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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을 기다린 머신
#158 어스의 에스프레소 머신 이야기
7년을 기다린 머신#158 어스의 에스프레소 머신 이야기

무언가를 7년 동안 기다려본 적 있으세요? 매일 간절히 기다리는 경우는 드물 테지만, 느슨하게 한 번씩 생각하게 되는 기다림을 해본 적이 있으신지요. 한번 생각해봤는데, 저는 잘 떠오르지 않더군요.


얼마 전에 듀발(Duvall)이라는 미국 회사의 에스프레소 머신 신제품이 나와서 커피하우스 6층에서 한 달 정도 운영해보았어요. 커피하우스 6층은 다양한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자, 실험이나 이벤트의 공간으로도 활용하는 곳인데요. 새로운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를 내린다는 소식이 흥미롭긴 했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언제 한번 마셔봐야겠다는 정도의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커피하우스 6층 ‘시즈널 커피 바’의 풍경

 

그러던 어느 날, 이 머신의 테스트를 담당한 어스를 사무실에서 만나 사용 소감을 물어보았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멍하니 듣고 있었는데, 어스가 이 머신을 7년 동안 기다렸다는 이야기를 하는 순간 호기심이 차오르더라고요. 어떤 에스프레소 머신이길래 7년을 기다렸던 걸까? 아니, 에스프레소 머신을 7년이나 기다리는 어스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7년을 기다렸다고 말하던 순간의 어스

     

오늘 레터는 듀발 에스프레소 머신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어떤 커피 머신을 7년이나 기다리는 어스 — 김의성이란 본명을 가진 흥미로운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듀발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어스가 내린 커피를 마시며 나눈 이야기, 여러분께 전합니다.




지금 이 순간 — 커피하우스 6층


Derek (커피하우스 5층 사무실 어스 자리에서) 어스, 우리 오늘 듀발 머신으로 추출한 에스프레소 마시면서 이야기 나누기로 했는데 어떤 원두로 마셔보면 좋을까요?


Us 블렌드는 잔마다 다를 거라 테스트하기가 어려울 것 같고, 브라질 세하 네그라가 좋을 것 같아요. 카스티요(castillo) 단일 품종이라서요.


Derek 네, 그럼 올라가시죠. (커피하우스 6층에서 하우스팀 준과 마일스가 테스트 중인 것을 발견하고) 여러분, 뭐하세요?


Jun 아, 진동 디스트리뷰터*로 듀발 추출 테스트를 해보고 있었어요. 

(*디스트리뷰터(distributor): 추출 전 커피 가루를 고르게 분산시켜주는 기구)


Derek 오, 어떤 테스트예요?


Miles 짧은 시간 동안 많은 횟수를 추출해도 커피 추출량이 일정하게 유지되는지 측정해보고 있었어요. 곧 끝나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테스트 중이던 준과 마일스. 결과를 살피는 어스

     

Us (준과 마일스의 테스트가 끝나고) 이제 커피 한번 추출해볼게요. 커피 내리는 동안 데릭이 궁금하셨던 것들 이야기 나눠볼까요?


Derek 네, 좋습니다. 



7년 전 — 슬랙에 남긴 링크 하나


Derek 자, 그럼 7년 전으로 돌아가볼까요? 어스가 듀발 에스프레소 머신을 처음 알게 된 게 2019년이라 그랬잖아요. 그때 이야기로 시작해봐요.


Us 네, 그때가 제가 시중에 나와 있는 에스프레소 머신들을 공부하고 또 저희가 보유한 머신들을 실험해보던 시기인데요. 마음 속에 한 가지 의문이 있었어요. 서로 다른 브랜드 머신들의 펌프와 보일러 시스템이 많이 비슷하더라고요. 왜 다들 비슷한 방식을 사용하고 있을까 싶었어요.


그 기원이 언제인지 찾아보니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로터리 펌프는 1960년대에, 듀얼 보일러 시스템은 1970년대에 개발되었더라고요. 50~60년이 지난 시점인데도 여전히 같은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던 거죠.


Derek 그 방식이 효과적이어서 그랬던 건 아닐까요? 유의미한 문제가 있었다면 업계에서 개선하려고 했을 텐데요.


Us 그럴 수도 있죠. 물론 그동안 개선이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단지 주로 사용자 편의성을 더 좋게 만들거나, 새로운 센서가 추가되는 정도의 개선이 많았던 것 같아요. 디자인이 새로워지는 경우는 당연히 꽤 있었고요. 


