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끝자락입니다. 이제 봄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는 느낌이 드네요. 봄을 더 즐기고 싶은 마음과 다가올 여름을 기대하는 마음이 동시에 드는 것 같아요. 저는 여름을 좋아하는 편이라 신나는 마음이 더 크지만요.
커피에도 계절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합니다. 커피는 특성상 여러 층위의 계절성을 갖고 있는데요. 가장 직관적인 것은 추울 때 따뜻한 커피를, 더울 때 시원한 커피를 더 마시고 싶어지는 것일 텐데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려는 몸의 본능적인 요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온도 감각의 차원을 넘어서는 커피의 계절성도 있습니다. 저희가 시즈널 커피(seasonal coffee)란 이름으로 판매하는 커피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는데요. 하나는 매달 서너 종류씩 선보이는 싱글오리진 커피이고, 다른 하나는 가끔씩 소개하는 시즈널 블렌드입니다.
싱글오리진 커피의 계절성은 ‘산지의 수확시기’와 ‘산지와 소비지 간 거리’의 함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커피의 수확시기가 언제인지, 그리고 배에 선적되어 로스터리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걸리는지에 따라 제품의 출시 시기가 정해지는데요. 해가 바뀌어도 이 시기가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가 되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가장 신선한 에티오피아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시기가 보통 늦봄이나 초여름이니 한국인에게 제철 에티오피아 커피란 이 시기에 출시되는 커피라 볼 수도 있을 거예요.

에티오피아 ‘하로 와추(Haro Wachu)’ 워싱 스테이션 전경
그에 반해 시즈널 블렌드는 소비자의 계절을 따라갑니다. 매년 봄에 출시하는 ‘개화’는 그야말로 계절을 겨냥하는 커피죠. 게이샤와 에티오피아의 조합이라는 향미적으로 완결성 있는 커피를 만든 게 먼저였고, 잘 어울리는 계절과 이름을 붙인 게 나중이었는데요. 어느 순간부터는 무엇이 먼저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봄이라는 계절에 녹아든 느낌이 듭니다.

올해 4월 출시한 시즈널 블렌드 ‘개화’
또다른 시즈널 블렌드 ‘휘게’는 겨울이라는 계절, 특히 연말이라는 특별한 시기를 염두에 두고 만든 커피입니다. 겨울에 마시는 라떼를 상상하며, 서로 다른 향미의 에티오피아 내추럴 커피를 조합하여 만든 커피였죠. 이 역시 어느 순간부터는 무엇이 먼저였는지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겨울이라는 계절과 휘게 블렌드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생긴 것 같아요.
빈브라더스 커피를 오래 즐겨오신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4~5년 전쯤 시즈널 블렌드를 많이 출시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출시했던 커피 중에 지금까지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개화와 휘게 정도인데요. 그만큼 계절과 연결고리가 있는 커피가 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희가 주장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고, 커피를 드시는 분들이 인정해 주셔야 가능한 일이니까요.

올해 2월 출시한 시즈널 블렌드 ‘휘게’
다가오는 6월에 새로운 시즈널 블렌드를 출시합니다. 바로 ‘재미(JAMMY)’라는 이름의 커피예요. 이 커피를 설명하는 데에는 두 가지 단어가 필요한데요. 바로 다크 로스팅과 과일잼입니다.
다크 로스팅
빈브라더스의 시즈널 블렌드 중에 로스팅 레벨이 가장 라이트한 것은 개화입니다. 커피의 플로럴한 특성을 잘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인데요. 휘게 역시 라이트하게 로스팅하는 편이지만, 향미 강도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로스팅 레벨을 갖고 있습니다.
재미 블렌드는 로스팅 레벨 측면에서 개화와 휘게의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원두 색으로 따지면 블랙수트와 세븐티 사이 정도 될까요. 저희가 1년에 50종 이상 출시하는 시즈널 커피 중에 재미만큼 다크한 커피는 거의 없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시즈널 블렌드뿐만 아니라 빈브라더스의 시즈널 커피 중에서 독특한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러한 다크 로스팅의 결과로, 재미 블렌드는 설탕처럼 진득한 달콤함과 다크초콜릿의 묵직한 풍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6월 출시를 앞둔 새로운 시즈널 블렌드 ‘재미(JAMMY)’
과일잼
사실 저희는 이미 ‘세븐티’라는 이름의 다크 로스팅 커피를 갖고 있습니다. 이미 세븐티가 있는상황에서 굳이 왜 다크 로스팅 커피를 하나 더 만들었을지 궁금하셨다면, 재미 블렌드의 생두 구성에서 어느 정도 답을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재미는 세 가지 서로 다른 내추럴 커피로 이루어진 블렌드입니다. 다크 로스팅을 해도 존재감을 보여줄 정도의 과일스러운 커피들을 사용했죠. 이러한 과일 향미와 다크 로스팅 특유의 묵직함이 어우러지면서 농밀한 과일잼의 풍미를 커피에서 느낄 수가 있는데요. 휘게 역시 내추럴 커피로만 이루어진 블렌드지만 에티오피아 커피를 사용하고 로스팅 레벨이 비교적 라이트하기 때문에 밝은 톤의 향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재미는 조금 더 잘 익은 과일 향미를 보여주고요.
과일스러운 커피의 조합이긴 하지만, 그래도 재미 블렌드 향미의 상당 부분은 다크 로스팅의 표현입니다. 로스팅 레벨이 높아질수록 커피 향미에서 로스팅의 지분이 커지고, 결과적으로 다크 로스팅 커피는 진한 다크초콜릿의 향과 강렬한 단맛을 주요 특징으로 갖게 됩니다.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맛있는 커피가 되지만, 재미 블렌드의 경우 좋은 내추럴 커피가 가진 검붉은 과일의 뉘앙스가 향미에 더해지면서 또 다른 매력의 다크 로스팅 커피로서 존재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매력은 곧 커피의 이름이 되었죠.
따뜻할 때는 다크 로스팅 커피의 매력을 보여주는데, 온도가 내려갈수록 과일스러운 향미가 드러납니다. 저는 이 커피의 진면목이 다 식은 후에 오롯이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뜨거운 물로 커피를 내리셨다면 따뜻할 때부터 식을 때까지 모든 온도를 경험해 보시기를 추천해 드리고, 색다른 풍미를 즐기고 싶으시다면 콜드브루를 드셔보시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로스팅 프로파일을 확정함으로써 재미의 출시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6월이 되면 빈브라더스의 매장과 홈페이지에서 만나보실 수 있을 텐데요. 과연 재미는 빈브라더스의 시즈널 블렌드로서 잘 자리잡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2025년 6월의 '다크했던 추억'으로 남게 될까요? 여러분의 반응이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