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아라비카 커피의 선물 가격이 47년 만에 최고가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2019년 이후 지속적으로 오르던 중이라 그동안 커피 가격이 올랐다는 기사를 접해도 무덤덤했는데요. 47년 만에 최고가라는 사실은 커피 가격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렇게 신문에서는 중요하게 언급되는 커피 선물 가격이지만, 파운드 당 3.44달러(2025년 1월 15일 기준 약 5,020원)라는 가격이 커피 업계에서 일하는 저에게도 잘 와 닿지 않습니다. 뉴욕 커피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이 가격은 카페에서 파는 커피 한 잔의 가격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오늘 레터에서 다뤄 보고자 합니다.

2024년 12월 10일의 아라비카 커피 선물 가격 ⓒBBC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용어 정리를 한번 하겠습니다. 스페셜티 커피를 다루다 보면 자주 까먹게 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커피는 커머셜 등급의 커피입니다. 같은 카테고리의 커피를 뜻하는 말로 ‘commodity coffee’라는 용어도 있는데, 한국어로 번역하면 ‘원자재 커피’ 정도일까요? 낯설지만 오늘은 이 용어를 사용해 보겠습니다.
오늘 레터는 ‘원자재로서의 커피’와 ‘커피의 가격’이라는 제법 큰 주제를 다룹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읽으면서 원자재 커피와 비교해야 보이는 스페셜티 커피의 면면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원자재 이야기로 한번 시작해 보겠습니다.
원자재로서의 커피
세상에는 다양한 원자재가 있습니다. 철광석이나 금, 은 같은 금속부터 옥수수나 밀 같은 농산물이 대표적인데요. 산업에서의 중요도나 거래되는 규모로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석유와 천연가스인 것 같습니다.
커피도 하나의 원자재로 시장에서 거래됩니다. 부피로 따지면 거래소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농산물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농산물의 선물 거래량 순위를 보면 옥수수나 밀, 콩 같은 식재료들이 대부분인데요. 커피는 기호 식품으로서 상위권에 있습니다. 커피가 세계인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새삼 느끼게 되는 대목입니다.

ⓒATFX
질문을 하나 드려봅니다. 원자재 커피와 스페셜티 커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스페셜티 커피는 상대적으로 좋은 품질과 희소성 덕분에 개별 상품으로 시장에서 가격이 책정되고, 커피의 품질이 좋을수록 대체가 어려워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커피 대회에서 종종 보게 되는 높은 명성의 농장들이 시장에서 그런 지위를 갖고 있지요.
그렇다면 원자재 커피는 스페셜티 커피와 비교했을 때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요? 이걸 이해하기 위해선 아라비카 커피의 선물이 거래되는 뉴욕 대륙간거래소(intercontinental exchange)의 풍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품질과 희소성으로 비교적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스페셜티 커피와 달리, 원자재 커피는 금융상품의 속성도 띄고 있어서 조금 더 복잡한 편입니다.

