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로스터리 팀, 바빠보이는데 뭐 하시나요?<br>#002. 로스터리의 루틴 — 생두 소싱 커핑
글쓴이 김소연 Soy
발행일 2021/04/07
"로스터리에서 다들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요. 각자 너무나 바빠 보이는데, 무엇 때문에 바쁜지 사실 외부에서는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안녕하세요. 로스터리 소이입니다. 지난 1호 뉴스레터에 남겨주신 반가운 피드백에 이런 질문이 있었어요. (물어봐주셔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COVID-19 이후 오픈 커핑도 멈춘 지 오래고, 로스터리가 워낙 인천에 뚝 떨어져 있기도 해서 바리스타 분들과의 교류가 너무 드물어졌죠. 몇 편에 나눠 로스터리 루틴을 소개드려볼까 해요.
로스터리에서는 수많은 커핑을 합니다. 이번 주에 생산한 블랙수트와 벨벳화이트 품질 체크를 위해, 다음 달에 런칭할 원두 테이스팅노트 결정할 때, 콜드브루 몇 개월동안 팔아도 될지 의사결정할 때 등등.
QC와 더불어 매주 반복되는 강도높은 커핑은 우리가 선보일 생두를 구매하기 위한 커핑인데요. 생두 소싱을 위한 커핑에 참여하는 커퍼들의 시간을 합치면 매주 30시간에 가깝다는 걸 깨달았어요. 1차 결격 필터링, 2차 디테일 커핑, 3차 브루잉으로 최종 검증까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말 이렇게 시간 써도 되는 것 맞나요? 로스터리의 생두소싱 프로세스가 한 주동안 어떻게 흘러가는지 소개드릴게요.
로스터리의 대표 루틴을 두 가지 꼽는다면,
1. 제품 로스팅에서 출고까지
2. 다른 하나는 커핑일 거예요.
그중 커핑 루틴은 목적에 따라 다시 둘로 나뉩니다.
1. 생두 소싱 : "올여름 라인업으로 출시할 과일스러운 커피 2가지를 찾아야 하는데."
2. 품질 체크 : "이번 주에 생산한 8가지 커피, 모두 목표 퀄리티에 들어오나?"
오늘은 그 중에서 생두 소싱을 위한 커핑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려드릴게요.
Bb에서는 매달 평균 3가지 커피를 골라 소개하고 있는데요. 그 세 가지 커피 뒤에는 선택되지 않은 약 140-150여 개의 커피가 있습니다. 한 달이 4주라면, 매주 35가지 커피가 로스터리를 거쳐가는 셈이죠.

이번 주 커핑 준비...!
화요일 오전 8:00 am
로스터리의 소싱용 커핑은 매주 초 케이브의 공지로 시작됩니다. 매주 수목금 3일간 약 7시간에 걸쳐 진행되는데요. 커핑을 앞두고 월화 이틀간, 로스터 케이브는 샘플 로스팅으로 분주합니다.
커핑은 늘 8시쯤 시작돼요. 무척 불완전하고 쉽게 망가지는 커피 평가 도구, '코와 입'이 가장 쌩쌩한 시간은 커핑에 내어줍니다.
생두 소싱을 위한 커핑은 크게 3차에 나눠 진행되는데요. 하나씩 차례대로 살펴볼까요?
1. 수요일 1차 커핑 : 30-40가지 커피 중 문제있는 것 빠르게 걸러내기
2. 목요일 2차 커핑 : 15-20가지 커피 하나씩 면밀히 뜯어보고 토론하기
3. 금요일 3차 브루잉 : 구매 전 브루잉으로 최종 검증하기

1차 커핑 — 초고속 필터링
수요일 8:00 am - 11:30 am
수요일에는 결격인 커피를 빠르게 필터링합니다. 참여인원은 세 명. QA팀* 중 로스터리 멤버들이 참여해요. 보통 30-40종의 커피가 오르고요. 한 커피당 한 컵만 깔립니다. 초점은 매력 찾기가 아니라 문제 있는 걸 걸러내는 거예요. 쓴맛, 떫은 촉감 등의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커피는 이 단계에서 Bye.