저는 에스프레소 머신의 외관이나 사용자 경험을 넘어선, 추출 관점에서 새로운 머신이 있을지 궁금했어요. 그때 듀발 에스프레소 머신을 발견했던 거예요. 어디서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찾은 후에 저희 사내 메신저인 슬랙에 올렸던 기억이 나요.


달랑 링크만 남겼던 어스

     

Derek 그래서 찾아보니 듀발 에스프레소 머신은 기존 제품들과 뭐가 다르던가요?


Us 듀발은 기존의 많은 에스프레소 머신이 사용하던 로터리 펌프를 사용하지 않고, 피스톤 기반으로 작동한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었어요.


Derek 로터리 펌프에 피스톤까지... 좀 어려운데요. 풀어서 쉽게 설명해주실래요?


Us 음,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노력해볼게요.


저희가 에스프레소 머신을 평가할 때 사용하는 기준 4개가 있어요. 사용 편의성, 내구성, 관리 용이성, 추출 일관성 이렇게 4개요. 앞의 3개는 사용자 측면이고, 나머지 하나인 추출 일관성은 기계의 성능과 관련이 있죠. 예를 들어 추출수의 온도가 일정한지, 추출되는 커피량이 정확한지를 보는 거예요.


로터리 펌프는 펌프가 커피를 밀어내는 방식이라서 정확한 추출량을 알려면 유량계가 필요해요. 그런데 저희가 테스트해보면 유량계의 정확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꽤 많더라고요. 결과적으로 에스프레소 추출의 오차도 커지게 되고요. 최대 5~10g까지 오차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가 보통 에스프레소 30~40g 추출하는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큰 편차인 거죠.


Derek 그렇군요. 그럼 피스톤 방식인 듀발 에스프레소 머신은 어떤데요?


Us 피스톤 머신의 작동 방식은 쉽게 말하면 주사기 같은 거예요. 이론적으로는 부피 기반으로 빨아낸 양만큼 그대로 내보내는 거죠. 머릿속으로 생각해봤을 때 꽤 정확한 양으로 추출되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더라고요. 아직 듀발 머신이 한국에 출시되지 않았던 상황이라 언제 출시하려나 하고 기다리기 시작했죠.


Derek 음, 피스톤 방식의 의미가 바리스타가 아닌 분들에게 와 닿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뭔가 커피 추출에 대한 패러다임이 달라지는 느낌이라 어스가 흥미롭게 생각한 것도 이해가 가긴 하네요.


그러면 피스톤 방식이 로터리 펌프 방식보다 우월하다고 볼 수 있나요?


Us 아직 그렇게 말하기엔 이르고 엄밀한 검증이 필요해요. 시중에 로터리 펌프 머신이 훨씬 많기 때문에 실험 결과도 그만큼 많아서 우리가 오차를 발견하게 된 면도 있으니까요. 피스톤 머신에 대해 더 많은 실험과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4년 전 — 빈브라더스 합정 & 서울카페쇼


Derek 그런데 어스, 저 갑자기 생각났는데, 한국의 에스프레소 머신 제조사인 제로쓰로의 머신도 피스톤 방식 아니었나요?


Us 맞아요. 2019년부터 듀발 머신의 한국 출시를 한참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국 제조사에서 그것보다 먼저 피스톤 방식의 머신을 출시한다고 해서 주의 깊게 지켜봤었어요. 결국 제로쓰로와 협업해서 저희 합정점에서 필드 테스트를 진행하기도 했죠.

(당시 제로쓰로 안형전 대표님과 진행한 인터뷰는 빈브라더스 저널에서 보실 수 있어요.)


제로쓰로와 진행한 비교 테이스팅 프로그램

     

Derek 그래서 제로쓰로 에스프레소 머신의 테스트 결과는 어땠어요? 기대했던 것처럼 커피 추출량이 정확하던가요?


Us 네, 추출량 편차가 정말 적은 편이더라고요. 테스트를 하면서도 ‘듀발 머신도 이 정도로 나올까?’하는 생각을 했었죠.


Derek 도대체 어스는 듀발의 뭐에 그렇게 빠졌던 거예요(웃음).


그럼 제로쓰로랑 듀발의 에스프레소 머신 둘 다 피스톤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건데, 두 머신의 차이점도 있나요?


