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치차 챌린지(Chicha Challenge)’라는 이름의 커피 대회가 처음으로 개최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페루에서 가장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커피를 찾는다고요. 이 대회를 주최하는 쿨티발(Cultivar)의 창업자 리자너(Lisanne)가 카페쇼 기간을 맞아 한국을 방문할 예정인데, 이때 빈브라더스 커피하우스에서 치차 챌린지의 퍼블릭 커핑을 진행해보자는 로사의 제안이 있었습니다.
로사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라면 공감하시겠지만, 로사는 뭐든 가볍게 제안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분명 반짝이는 무언가를 보았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로사가 리자너를 처음 만난 것은 몇 년 전에 열린 페루 컵 오브 엑셀런스 심사장이었습니다. 국제심사위원으로서 함께 커피를 심사했던 인연이 이번 치차 챌린지로 이어진 것이죠.
치차 챌린지는 전통적인 페루 워시드를 넘어서는 도전적인 커피를 찾는 커피 대회이자 경매입니다. 실제로 마셔보니 과일스럽고 주스 같은 좋은 커피들이 많았습니다. 마침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페루 컵 오브 엑셀런스와도 재미있는 대비가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COE 커피는 도전적이기보다는 안정적인 편이니까요
치차 챌린지 커핑 ⓒ정아름 Joy
그렇게 치차 챌린지의 퍼블릭 커핑을 진행했습니다. 커핑을 마치고 대부분 자리를 뜨신 후에도 자리에 남아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김자영 바리스타였습니다. 리자너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고 했어요. 아까 대학생 때 바리스타로 일했었단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떻게 지금의 커리어로 이어졌는지 궁금하다고요. 저도 궁금해져서 옆에서 둘의 문답을 들어보았는데 ‘레터감이다’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나중에 따로 인터뷰 신청 해서 자세히 들어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요. 그리고 치차 챌린지가 완료된 12월 6일에 화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오늘 레터에서는 네덜란드인 리자너가 바리스타 일을 시작한 순간부터 페루 커피회사 쿨티발을 창업하고 올해 치차 챌린지를 개최하기까지의 여정을 다뤄볼 예정입니다. 커리어 관련 고민이 많은 바리스타 분들에게 참고가 되시길, 커피 업계에 계시지 않은 분들에게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길 기대하며 리자너와의 인터뷰를 시작해 볼게요.
왼쪽부터 로사, 리자너, 데릭. 커핑이 끝나고도 한참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황요성 Scene
Derek 리자너, 치차 챌린지가 드디어 끝났네요. 기분이 어때요?
Lisanne 너무 신나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경매에 참여해주실 거라 상상하지 못 했거든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치차 챌린지’가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네요.
Derek 축하해요. 앞으로의 치차 챌린지가 더 기대돼요.
Lisanne 고마워요. 빈브라더스를 비롯해 많은 로스터리에서 도와주신 덕분이에요.
Derek 벌써 몇 주가 지났지만, 커피하우스에서 커핑했을 때 김자영 바리스타가 리자너의 커피 커리어에 관해 물었잖아요.
그 이야기를 더 자세히 여쭤보고 싶었어요. 커리어에 고민이 많은 바리스타 분들에게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Lisanne 글쎄요. 제 이야기가 과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열심히 이야기해볼게요.
Derek 시계추를 앞으로 돌려서 리자너가 처음 바리스타로 일했던 시절로 돌아가 볼까요.
Lisanne 2005년이었네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암스테르담에 있는 카페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빅터의 에스프레소 바(Victor’s Espresso Bar)라는 곳이었는데 그 당시 거의 유일하게 라떼아트를 해주는 카페로 알려져 있었어요.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요.
Derek 그 시절 리자너는 어떤 바리스타였어요? 어떤 커피 다뤘는지도 궁금해요.
Lisanne 음, 일단 지금의 스페셜티 커피 업계에서 유통되는 커피와 그 당시 커피의 수준에는 큰 차이가 있었던 것 같고요.
1년 정도 일하고 이듬해인 2006년에 호기롭게 네덜란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에 나갔었는데요. 블렌드의 재료로 어떤 커피를 사용했는지 덜덜 떨면서 말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던 것 같아요. 보기 좋게 예선에서 떨어졌지요.
Derek 대학생 시절이었을 텐데 전공이 뭐였어요?