*QA(Quality Assurance)팀: Bb를 대표해 구매할 커피의 품질을 평가하는 커퍼 팀입니다. 어지러울 때까지 무지막지하게 마시고 평가하고 기록하는 게 일입니다. 지금은 로스팅 리드, 생두 소싱 코디네이터, 수석연구원, 숙련된 바리스타 2인으로 구성돼있어요.
각 커피 별 코멘트는 하지 않습니다. 1단계에서 필터링된 커피에 대해서는 수입업체에 자세한 피드백을 드리지 못하고, 1단계에서 걸러질 때 어떤 의견이 나왔는지 공유드리고 있어요.

1차 커핑. OX를 빠르게 판단하는 스피드 퀴즈
2차 커핑 — 면밀한 체크
목요일 8:30 am - 11:30 am
각 커피를 가장 디테일하게 뽀개는 시간입니다. 이 단계가 우리가 커핑 하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모습에 가장 가깝겠네요. 바리스타 멤버를 포함한 QA팀 전원이 참여합니다.
평균 20종 정도를 맛보는데요. 항목별로 구체적으로 평가합니다. 주된 향과 애프터의 강도, 산미와 단맛의 강도, 테이스팅 노트, 컵 간 일관성 및 클린컵과 밸런스까지. 제임스를 주축으로 개발된 자체 커핑 시트를 사용하고 있어요.

커핑을 준비하는 로사와 케이브.
그리고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각 커피의 용도입니다. 같은 커피라도, 블렌드용인지 싱글 오리진 용인지, 블렌드용이라면 누룽지 같은 몰트용인지, 다크 초콜릿 같은 블랙수트용인지에 따라 이 커피가 적절한지에 대한 판단이 달라지겠죠?
블라인드 커핑 후에는, 둘러앉아 각 커피 별로 팀원들의 평가를 나눕니다. 로스터 케이브가 샘플 로스터로 로스팅한 특징이 제품 생산용 대량 로스팅에서는 어떻게 다르게 발현될 수 있는지에 대한 참고의견을 공유해주기도 해요. 이때 나누는 이야기는 실시간으로 속사포처럼 기록됩니다. 데릭의 키보드 소리를 우렁차게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에요. 타다다다닥...
2차 커핑 기록은 여러 용도로 사용됩니다.
1. 우리 스스로를 위한 기억저장소
수많은 커핑 속에서 이 순간의 기억은 내일만 돼도 아스라해집니다. 그때 어땠더라 궁금해지는 순간에 다시 꺼내봅니다. 구매해서 도착한 커피가 우리의 기억과 다르게 느껴질 때, 그리고 당장 다음 날 브루잉해서 맛보면서.
2. 샘플을 보내준 수입업체와의 동기화
디테일한 커핑 피드백이 쌓여갈수록, 파트너도 Bb팀의 취향을 점점 더 잘 알아갑니다. 샘플을 보내주는 단계에서부터 우리가 구매할만한 걸 골라주면 타율이 높아지니 win-win이죠. 로스터리 팀에서는 같은 가짓수의 샘플을 로스팅하고 커핑할 때 고를만한 게 늘어나니 좋고요. 한 번에 4-5가지 이상의 업체로부터 샘플을 받다 보니 로사는 금요일이 되면 팀의 커핑기록을 번역하고 메일 쓰느라 바쁩니다.
3. 여러 장소에 있는 팀과의 동기화
이날 커핑 후 남은 원두들은 데릭의 랜덤 뽑기를 거쳐 빈브라더스의 각 스테이지(카페)로 보내집니다. 2차 커핑 기록은 각 스테이지에서 각자가 느낀 노트와 QA팀의 의견을 비교해볼 수 있는 참고자료가 되죠.
3차 브루잉 — 최최종 검증!
금요일 8:00 - 8:45 am
2차 커핑에서 선별된 5~10개 이내의 구매 후보가 테이블에 오릅니다. 왜 또 할까요? 그리고 커핑 볼이 아니라 클레버 드리퍼로 추출하는 이유는 뭘까요?
