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많은 해외 커피 브랜드가 서울에 카페를 열었습니다. 커피 업계 소식을 부지런히 따라오셨다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브랜드 이름이 몇 개 있으실 거예요. 그동안 원두로만 접할 수 있었던 미국과 호주, 유럽의 커피 브랜드를 서울에서 만나는 것은 무척이나 반갑고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외 브랜드들이 서울로 진출하는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한국 커피 시장의 높은 성숙도와 큰 규모가 있었을 것 같아요. 그동안 유럽과 중동에서만 열렸던 월드 오브 커피(World of Coffee) 행사가 작년에 처음으로 아시아에서 개최되고, 그 도시가 부산이었던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일 테고요. 현시점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다이나믹한 커피 시장이 한국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죠.

‘2024 월드 오브 커피 &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부산’ 현장. ©World of Coffee Asia
서울과는 맥락이 조금 다르지만, 저는 최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5월 15일에 ‘월드 오브 커피 자카르타(World of Coffee Jakarta)’ 박람회가 열리는데요. 작년 부산에 이어 두 번째로 아시아에서 열리는 월드 오브 커피 행사입니다. 첫 아시아 개최 도시였던 부산 다음으로 선정될 정도로 스페셜티 커피 협회가 자카르타를 중요하게 본 게 아닐까 싶어요.
물론 도시의 사업 환경으로 보나, 커피 시장의 성숙도로 보나 자카르타는 아직 서울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가 브라질과 콜롬비아에 버금가는 세계 최대 커피 산지 중에 하나라는 점에서 서울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지요. 과거에는 차 위주의 소비를 하던 인도네시아였지만, 자국의 커피 소비가 많아지면서 세계에서 드물게 큰 규모로 커피의 생산과 소비를 모두 하는 나라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2025 월드 오브 커피 자카르타’ 포스터. ©World of Coffee Asia
커피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오랫동안 인도네시아 커피에 관심을 가져왔는데, 이번 월드 오브 커피 행사가 꽤 중요한 분기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레터에서는 커피 산지와 시장으로서 인도네시아가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월드 오브 커피는 인도네시아 커피 산업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한번 다뤄보려고 합니다. 그럼 시작해 볼게요.
산지로서의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에 커피가 처음 도입된 것은 17세기 말이었습니다. 네덜란드 식민 정부가 아라비카 커피를 자바(Java) 섬에 심은 것이 시작이었죠.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가 위치한 곳이 바로 자바 섬입니다. 18세기 중반에는 자바라는 단어가 커피를 지칭하는 대명사가 될 정도로 유명세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19세기 후반이 되었을 때 커피 녹병(Coffee Leaf Rust)이 동남아 지역을 휩쓸면서 커피 생산량이 급감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20세기 초에는 커피 녹병을 비롯한 병충해에 저항성이 있는 로부스타 커피로의 대대적인 전환을 하게 되었죠.
인도네시아에서 다시 아라비카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중반의 일입니다. 아라비카만 재배하는 것은 여전히 생산 관점에서 위험도가 있었는데요. 커피 녹병에 저항성이 있으면서도 맛이 괜찮은 품종이 필요하던 시기에, 인도네시아 옆 동티모르에서 우연히 발견된 것이 아라비카와 로부스타의 자연 교배종인 히브리도 데 티모르(Hibrido de Timor)입니다. 이 커피는 추후 카티모르(Catimor)나 사르치모르(Sarchimor)와 같은 현대 하이브리드 품종의 기반이 됩니다.

아라비카와 로부스타의 자연 교배종인 히브리도 데 티모르(Hibrido de Timor). ©Sweet Maria's Coffee
그래도 인도네시아 커피의 70~80% 정도는 여전히 로부스타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향미로 보나 가격으로 보나 에스프레소 블렌드로 쓰기 참 좋거든요. 인스턴트 커피로의 활용도 빼놓을 수 없고요. 나머지 20~30%는 아라비카를 비롯한 자연교배종이 아닐까 추정됩니다. 최근에는 프린자 콜렉티브(Frinsa Collective) 같은 선진적인 생산자 그룹에 의해 가공 방식이 개선되고 있는데요. 덕분에 저희도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좋은 품질의 인도네시아 커피를 한국과 말레이시아 시장에 판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역적으로도 한번 살펴볼까요. 인도네시아는 면적이 한국보다 19배에 가까울 정도로 큰 나라인데요. 다양한 섬으로 이루어진 것 또한 특징입니다. 가장 커피 생산량이 많은 섬은 수마트라이고, 자바가 그 뒤를 잇습니다. 술라웨시나 발리, 플로레스 같은 섬에서도 활발하게 커피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지요. 가끔 고객분들 중에 발리 커피를 좋아하시는 경우를 보는데 실제로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태국이나 말레이시아에서는 발리의 커피도 맛볼 수가 있어요. 그래도 스페셜티 커피 기준으로 보면 아직까지는 수마트라와 자바가 주요 산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커피 산지. ©Home Coffee Expert
시장으로서의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경제는 지난 20년간 거의 매년 5%대의 성장률을 보여 왔습니다. 최근 들어 1~2% 성장하는 한국 경제와 비교하면 기본적으로 사업과 투자 활력이 다른 상황일 것이라 짐작하게 돼요. 지난 20년간 인도네시아 커피 시장의 변화 역시 거시 경제의 변화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다는 뜻이에요.
먼저 인도네시아의 국내 커피 소비량을 보면 2000년에는 약 8만 톤, 2024년에는 약 29만 톤으로 약 3.6배 증가했죠. 카페 숫자의 변화 또한 흥미로운데요. 커피 프랜차이즈라는 개념이 희박하던 2000년 대비 2024년에는 인도네시아 전역에 4천여 개의 카페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커피 프랜차이즈별로 뜯어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느 도시를 가든 스타벅스 매장 수를 확인해 보는 편인데요. 인도네시아 최초의 스타벅스 매장은 2002년 자카르타에 문을 열었더군요. 2025년 현재 국내 50여 개 도시에서 600개가 넘는 스타벅스 매장이 운영 중이고요.