Us 피스톤 방식이라는 점에선 유사하지만, 각 제조사의 목표가 다른 것 같아요. 제로쓰로는 유량의 정밀한 조절을 통해 정확한 압력을 구현하는 게 목표인 반면, 듀발은 압력이 달라지더라도 일정한 유량을 만드는 것 자체가 목표인 것 같아요.


Derek 계속 단순한 질문해서 죄송한데, 두 가지를 다 써 본 어스는 제로쓰로와 듀발 머신 사이에 우열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Us 뭘 중요시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압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결과물인 추출량의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요.


에스프레소 머신 개발자마다 생각이 다르기도 해요. 제로쓰로는 압력을 높이면 원하는 만큼 추출할 수 있고, 온도는 압력만큼 결정적인 변수가 아니라고 보는 것 같아요. 반면 듀발은 그와 달리 압력보다는 유량을 조금 더 중요하게 본 것 같고요.


Derek 두 회사 담당자분들이 만나서 토론으로 결론을 내주시면 좋겠는데…(웃음)


Us 개발자마다 이론이 다르기도 하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도 압력과 유량 중에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두 에스프레소 머신에 대한 생각은 달라질 거예요. 저희도 그걸 지금 고민하고 검증해보고 있는 단계이고요.


  

그리고 다시 오늘 — 커피하우스 6층


Derek 2023년 즈음에 합정점에서 제로쓰로 테스트를 하면서 저도 어스에게서 듀발 머신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기억이 나요. 같은 해에 어스가 직접 듀발 머신을 사용해볼 기회가 있었죠?


Us 네, 그해 서울카페쇼에 드디어 듀발 에스프레소 머신이 출품되어서 방문했어요. 거기 계신 테크니션 분이랑 이야기도 나누고, 곧 한국에 정식으로 출시될 거란 소식도 들었죠. 출시되면 저희 매장에서 필드 테스트해보고 싶단 말씀도 드렸고요. 하지만 아쉽게도 계속 출시가 밀리면서 2년 반 정도 지난 지금에야 드디어 테스트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Derek 긴 여정이었네요. 여기까지 독자님들이 잘 따라오셨을지 걱정이 되는데…(웃음)


어스가 듀발로 추출한 에스프레소 한번 마셔볼까요?


듀발로 추출한 브라질 세하 네그라 세 가지 버전

     


Us 세 가지 버전으로 추출했어요. 단위 시간당 유량이 늘어나는 버전, 일정한 버전, 줄어드는 버전으로요. 유량이 늘어나는 버전은 로터리 펌프 머신을 모사한 것이고, 줄어드는 버전은 스프링 레버 머신을 모사한 거예요. 유량이 일정한 것은 듀발이고요.


에스프레소 머신 압력 구현 방식

     


Derek 음, 마셔 보니 세 버전의 차이가 큰데요? 그런데 어느 한 방식이 꼭 좋다기보다는, 커피에 따라서 최적의 유량 기울기가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Us 네 데릭 말씀대로인데요. 사실 세 가지의 비교가 중요한 것은 아니에요. 진짜 중요한 것은 듀발로 수백 잔을 추출해도 추출량이 일관되게 유지되는가인데, 이번에 테스트하면서 그걸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아요. 테스트 결과는 빈브라더스 홈페이지 저널에 올려둘게요.


Derek 네, 왠지 오늘 그 결과까지 다뤘다가는 다음부터 독자분들이 레터 안 읽으실 것 같아서(웃음). 저는 올라오면 꼼꼼히 읽어볼게요.


Us 네, 실험 잘 해서 결과 알려 드릴게요.  




다행히도 어스가 실험 결과는 따로 공유하겠다고 해서 인터뷰는 여기서 마무리입니다. 듀발 에스프레소 머신이 과연 어스가 기대했던 수준의 성능을 보여줬을지 궁금하신 분들은 추후에 빈브라더스 홈페이지 저널을 통해 확인해주시고요.


오늘 레터에서는 어스라는 저의 독특한 동료의 면모를 잘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계획대로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줄인다고 줄였는데 기술적인 이야기들이 많았죠? 이런 내용 없이 어스를 보여드리는 게 어려웠어요. 그래도 최대한 쉽게 써보려고 했습니다.


저는 이제 듀발 머신은 잠깐 잊고, 앞으로 7년 동안 뭘 기다려보면 좋을지 한번 생각해보려고요. 여러분은 그러고 싶은 게 있으세요? 아니면 이미 뭔가를 기다리고 계신가요? 그 대상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뭔가를 기다리는 마음은 참 소중한 게 아닌가 생각했던 인터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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