Lisanne 인류학을 공부했어요. 스페인어에 관심이 있어서 코스타리카에 자원봉사를 다녀온 적도 있었는데요. 3학년 때는 아예 세부 전공을 라틴 아메리카 쪽으로 잡았고, 실제로 4개월 동안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어요. 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를 다녀왔는데 그때만 해도 커피 농장에 다녀올 생각은 못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한창 남미 여행하던 중에 갑자기 커피 나무가 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그 당시 네덜란드에서 로스팅으로 유명했던 그라시아노 크루즈(Graciano Cruz)에게 연락했어요. 그 분이 파나마에 가보라고 추천하더라고요. 실제로 보케테 지역에 있는 농장에 연결시켜주시기도 했고요. 그때 연이 닿아서 파나마 스페셜티 커피 협회의 커핑에도 가게 되었는데, 커피를 맛보고 평가하는 직업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어요.
Derek 아직 리자너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흥미진진하네요.
그때 커피 테이스팅을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Lisanne 아까 파나마를 추천했던 그라시아노 있잖아요. 그 분이 네덜란드 생두 회사인 트라보카(Trabocca)의 창업자 메노(Menno)와 아는 사이였거든요. 그 분이 메노에게 저를 소개해주어서 트라보카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트라보카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생두회사 중 하나이고 규모도 크지만, 그 당시만 해도 창업하고 얼마되지 않았을 시기거든요. 차고(garage)에서 로스팅하던 시기를 지나 조금 더 확장하려던 시점이었고, 그때 메노가 자기 집에서 커핑을 한다며 초대했어요. 커핑이 궁금해서 간 거였는데, 메노가 트라보카의 커핑 랩(cupping lab) 운영자를 구한다고 해서 덜컥 한다고 했죠. 남미 여행 가느라 카페는 이미 그만둔 상태였어요.
Derek 트라보카의 커핑 랩 운영이라…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했어요?
Lisanne 메노가 샘플링한 생두를 프로밧으로 로스팅하고 커핑 세션을 준비했죠. 주 5일 근무했는데 매일 30개씩은 했으니 1주일에 150개 정도 평가한 셈이네요. 그렇게 다양한 커피를 로스팅하고 맛보면서 커피와 사랑에 빠졌던 것 같아요. 일한 지 몇 달도 안 되어서 1 컨테이너*의 에티오피아 생두 구매 결정을 스스로 해야 했는데 불안해서 2시간 동안 커핑을 반복했던 기억이 나네요.
(*19.5톤 정도 되는 양입니다. 데릭)
ⓒ황요성 Scene
Derek 산지 방문도 했어요?
Lisanne 음, 커핑 랩 운영자가 되고 반 년 정도 후에 창업자 메노가 에티오피아로 출장을 갔어요. 저도 가고 싶었는데 출장팀으로 선발이 되지 못 해서, 그냥 제가 비행기 티켓 사서 같이 따라갔어요. 메노가 따라 오는 것은 오케이 해줬거든요.
그때 우연히 파나마 하시엔다 라 에스메랄다 농장*에서 오신 분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 당시 농장을 운영했던 프라이스 피터슨(Price Peterson)이 70대셨는데, 인류학을 공부했다는 이유로 저를 인류학자처럼 대해주시더라고요. 같이 있는 동안 커피의 문화적 맥락에 대해 많은 것을 물어보셨는데 그 질문들 덕분에 커피 업계의 현실과 이해관계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해보게 되었어요.
(*하시엔다 라 에스메랄다는 2004년 베스트 오브 파나마에서 역대 최고가에 낙찰 받으며 게이샤를 슈퍼스타로 데뷔시킨 농장입니다. 데릭)
Derek 예전 남미 여행 때는 파나마 스페셜티 커피 협회 커핑에 가더니 에티오피아에서는 파나마 라 에스메랄다 농장주 분을 만났군요.
믿기지 않는 우연이 이어지네요.
Lisanne 하하. 그러게요. 제가 인류학 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밟았어요. 그때의 인연으로 라 에스메랄다 농장을 연구 과제로 삼고, 실제로 농장에서 4개월 동안 살면서 농장에서 사람들을 관찰했지요. 라 에스메랄다 농장의 커피를 수확하고 가공하던 사람들은 파나마 원주민이었는데요. 그때 세상에서 가장 비싼 라 에스메랄다의 커피가 생계가 너무나 어려운 사람들에 의해 생산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머리를 한 방 맞은 기분이었죠.
