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실 때 보통 어떤 생각을 하세요? 저 같은 경우 평가해야 하는 커피인지, 아니면 즐기기 위한 커피인지에 따라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전자의 경우 오롯이 그 커피에 집중하는 반면, 후자는 첫 모금 정도에 주의를 기울이기는 하지만 곧 원래 하고 있던 일로 돌아가게 됩니다. 떠오르는 생각 역시 그에 따라 달라지고요.

그런데 때로는 시야를 더 넓혀 ‘커피’라는 음료 장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커피를 만나게 됩니다. 제가 알던 커피가 아닌 새로운 유형의 커피일 경우 특히 그런 것 같아요. 커피가 아닌 다른 음료를 마실 때도 종종 그런 생각을 하게 되고요. 그럴 때마다 제가 떠올리는 질문은 ‘커피를 커피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일까’입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자면, ‘커피를 다른 음료와 차별화해 주는 요소’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겠습니다.
최근에 낯선 향미의 어떤 커피를 마셨는데요. 오랜만에 위 질문을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이 커피 이야기를 들려드리면서 커피라는 음료에 대해서 독자님과 함께 생각해 보고 싶어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빈브라더스 커피하우스 6층에서는 종종 흥미로운 에스프레소 머신을 테스트합니다. 2024년에는 ‘시네소 MVP 하이드라’라는 머신을 스터디하고 고객을 위한 테이스팅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이 프로그램이 꽤 재미있어서 ‘2024 서울카페쇼’에서 가볍게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스펙트럼: 시네소 MVP 하이드라’ 프로그램 현장
요즘에는 ‘제로쓰로 리얼나인 FIT’이라는 머신을 테스트해 보고 있습니다. 압력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 압력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커피 향미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어요. 하우스 팀이 프로그램 준비를 위해 테스트하는 과정을 지켜보다가 덕분에 여러 압력 프로파일로 추출한 에스프레소도 마셔볼 수 있었습니다.

‘스펙트럼: 제로쓰로 리얼나인’ 프로그램 현장
그런데 이 에스프레소의 향미가 독특했어요. 에티오피아 블렌드인 벨벳화이트로 내린 에스프레소였는데요. 저도 나름 벨벳화이트 에스프레소를 꽤 많이 마셔보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제가 알던 맛이랑 상당히 다르더라고요. 요약하자면 에티오피아의 과일 향미가 순도 높게 표현되고, 예상했던 것보다 산미와 쓴맛이 편안했습니다. 제가 커피 특유의 향이라 생각했던 것이 사라진 느낌이 들어서 ‘이게 커피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혀에 느껴지는 질감도 그동안 마셔온 에스프레소와는 달리 몽글몽글하달까요.
이번에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제로쓰로 안형전 대표님을 모시고 커피 기술 관련 세미나를 열기도 했는데요. 이날 제가 느꼈던 낯선 커피 경험에 대해 질문을 드렸는데, 대표님이 흥미로운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여기서 다루기엔 다소 기술적인 내용이라 구체적으로 담진 않겠지만, 커피 추출 또한 화학반응인 만큼 반응속도에 있어 온도의 영향을 받게 되고 그것이 어떤 영역에서 유의미한 차이로 발현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제로쓰로와 리얼나인에 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예전에 Bb레터에서 진행한 안대표님의 인터뷰를읽어보세요!).

‘커피 스튜디오: 글로벌 커피 산업의 트렌드’ 세미나 현장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커피를 커피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커피의 향미’하면 어떤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르세요?
저는 커피 특유의 구운 향이 먼저 떠오릅니다. 로스팅을 하기 때문에 생기는 이 구운 향은 아무리 라이트하게 로스팅해도 커피에 존재하는 향입니다. 충분히 로스팅하지 않았다면 일단 분쇄가 잘되지 않을 거예요. 커피의 정체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해선지 저는 로스팅 정도가 다크할수록 커피답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커피는 씁니다. 달달한 음료와 비교할 것도 없이, 제법 쌉싸름한 차와 비교해도 다크 로스팅 커피의 쓴맛은 압도적입니다. 어떤 커피는 한약과도 비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보통 커피에 대한 평가를 할 때 ‘쓴맛’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가 많지만, 쓴맛이 아예 없다면 그것이 커피처럼 느껴질까 싶긴 합니다.
로스팅 정도가 다크해질수록 강도가 약해지긴 하지만, 저는 산미 또한 커피를 커피답게 만들어주는 것이라 생각하는 편입니다. 커피 로스팅을 클로로겐산(chlorogenic acid)이 카페산(caffeic acid)과 퀴닉 산(quinic acid) 등의 물질로 분해되는 과정이라 거칠게 말하기도 하니까, ‘산’은 커피에서 꽤 중요한 요소인 셈입니다. 스페셜티 커피의 영역으로 오면 중요한 향미 요소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고요.
촉각으로 느껴지는 질감은 어떨까요? 제가 둔한 편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저는 커피다운 촉감이란 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일반 아메리카노나 필터 커피의 99% 가까이가 물인 것을 생각하면 촉감만으로 같은 농도의 커피와 다른 음료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고요. 어떤 필터를 쓰느냐에 따라 촉감이 눈에 띄게 달라지기도 하니까요. 과일스러운 산미가 있으면 주스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있으니 커피의 촉감은 꽤 다양한 편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은 제가 커피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이라 생각하는 것인데, ‘향미가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왜 이것저것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뭐가 들어간 지 알아맞히기 힘들잖아요. 저에게는 커피가 그런 느낌을 줍니다. 향미를 구성하는 개별 요소와 구조가 좋으면 ‘복합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런 커피는 세상에 많지는 않죠. 일반적인 커피의 향미를 묘사하기에는 ‘복잡한’이란 단어가 적합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이 복잡함이 바로 커피를 커피답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뚜렷한 향미를 가진 가향 커피 역시 저에게는 커피 같지 않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해요.

‘카페인이 가장 중요한 요소 아닌가?’하고 생각하신 분도 계실 텐데요. 물론입니다. 우리가 커피를 마시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다만 요즘 좋은 디카페인 커피를 마셔보면 제가 커피의 향미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잘 갖고 있는 것 같아서 오늘 이야기에서는 다루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잠을 깨우기 위한 기능 음료로서 커피를 바라본다면 분명 카페인은 중요한 요소일 거예요(예전에 Bb레터가 다룬 재미있는 카페인 이야기는 <수면생활과 카페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