몸에 각인되는 절차기억의 한 가지. 계단 오르기, 자전거 타기, 운전하기, 타자 치기가 대표적인 예. 반복할수록 강화되어 결국 무의식적으로 할 수 있게 되는 수많은 일상 활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1) 근육 기억은 정신 기억보다 저장하기가 훨씬 어렵다. 여러 차례 연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기억으로 뿌리내리면 여간해서 지워지지 않는다.2) * 출처 : 1) 존 크라카우어, <운동 기억 응고화> / 2) 데이비드 솅크, <망각-알츠하이머 병이란 무엇인가>

Q 커피를 업으로 하기 전에는 어떻게 ‘의식하면서 맛보기’를 훈련하셨어요?
G 동네 카페에서 커피 마실 때, 원두 패키지나 원두카드에 적혀있는 테이스팅노트를 느낄 수 있나 찾아보면서 마셨어요. 로스터리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커피를 소개하는지 잘 아니까요.
Q 이런 사람들이 큐그레이더 자격증을 따면 도움이 되겠다 하는 게 있나요?
G 이건 대학 졸업장과 비슷한 면이 있어요. 지금 맡은 일을 하는 데 졸업장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일을 구할 때는 졸업장이 도움이 될 때가 있잖아요. 분야로 생각해보면, 그린빈 바잉, 커피 세일즈, 품질 관리, 연구소, 커핑 기준 (프로토콜) 수립 등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한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큐그레이더는 넓은 범위의 사람들과 인지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서의 칼리브레이션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우는 거예요. 공신력있는 기준에 맞춰서 테이스팅노트나 점수를 공유하는 거니까요.
Q 어떤 향과 맛을 느꼈을 때, 그걸 표현할 적당한 단어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아요.
G 사람들과 같이 커핑하면서 얘기를 나눠보면, 전문 커퍼들이라도 테이스팅 노트가 같지 않아요. 저랑 라이언도 오늘 같이 커핑하면서 언급한 노트가 레몬과 자몽, 토스트와 버터처럼 다르죠. 하지만 큰 카테고리에서는 비슷하잖아요. 향의 계열을 찾는 것부터 생각해보면 좀더 쉬울 것 같아요.
많은 경우, 특히 문화적 배경이 다른 커퍼들이 모여있을 때는 더욱 테이스팅노트를 서로 공감하기 어려워요. 전에 콜롬비아 우일라에서 커핑하면서 딱 생각나는 미국 사탕이 있었는데, 그 테이블에 있는 커퍼들은 저 빼고 다 영국 사람들이었던 적이 있어요.호주에 있을 때는 커퍼들이 얘기하는 테이스팅 노트 중에 모르겠는 게 많아서 동네 마트에서 현지
과일들 사서 먹어보고 했었죠. 최대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Universal) 노트를 사용하려고 해요. 제가 미국 사탕을 얘기하면, 다른 나라 사람은 공감할 수가 없으니까요. 반대로 다른 사람이 얘기하는 노트가 제가 모르는 거라면, 제가 갖고 있는 경험치와 매칭할 수 있을만한 게 뭘지 찾아보려고 해요.
"제가 보통 하는 커핑은요"
생두회사 세일즈 리드의 관전포인트
Q 커핑하면서 테이스팅 노트는 어떤 식으로 파악하세요?
G 큰 계열의 노트 위주로 분류해요. 구운 느낌의 버터리한 커피라거나, 시트러스 과일같은 커피라거나 하는 식으로요. 고객들이 '이런 커피를 찾고있어요'라고 요청했을 때 매칭해줄 수 있게 그룹핑을 하는 거죠. 한 컵으로써 복합적이라서 싱글오리진으로 쓰기 좋을지, 블렌드로 쓰기에 더 적합할지 처럼 큰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게 하는 데 집중해요.
Q 커핑할 때 체크하는 점이 있나요?
G 가장 중요한 건 결점이 없는지예요. 기본적으로 산지에서 미리 체크하니까 치명적인 결격사유 (페놀, 포테이토 디펙트 등)는 잘 없어요. 하지만 창고에서 오래 보관된 경우에는 향미가 눅눅해졌을 수도 있으니까 문제가 있는지 여부를 구매하려고 하는 고객(로스터리)에게 얘기해줄 수 있어야 하잖아요. 처음 맛 봤을 때의 커핑 기록이 있으니까, 그것과 비교했을 때 지금 테이스팅노트가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확인해요.
Q 커핑 테이블을 보통 어떻게 세팅하세요?
G 두 가지 다른 커핑이 있어요. 하나는 구매할지 여부를 결정할 때예요. 같은 커피를 세 개씩, 총 20여 개 컵을 블라인드로 커핑해요. 예를 들어 A라는 커피를 1번, 10번, 20번 컵에 놓는 식이죠. 이 때는 1~6점까지 점수를 매겨요. 6점이 좋은 거예요. 세 컵이 모두 6점이라면 가장 이상적인 경우겠죠? 결격 요소가 있지 않은지 일관성을 위주로 체크해요. 다른 하나는 구매 후에 하는 커핑인데요. 한 커피당 2-3개 컵을 깔고 일관성을 체크하기도 하지만, 이 때는 구체적인 노트를 판단하고 점수를 매겨요.
'산지인데 왜 커피가 맛이 없지?'
커피 커리어의 시작
Q 에콰도르 세일즈 리드를 맡고 있으신데요. 에콰도르와의 인연이 궁금해요.
G 16살 때 에콰도르에서 1년 살았어요. 그 후로 2년에 한 번씩은 계속 다시 다녀왔어요. 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한 달까지 기간은 그때그때 달랐지만요. 저는 시애틀에서 자랐는데요. (소이 주 : 스타벅스 1호점으로도 유명한, 커피의 도시죠.) 9살 때부터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어요. 에콰도르에 갔던 열 여섯 살 때 쯤에는 카푸치노를 자주 마셨어요. 시애틀과 에콰도르의 카푸치노 맛 차이를 느끼기엔 충분할 만큼요.
Q 에콰도르 카푸치노는 어떻던가요?
G 마실 수 없을 정도였어요. (웃음) 여기는 커피 산지 아니야? 왜 이렇게 별로야? 생각했죠. 수출국과 수입국의 구조를 모를 때였으니까요. 그때는 에콰도르에 스페셜티 커피가 거의 없기도 했지만, 있어도 에콰도르 내에서 소비되진 않았을 거예요. 제가 마신 카푸치노는 80점을 훨씬 밑도는 커머셜급 커피로 만들어진 거였던 거고요.
왜 좋은 커피들은 다 해외로 수출되고, 국내에는 저품질의 커피만 남는건지, 너무 알고 싶어졌어요. 그걸 이해하고 싶어서 라틴아메리카 연구와 정치경제학을 전공하게 된 거예요. 그렇게 7년을 공부하고, 배낭여행으로 11개월 동안 중남미 커피 산지란 산지는 다 다녔는데요. 그러다가 이렇게 커피를 업으로 하게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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