Derek 이때의 경험이 나중에 페루에서 영세 농민들을 지원하는 쿨티발의 창업으로 발전하게 되었겠군요.
파나마에서 네덜란드로 돌아온 후에는 어떤 일들이 펼쳐졌어요?
Lisanne 일단 석사 논문을 마무리 했고요. 학업을 병행하느라 트라보카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졸업 후에 풀타임으로 일하게 되었죠. 트라보카가 여전히 성장하던 차라 일이 많아져서 조수가 필요했는데 그때 뽑은 사람이 나중에 쿨티발을 공동창업하게 된 테드로스(Theadros)였어요.
그렇게 2년 정도 일하다가 2013년에 트라보카를 떠났어요. 그만둘 즈음에는 최고 품질관리 담당자(Head of Quality Control)로 일하고 있었는데 커피 바이어나 트레이더로 갈 수도 있었지만 그쪽에는 관심이 가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직접 산지에 가서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제가 인류학으로 석사를 하기도 했고, 학문 쪽에도 여전히 흥미가 있었는데요. 그래서 트라보카를 그만두고 암스테르담의 어느 연구소에 들어가서 사회경제 개발과 젠더 쪽 자문하는 일을 몇 년 했어요. 덕분에 정말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에 다녀올 수 있었는데요. 많은 것을 배우고 다양한 기회를 누릴 수 있었지만 한편으론 제가 이런 특권을 가진 것에 대해 죄책감이 들더라고요.
제가 아니어도 이 일을 할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고, 다시 커피 산지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어요.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기 보단 한 지역에서 뭔가를 쌓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Derek 쿨티발의 시작이군요.
Lisanne 네, 2017년에 트라보카에서 만난 테드로스와 함께 쿨티발이란 페루 커피회사를 차렸어요. 테드로스와 커핑 랩에서 함께 일하며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었었는데요. 그 시절에 이미 어느 정도 쿨티발의 이미지를 그려 보았던 것 같아요.
Derek 왜 페루였어요?
Lisanne 제가 암스테르담에서 일하는 동안 테드로스가 페루에 어느 정도 네트워크를 쌓아놓은 상태였어요. 페드로스가 페루 사람와 결혼했거든요.
저 개인적으로는 어느 정도 인프라가 잘 갖춰진 중미 대비 남미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고, 페루 커피의 잠재력을 알고 있어서 좋은 선택지라고 판단했어요.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어서 어쩌죠?
Derek 현실적인 이유라서 저는 더 좋네요. 2017년에 시작했으니 어느덧 7년이 지났는데요. 어떤 시간이었어요?
Lisanne 그렇게 보면 상당히 긴 시간 같은데요. 사실 저에게는 쿨티발이 이제 막 시작한 것처럼 느껴져요. 첫 2년은 제 통장을 털어서 커피를 구매했던 시기고요. 2019년에 테드로스가 공식적으로 쿨티발에 조인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전개해보려고 했는데 2020년에 팬데믹이 터졌죠. 그때부터 2023년까지는 그저 하루하루 생존을 기도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생두 사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외 환경에 취약한지 여실히 깨닫게 되었던 시간이었고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취약성이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었고, 결국 안고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죠.
팬데믹 시기가 너무나 힘들었기에 오히려 ‘치차 챌린지’ 같은 재미있는 대회를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생산자들이 가난을 극복하고 지속가능하게 커피를 생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려운 시기일수록 그런 재미가 생산자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치차 챌린지를 쿨티발이 만들었다고 생각하시기 쉽지만, 저는 이 대회에 참가한 생산자들에게서 이니셔티브(initiative)가 나왔다고 생각해요. 올해가 첫 해였는데 앞으로 더더욱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쿨티발은 생산자들 뒤에서 든든히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Derek 리자너의 커피 여정을 따라 암스테르담에서 리마까지 왔네요. 커피 업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업계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울림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Lisanne 한국에서 치차 챌린지를 통해 만난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이런 커피 대회가 있는지도 모르셨을 텐데, 소중한 시간 내어 찾아주셔서 감사했고 여러분과 연결되는 느낌이 정말 따뜻했어요. 고마웠습니다.
Derek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Lisanne 무언가에서 영감을 받았다면, 가고 싶은 길이 시작되는 입구를 열심히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뉴스레터 암스테르담에서 리마로<br>쿨티발 창업자 리자너의 커피 여정
컨트리뷰터 리자너, Lisanne Oonk<br>김민수, Derek
발행일 2024/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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