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데릭입니다.
어떤 커피 산지는 이름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품종이 있습니다. 아라비카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파나마하면 ‘게이샤(Geisha)’, 케냐하면 ‘SL28’이 떠오르는 것처럼 어디에서 개발되어 꽃을 피웠는지에 따라 그 산지와 긴밀한 연결고리가 생기기도 합니다. 조금 덜 알려져 있지만, 온두라스의 ‘파라이네마(Parainema)’나 니카라과의 ‘마라카투라(Maracaturra)’ 또한 그런 경우죠.
오늘 레터의 주인공인 엘살바도르의 ‘파카마라(Pacamara)’ 역시 그렇습니다. 카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커피는 아니지만, 엘살바도르의 고품질 커피를 상징하고 다른 여러 산지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품종이에요.

파카마라 커피 열매 ©World Coffee Research
파카마라의 매력이 참 묘합니다. 저는 블라인드 커핑 세션에서 누군가가 ‘열대과일’이나 ‘채소’ 같은 단어로 커피를 설명하기 시작하면 ‘혹시 파카마라인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노트 몇 개만으로 품종을 추정하게 될 만큼 차별화되는 향미를 갖고 있습니다.
7월에 출시하는 Bb 커피 중에도 파카마라가 있는데, 바로 라스 마가리타스 농장의 커피입니다. 이 커피를 준비하면서 테이스팅 노트만으로는 설명하기가 어려운 커피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커피의 매력이 잘 전달되는지 여부를 떠나서, ‘이 커피, 정체가 뭐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겠다 싶었어요. 고백하건대, 저 역시도 이 커피를 이해하기 위해 꽤 많은 잔의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파카마라라는 커피 품종에 관한 저의 생각을 가볍게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저도 아직 파카마라를 100% 이해한 느낌은 아니어서, 함께 고민하는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시작해 볼게요.
파카마라는 상당히 유서 깊은 품종입니다. 1958년, 엘살바도르 커피 연구소(Salvadoran Institute for Coffee Research)에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오랜 기간의 연구개발을 거친 후인 1980년대 후반에 비로소 농부들에게 씨앗이 배포되었습니다. 그 후 과테말라와 콜롬비아 같은 다른 중남미 국가에도 전파되었고요. 최근에는 아프리카 국가에서 재배하는 경우도 보입니다.
파카마라는 생산성이 뛰어난 파카스(Pacas)와 향미가 우수한 마라고지페(Maragogipe)의 교배종으로 탄생했습니다. 각 품종의 앞 네 글자를 합하여 파카마라(Pacamara)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죠. ‘코끼리 콩(elephant bean)’이라 불릴 정도로 크기가 큰 마라고지페의 영향으로, 파카마라 역시 일반 커피에 비해 원두의 크기가 큰 편입니다. 아마 여러분이 가장 궁금하신 것은 이 커피의 향미일 것 같은데요.

파카스, 파카마라, 마라고지페 커피 열매의 모습. ©Firebat Coffee Roasters
그동안 제가 마신 파카마라의 특징을 추출해 보면 대략 아래와 같은 향미인 것 같습니다. 물론 모든 파카마라가 다 그랬던 것은 아니고, 제가 품질이 좋다고 생각했던 파카마라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농장이나 가공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면모가 있다는 점 또한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1. 커피에서 자주 느껴지는 과일들
파카마라는 기본적으로 과일스러운 커피입니다. 가공 방식에 따라 시트러스 과일이 연상되기도 하고, 베리 계열의 노트가 떠오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복숭아나 살구 같은 핵과 노트를 파카마라에서 느껴본 경험이 많지는 않은데요. ‘뉘앙스’ 정도로 느껴본 기억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개성이 강한 편이지만, 막상 마셨을 때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렇게 파카마라가 우리에게 익숙한 과일 향미를 어느 정도 갖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2. 열대과일과 진득한 달콤함
내추럴 가공을 한 경우에 더 잘 드러나는 것 같은데, 파카마라에서 열대과일을 떠올리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망고나 파인애플, 패션프루트, 파파야 같은 과일이 해당하고요. 여기에 흑설탕이나 캐러멜이 연상될 정도로 강렬한 달콤함도 같이 느껴지면 ‘혹시 파카마라가 아닐까’ 추정하게 됩니다. 로스팅 레벨이 다크하지 않다면 심증이 더 굳어지죠.
하지만 위 문단에서 ‘파카마라’를 ‘SL28’로 바꾸어도 여전히 유효한 설명이 되는데요. 그래서 파카마라를 마신 후에 SL28의 본고장인 케냐를 떠올리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SL28과 차별화되는 파카마라만의 향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바로 ‘녹색’ 향미입니다.

