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nety plus coffee
스페셜티 커피의 점수 체계는 독특한 면을 갖고 있습니다. 100점 만점이지만 절대 다수의 커피가 90점을 넘지 못하죠. 이럴 거면 90점 만점인 게 낫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나인티플러스커피Ninety Plus Coffee의 이름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합니다. 90점을 넘는 희소한 커피를 만들어내겠다는 마음이 브랜드 이름에 나타나 있어요. 어떻게 하면 90점이 넘는 커피를 만들 수 있을까요? 전통적인 방법은 현재의 스페셜티 커피의 평가 기준으로 바라보았을 때 훌륭한 커피를 만드는 것입니다. 실제로 심사위원들이 평가지를 들고 항목 하나하나의 점수를 매겨 합산했을 때 90점을 넘을 수 있는 커피를요.
나인티플러스의 접근법은 이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미 존재하는 커피의 완성도를 높이는 방식이 아니라 아예 이전에 사람들이 본 적이 없는 커피를 만들어 왔거든요. 나인티플러스는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특별한 가공방식을 게이샤 품종에 적용하여 독보적인 플레이버를 만들어냅니다. 작년에 옥션시리즈로 소개한 유조Yuzo와 루비Ruby가 대표적이죠. 유조는 ‘이거 커피 맞아?'라고 말하게 되는 독특함을 보여줬다면, 루비는 발효 향미의 끝을 보여준 커피라고 할 수 있습니다.
tigre & kulé
‘유조와 루비까지 한 마당에 나인티플러스의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을까’.
이번에 나인티플러스에서 보내준 뉴크롭의 커핑을 준비하며 했던 생각입니다. 끝판왕들을 이미 선보인 것 같은데 나인티플러스의 커피로 또다시 새로움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테이스팅을 시작했습니다.
나인티플러스에서 보내준 13종 커피의 스펙트럼은 넓었습니다. 그중 빈브라더스팀이 가장 특별하다고 생각한 커피는 두 가지, 티그레tigre와 쿨레kulé였지요. 팀원들이 두 커피를 마시고 느낀 테이스팅 노트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tigre
유자, 시트러스, 올리브, 콤부차, 넛멕, 꽃, 레몬그라스, 홉, 애플사이더, 카카오 닙스, 클로브, 장미, 머스크 향수
kulé
사워도우, 견과, 그래놀라, 다크초콜릿, 마라스키노 체리, 보드카, 칵테일, 자몽, 레몬 시럽, 올리브 치아바타, 피스타치오, 밤 페이스트
complexity redefined
보통 한 커피에 대한 여러 명의 테이스팅 노트를 듣다보면 공통된 것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를 통해 커피의 캐릭터가 무엇인지 파악하게 되지요. 그런데 티그레와 쿨레는 팀원들의 노트를 다 들은 후에도 도무지 선명한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에 ‘이 커피들은 정체가 뭐지?’ 라는 생각만 맴돌았어요.
일반적으로 커피는 선명한 테이스팅 노트를 지닐 때 좋게 평가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누가 마셔도 같은 노트가 떠오르는 것을 좋은 커피 경험으로 생각하는 것이죠. 그 잣대로 본다면 티그레와 쿨레는 좋은 커피가 아닐지 모릅니다. 오랫동안 함께 커핑해온 숙련된 커퍼들로 구성된 팀조차 공통된 노트를 뽑아내지 못했거든요.
물론 노트의 선명함clarity이 커피의 품질을 판정하는 유일한 기준은 아닙니다. ‘복합성complexity’이라는 또다른 기준이 있어요. 커피에서 말하는 복합성은 여러 가지의 향미가 동시에 느껴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일반적으로 유사한 것들의 조합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꽃과 과일의 향미가 같이 느껴진다거나, 초콜릿과 캐러멜 노트가 같이 느껴진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렇다면 티그레와 쿨레의 복합성은 어떨까요? 앞에 적힌 노트들을 보니 티그레는 꽃, 시트러스 과일, 허브, 향신료 노트가 보입니다. 쿨레에는 곡물, 견과, 빵, 시트러스 과일, 체리 노트가 적혀 있네요. 어떤 커피일지 감이 잡히시나요? 저는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두 커피를 한 마디로 설명하지 못하겠습니다. 기존의 커피를 묘사할 때 사용하던 ‘복합성’이란 단어로는 부족한 느낌이 든단 말이죠.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제가 두 커피에 대해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 기존 커피의 복합성을 넘어서는 다채로운 향미를 지닌 커피
- 그럼으로써 커피의 복합성을 재정의하는 커피
그래서 티그레와 쿨레는 대표 테이스팅 노트를 부여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몇 가지 노트로 두 커피의 가능성을 한정짓기 보다는 빈브라더스팀이 느낀 노트를 모두 알려드리기로 했어요. 부디 그중에 어느 하나는 공감하시길 바라면서요.
실제로 어떤 노트를 떠올리실지 궁금합니다. 빈브라더스팀이 느끼지 못한 무언가를 느끼실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티그레와 쿨레가 커피의 복합성을 재정의하는 과정을 경험하고 계신 걸지도 모릅니다.
BREW GUIDE
추천 레시피
원두 : 20g / 물 : 320ml / 추출 온도 : 93°C
1. 티그레는 평소 이용하시는 핸드드립 분쇄도로, 쿨레는 그보다 좀 더 가는 분쇄도로 분쇄해주세요.
2. 60g의 물을 붓고, 시계 방향으로 스월링을 3회 진행합니다. 30초 동안 뜸을 들여주세요.
3. 140g의 물을 천천히 나선형으로 돌려가며 부어주세요.
4. 물이 다 빠지면 나머지 120g의 물을 나선형으로 돌려가며 부어주세요.
5. 2분 30초 경에 추출을 마무리합니다.
분쇄도 가이드
같은 그라인더라도 사용 정도에 따라 같은 분쇄도를 적용해도 결과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적정 농도를 위한 그라인더 분쇄도 세팅은 ‘목표 추출 시간’으로 조정하시면 되겠어요. tigre는 평소 이용하시는 핸드드립 분쇄도를 이용하시면 되고요. kulé는 같은 분쇄도 조건에서 추출 성분이 물에 덜 녹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런 이유로 조금 더 가늘게 분쇄 하시길 추천 드립니다.
음용 가이드
두 커피 모두 복합적인 향은 물론 클린컵과 단맛이 좋은 커피예요. 따뜻한 커피로 추출하신 후 천천히 음미해보세요. 온도가 식어가며 점차 다르게 느껴지는 두 커피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