1. 후각 미각 리셋 후 더블체크
주변에 놓인 커피가 뭔지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잖아요. 하루를 사이에 두고 다른 컨디션에서, 함께 비교되는 컵이 훨씬 더 엄선된 상태에서 한 번 더 검증하면, 어제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거나, 결론이 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어제 검증하고 싶었던 포인트를 확인합니다.
2. 일관성 체크 보완
2차 커핑에서 커피 별로 두 컵만 평가하면서 놓칠 수 있는 일관성 항목을 보완합니다.
3. 고객이 맛볼 방법으로 마지막 확인
브루잉했을 때는 커핑으로 맛볼 때보다 향의 강도가 약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래서 브루잉으로도 여전히 소개하고 싶은 매력이 잘 드러나는지 확인합니다.
이 날은 정보를 공개하고 커핑합니다. 맛본 의견을 나눌 때 원산지, 품종, 가공방법, 농장 이름, 수분함량, 유기물 손실률(a.k.a. 로스팅 포인트) 데이터를 보며, 관능평가에서 보정해야 할 부분이 없는지, 생두 수분함량이 너무 높거나 낮지 않은지 등을 검토합니다.
마지막으로 수목금에 걸쳐 팀이 나눈 생각과 배움을 정리해 데릭이 주간 커핑 로그를 공유합니다. 각 스테이지로 배송된 원두는 이 커핑 로그의 관전 포인트를 갖고 맛보면 의미가 더 풍부해지죠.
번개 같은 데릭의 커핑 로그. 3차 브루잉이 끝나면 바로 공유됩니다.
장바구니 담기
금요일 8:45 am - 9:00 am
3차 커핑을 거치면서 최종 후보가 정해지면, 품질 외의 항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구매 여부를 결정합니다. 출시될 라인업에 맞는 적정 가격인지, 물량이 구매하기에 적정한지, 그 구매처로부터 구매할만한 커피로 운송 최소 단위를 꾸릴 수 있을지, 월별로 다채로운 싱글 라인업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같은 것들이죠.
단, 판단이 섰다면 빠르게 수입업체에 연락해 예약합니다. 우리에게 맛있는 커피는 다른 사람들도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구매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는 생두가 로스터리에 도착하기 전에 로사가 미리 받아서 준비해두고 있어요. (로사 최고..!)
마치며
평균적으로 한 달에 150종의 커피가 테이블에 오르고, 월 3-4개 커피를 소개드리고 있으니, 샘플로 입수하는 커피 중 1-2%에 해당하는 커피가 선정되는 셈입니다. 잠시 자뻑으로 이어질 뻔했지만, 그런 얘기는 아닙니다. 참여하는 팀원 수를 감안하면 매주 커핑에만 거의 30시간이니, '쯧, 너무 비효율적이네' 생각할 만큼 많은 리소스이기도 하잖아요?
로사의 샘플 입수에서 피드백 공유까지 수입업체와의 커뮤니케이션, 케이브의 30-40여 종 샘플 로스팅, 데릭의 기록과 커핑 로그 시간을 더하면, 계산은 그만 하는 게 좋을 정도로 긴 시간이죠. 게다가 처음 로스터리에 왔을 때는 낭만적으로만 보였던 커핑이, 세네 테이블 연속으로 하고 나면 더 이상 놀이 같지 않게 느껴지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핑 시간은 여전히 이곳이 가장 로스터리다워지는 시간 중 하나입니다. 팀이 무럭무럭 자라는 소리가 가장 크게 들리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소싱, 로스팅과 추출, 연구 차원의 관점이 스파크 튀며 만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작년 코로나 발발 전 어스 세미나. 그리운 장면 중 하나.
하루빨리 코로나 단계가 완화되고, 그 전처럼 10명 넘게 바글거리며 커핑하는 날이 왔으면. 다양한 코와 입이 모여 한층 더 풍요로웠던 커핑 세션이 무척 그리운 요즘입니다. 원격으로나마 더 가깝게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볼게요. 그동안, 다른 이야기들로 다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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