©Maryam Sicard
3. 채소와 녹색 허브
일반적으로 커피에서 잘 느껴지지 않는 채소 노트가 파카마라에서 느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파프리카나 셀러리, 드물지만 양파가 느껴질 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채소 정도는 아닌데, 녹색 허브나 향신료의 느낌으로 다가올 때도 있었고요. 파카마라가 이국적(exotic)으로 느껴지는 주된 이유가 바로 이 녹색 향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익숙한 과일 향미가 기본 토대가 되고, 그 위에 진득하고 달콤한 열대과일과 채소의 녹색 향미가 더해지면서 다른 커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파카마라의 복합성(complexity)이 만들어집니다. 파카마라가 비로소 파카마라다워지는 순간입니다.

7월의 시즈널 커피 ‘라스 마가리타스: 파카마라’
이번에 Bb에서 출시한 파카마라는 콜롬비아 라스 마가리타스(Las Margaritas) 농장에서 재배한 것입니다. 2020년 2월에도 같은 농장의 파카마라 내추럴을 출시한 적이 있고 5년여 만에 다시 소개하는 셈인데요. 콜롬비아 중부 카이세도니아(Caicedonia)에 위치한 라스 마가리타스 농장은 파카마라와 게이샤를 필두로 한, 다채로운 프리미엄 커피들을 선보이고 있어요.
농장이 달라도 비교적 비슷한 향미를 보여주는 게이샤와 다르게, 파카마라는 어찌나 저마다의 개성이 있는지요. 라스 마가리타스의 파카마라 또한 범상치 않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그래도 파카마라 중에서는 쉬운 편이랄까요. 품종 고유의 매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일반적으로 커피에 기대하는 향미의 균형 또한 잘 갖추고 있는 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크랜베리나 포도이고, 패션프루트의 상큼함이 곧 따라옵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커피에 관한 설명인 것 같은데, 머리가 아리송해지는 것은 그다음입니다. 녹색 계열의 이국적인 향이 후반부에 찾아와요. 이것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팀원들과 머리를 모아 고민했는데, 결론은 카다멈(cardamom)과 루바브(rhubarb)였습니다. 카다멈 특유의 알싸한 향과 루바브의 싱그러운 느낌이 이 커피를 표현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완벽한 표현은 아닐 수 있겠습니다만, 마시는 분들에게 힌트가 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라스 마가리타스의 파카마라를 마시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농장의 파카마라와 비교해 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더군요. 그래서 현재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파카마라를 수소문하고 있는데, 한번 커피하우스에서 같이 마셔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해요. 추후에 빈브라더스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지할 예정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커피라고도 생각합니다. 다양한 커피를 마셔온 사람에게도 파카마라 특유의 향미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어요. 그 낯섦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매력의 커피가 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저 취향에 안 맞는 커피가 될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파카마라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동안 게이샤의 아성(?)에 도전한 많은 커피 중에 이렇게 안정적으로 시장에 자리 잡은 경우가 흔하지 않아서입니다. 마찬가지로 고유한 매력을 지닌 시드라(Sidra)나 수단 루메(Sudan Rume) 혹은 유지니오이데스(Eugenioides)가 파카마라처럼 여러 나라에서 안정적으로 생산되고 있는가 하면 아직 그렇지는 못한 것 같아요. 게이샤로 유명한 농장들이 파카마라도 같이 재배하는 경우가 많은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향미의 커피를 찾고 계시나요? 이번에 저희가 소개하는 라스 마가리타스의 파카마라가 아니더라도, 신뢰하시는 로스터리에서 파카마라를 출시한다면 한번 시도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파카마라는 엘살바도르에서 탄생했지만 그곳에만 머무르지는 않았던, 결과적으로 산지를 불문하고 ‘파카마라’라는 이름만으로도 설득력을 갖게 된 커피인데요. 자기 취향에 맞는지 판단해 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파카마라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오늘의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들리셨겠지요. 이번 레터에서는 저의 이야기를 전해 드렸는데, 파카마라 애호가분들이 어떻게 이 품종을 바라보고 또 즐겨 오셨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