2022년 8월 개점한 인도네시아 스타벅스의 500번째 매장. ©Starbucks
스타벅스가 아닌 다른 커피 프랜차이즈의 성장 추이도 흥미로워요. 2017년에 설립된 코피 잔지 지와(Kopi Janji Jiwa)나 2018년에 설립된 코피 케낭간(Kopi Kenangan)은 어느덧 매장 9백 개가 넘는 대형 프랜차이즈가 되었습니다. 중국 전역에 1만 개가 넘는 매장을 가진 루이싱 커피(Lucking Coffee)와 설립 연도가 비슷한 것 또한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괜한 의미 부여일 수도 있겠지만, 중국과 인도네시아에 커피 애호가가 늘어나는 양상이 유사해 보인달까요.
인도네시아는 전통적으로 커피보다는 차를 즐기는 사람이 많은 편입니다. 커피와 차 모두 17세기부터 인도네시아에서 재배한 작물이지만, 커피가 주로 수출 목적으로 재배되었던 반면 차는 현지에서도 음용되었습니다. 로스팅이 필요한 커피보다는 차가 비교적 내려 마시기 간편했던 것이 하나의 이유가 아니었을까 짐작돼요. 어쨌든 20세기까지는 그랬다는 이야기고, 21세기 들어서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인도네시아에도 커피를 소비하는 사람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3억 명에 가까운 인구를 고려하면 시장이 성장할 수 있는 여력은 아직 많이 남아 보이고요.
월드 오브 커피 자카르타
스페셜티 커피 협회(SCA)라는 단체를 들어 보셨나요? 과거에 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SCAA)와 유럽 스페셜티 커피 협회(SCAE)로 나누어져 있던 것이 2017년에 통합되어 스페셜티 커피 협회가 되었는데요. 이 협회가 전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커피 박람회 두 가지를 주최합니다. 하나는 미국에서 열리는 ‘스페셜티 커피 엑스포’, 다른 하나가 바로 유럽에서 열리는 ‘월드 오브 커피’입니다.
월드 오브 커피가 처음으로 유럽 밖으로 나간 것은 2022년 두바이 박람회 때였습니다. 그 후로 매년 두바이에서 개최하고 있어요. 그러다 아시아에서 처음 연 것이 2024년 부산 박람회였고, 2025년에 자카르타에서 두 번째로 아시아 박람회를 열게 된 것입니다. 커피 산지로서 그리고 시장으로서 인도네시아가 현재 어떤 위치에 있는지 살펴보면 왜 자카르타에서 개최하게 되었는지 어느 정도 납득이 되실 것 같아요.

‘2022 월드 오브 커피 두바이’ 현장. ©World of Coffee Dubai
월드 오브 커피 같은 박람회는 커피 대회도 진행하고 각종 커피 관련 즐길 거리를 많이 선보이지만,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장으로서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커피 생산자와 각종 커피 기자재 회사, 그리고 커피 로스터리와 일반 소비자가 자유롭게 어울리는 곳이니까요.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이 박람회의 주요 무대로 기능했던 것은 두 곳이 가장 중요한 커피 시장이었기 때문인데요. 지난 몇 년간 아시아의 커피 시장이 눈에 띄게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커피 행사가 현재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25년에 열리는 자카르타 행사는 최초로 커피 산지가 개최하는 월드 오브 커피 박람회입니다. 일반적으로 중남미와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커피 생산자 중에 미국과 유럽의 박람회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극소수일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자바 섬에 사는 커피 생산자가 이번 월드 오브 커피 자카르타에 방문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실행하기 쉬운 선택지일 거예요.
이번 박람회를 통해 인도네시아와 전 세계 커피 업계 사람들 사이에 다양한 연결이 발생하고 그것이 새로운 기회로 창출이 된다면, 지속적으로 성장해 온 인도네시아 커피 산업에 추가 동력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주목해 온 인도네시아 커피에 앞으로도 더 주의를 기울이고 싶은 이유입니다.

개막을 앞둔 ‘2025 월드 오브 커피 자카르타’ 현장. ©World of Coffee 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