대륙간거래소. ⓒFINANCEFEEDS
원자재 커피가 시장에서 어떻게 거래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 가격이 결정되는지 이해하려면 먼저 선물(futures contract)의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물은 미래의 특정 시점에 일어날 거래의 가격을 현재 시점에서 결정하는 계약인데요. 커피 같은 농산물은 기후와 국제 정세에 큰 영향을 받아 미래 가격의 불확실성이 큰 편입니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하게 가격이 떨어질 상황이 걱정되고, 구매자는 그 반대일 것이고요. 그래서 이런 위험을 헷지(hedge)하기 위해 선물이란 계약 방식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구매하거나 판매하는 물량이 커서 작은 가격 변동에도 영향을 많이 받는 주체일수록 선물 계약을 활용할 인센티브가 커집니다.
커피선물거래소에 제출되는 커피는 평가 기준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고, 그에 따라 가격이 책정됩니다. 보통 신문에서 이야기하는 커피 선물의 가격은 일종의 벤치마크에 가까워요. 실제 커피 가격은 등급에 따라 벤치마크 가격에 일정 금액을 더하거나 빼는 식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벤치마크 가격이 오르면 실제 커피 가격도 거기에 연동되어 오릅니다. 이렇게 원자재 커피는 스페셜티 커피와 달리 개별 커피로 인정받지 못하고, 등급에 따라 가격이 매겨진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같은 등급 안에서는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하다는 점 또한 중요해요.
원자재 커피는 거래 규모에서도 스페셜티 커피와 큰 차이를 보입니다. 대륙간거래소에서 이루어지는 아라비카 선물 거래의 최소 단위가 17톤 정도거든요. 한 번의 거래에서 수백, 수천 톤의 커피가 다뤄지는 것이 원자재 커피인 반면, 스페셜티 커피의 세계에서는 수백 킬로그램에서 10톤 내외의 규모를 다루죠. 전체 커피에서 스페셜티 커피의 비중은 여전히 너무나 작고, ‘원자재 커피’가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커피 가격, 언제 안정화될까
지난 40여 년간 커피의 가격은 브라질의 기후 상황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최근의 일만은 아니에요. 브라질은 여전히 전 세계 커피 생산량 1위 산지이지만, 예전에는 그 비중이 더 높았습니다. 그래서 브라질에 한파가 닥치거나 가뭄이 들면 커피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곤 했어요. 시간이 지나 브라질의 커피 공급량이 안정화될 것이 예상되면 커피 가격도 다시 제자리를 찾는 식이었죠.
최근의 가격 상승 역시 브라질과 베트남 같은 주요 커피 산지에 닥친 가뭄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시간을 기다리면 커피 가격이 다시 안정화될까요?
쉽게 답을 드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일단 중국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에서 커피 수요가 늘고 있어요. 커피 거래의 기준 화폐인 미국 달러의 강세가 이어지는 것 또한 가격이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지난 몇 년간 전 세계적으로 진행된 인플레이션은 커피 업계 전반의 비용을 높여왔는데, 이 또한 안정화될 기미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가뭄으로 아라비카 최대 생산국인 브라질과 로부스타 최대 생산국인 베트남의 생산량이 모두 급감한 것 또한 문제인데요. 로부스타 가격이 오르면서 기존에 블렌드 재료로 로부스타를 사용하던 로스터리들이 가격이 비슷하거나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아라비카를 쓰기 시작했거든요. 이런 다양한 요인들이 연쇄작용을 일으키며 아라비카의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원자재 커피의 가격이 오르면서 스페셜티 커피의 가격도 덩달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저희의 예를 들면, 지난 몇 년간 블랙수트와 벨벳화이트를 비롯한 블렌드 생두 원가에 전반적인 인상이 있었습니다. 싱글오리진도 마찬가지고요. 스페셜티 커피를 생산하는 농가의 생산량이 줄어서일까요? 아니면 원자재 커피 가격의 변화가 스페셜티 커피의 가격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일까요?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우리가 개별 가격이 책정된 배경을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국가에서 통제하는 것이 아닌 이상 기본적으로 가격은 판매자와 구매자의 상호작용으로 정해지기 때문이에요. 어떤 가격에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판매자와 구매자가 모두 그 가격에 합의했다는 것이고, 사실상 우리가 시장 주체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변화하는 가격을 확인하고 그에 맞게 대응하는 것뿐입니다.

©Shelby Murphy Figueroa
커피 가격의 변화가 우리 삶에 미칠 영향
1970년대 이후로 커피 생두의 가격은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추세였지만, 시계열을 쪼개서 들여다보면 급등과 급락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미래 가격을 예측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생두 가격의 변화가 최종 제품에 반영되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생두 가격이 오른다고 로스팅된 원두의 가격이 오르거나, 생두 가격이 떨어진다고 원두 가격이 떨어지는 일이 흔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생두 가격은 지속적으로 오르더라도 트레이딩 회사나 로스터리가 인상분을 감수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의 커피 가격 인상은 과거보다 더 큰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현재 가격이 47년 만에 최고가라고 호들갑을 떨게 되는 수준의 가격이어서 뿐만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쉽게 가격이 안정화될 것 같지 않은 현재의 국제 정세와 관련이 있습니다. 실제로 커피를 사용할 계획이 없는 투기 자본이 선물 거래에 관여하고 있는 것 또한 미래 예측을 어렵게 합니다.
최근 생두 가격의 인상이 언제 어떤 수준으로 일반 소비자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아직 알기 어렵습니다. 지금의 가격 상승 추세가 지속된다면 결국 우리가 마시는 커피 한 잔의 가격도 인상될 수밖에 없겠지만, 그 가격 또한 개별 주체의 상황과 기존 음료의 원가에 따라 다르게 책정하게 되겠죠. 실제로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 후에야 우리는 해석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어려워서 커피의 가격 같은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다소 모호하게 말씀드리게 되는데, 앞으로의 몇 년이 저희를 비롯한 커피 회사의 생존에 중요한 시간이 될 것 같다는 것은 조금 더 확신을 갖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사업 환경이란 게 늘 우호적이진 않으니까 언제나 위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요즘 커피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과 걱정이 있는 것 같아서 레터로도 한번 다루어 보았습니다. 커피 가격 관련 새로운 변화가 찾아오면 다시 한번 레터로 업데이트를 드려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