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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믿을 수 있는 커피
‘버번즈 데이’ 토크 세션에서 받은 질문
믿을 수 있는 커피‘버번즈 데이’ 토크 세션에서 받은 질문



안녕하세요, 데릭입니다.


얼마 전, 합정점에서 열린 ‘버번즈 데이’의 마지막 순서로 작은 토크 세션을 가졌습니다. 지난 8월에 콜롬비아 다녀온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어요. (오랜만에 만난 독자분들도 진심으로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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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라스 플로레스 농장의 커피를 중심으로 한 ‘버번즈 데이’.©정아름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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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열린 콜롬비아 산지 토크.©박은실Momo


콜롬비아라는 커피 산지에 대한 제 생각, 나리뇨에서 참여한 커피 경매 이야기, 현재 콜롬비아에서 가장 앞선 커피 가공을 뽐내는 우일라 지역 농장들에서 배운 것들을 풀어놓았는데요. 토크가 끝나고 이어진 Q&A 시간에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최근 발행된 생두회사 카페 임포츠의 글에 따르면, 콜롬비아와 코스타리카에서 판매되는 핑크 버번이 사실은 버번이 아니라 에티오피아 품종이었다고 하는데요. 우리가 전달받는 품종 정보가 과연 무결한 것인지 질문하게 되는 계기였습니다. 커피 로스터리로서 이 점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중요하고 예리한 질문이었습니다. 예리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이거예요. 그날 열린 버번즈 데이는 라스 플로레스 농장의 핑크 버번과 레드 버번, 두 커피가 주인공이 되는 행사였어요. 질문자께서는 ‘여러분이 오늘 진행한 행사의 주인공인 핑크 버번이 실제로 버번이 맞나요?’라고 은연중에 물어보고 계셨습니다. 물론 질문자님의 진짜 의도는 ‘품종 정보의 정확성’이라는 더 큰 주제였겠지만, 순간 서늘한 기분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만약 라스 플로레스 농장의 핑크 버번이 사실은 버번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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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라스 플로레스 핑크 버번 / 레드 버번 세트.©황요성Scene


당일에는 질문자님이 인용하신 카페 임포츠의 글을 읽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제가 할 수 있는 수준의 답변만 드렸어요. 집에 가서 해당 실험 결과를 살피고 나니, 이 내용을 미리 읽었다면 더 좋은 답변을 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늦었지만 오늘의 레터를 통해 다시 한번 답변을 드리려고 합니다. 품종 정보의 정확성을 넘어, 소비자가 제공받는 커피 정보 전반의 신뢰도에 대해 검토해 볼 예정입니다. 이 글이 질문자님께 닿기를 바라며 한번 시작해 보겠습니다.



 

들어가며 


본론에 들어가기 전,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저는 적어도 ‘스페셜티 커피’의 세계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 간 상호 신뢰가 기본적으로 잘 작동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높은 수준의 정보의 투명성과 추적 가능성은 스페셜티 커피 업계가 달성하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목표였고, 지난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계속 발전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인 상황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잘못된 정보가 유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하나는 무지의 소치, 정말 잘못 알아서 그런 경우입니다. 다른 하나는 실제 가치보다 높은 가격을 받고 싶어서 허위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인데요. 오늘 제가 다룰 사례들은 이 두 가지 모두를 포함합니다. 크게 세 가지 정보의 카테고리 - 원산지, 품종, 가공 - 로 나누어 이야기를 진행해 볼게요.



 

1. 원산지 정보 


카페 메뉴판에서 보게 되는 긴 커피 이름 중 가장 앞에 있는 것, 보통 원산지입니다. 원산지는 무엇인가요?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물건의 생산지’ 혹은 ‘동식물이 맨 처음 자라난 곳’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커피로 치면 커피가 자라난 곳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커피 원산지 정보는 얼마나 정확할까요? 저는 어떤 커피가 비싼 값을 받는 다른 대륙의 제품으로 둔갑하는 것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브라질 커피가 에티오피아 커피인 척하는 일이요. 반대로 케냐 커피가 니카라과 커피인 척하는 일도 웬만하면 일어나지 않을 텐데, 평균적으로 케냐 커피가 더 비싸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인기 있는 원산지의 커피가 다른 나라의 커피로 둔갑했을 가능성은 작을 겁니다. 그리고 다른 것을 떠나서, 그 작업을 위해서 대륙 간 이동을 해야 한다면 물류비가 원가에 반영될 테니 더더욱 할 이유가 없겠죠.


문제는 나라 이름을 바꾼 후에 더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는 경우입니다. 국경을 접하고 있어, 물건을 옮기기 쉬운 나라라면 더욱 가능성이 커지겠죠. 안타깝게도 여기에 속하는 사례들이 업계에 알려져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르완다의 옷을 입은 부룬디 커피, 과테말라 옷을 입은 온두라스 커피, 코스타리카의 옷을 입은 니카라과 커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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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경에 위치한 과테말라와 온두라스, 니카라과와 코스타리카.©Google map


하지만 저는 스페셜티 커피의 영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작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스페셜티 커피 회사에서 커피 생두를 구매하는 방식은 ‘블라인드 커핑’입니다. 커피 정보를 모르는 상태에서 커피 맛을 먼저 보고 판단하는 것이죠. 케냐 커피든, 부룬디 커피든 상관없이 맛있는 것을 사기 때문에, 농장이나 생두회사에서도 원산지 타이틀보다는 로스터리의 품질 기준과 취향을 중요시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이러한 블라인드 커핑 검증이 이뤄지지 않는 영역에서 문제가 일어나기 쉬울 겁니다. 커핑 역량이 로스터리의 핵심 역량인 수많은 이유 중의 하나지요.



 

2. 품종 정보 


원산지 정보와 달리, 품종 문제는 생산자들이 정말 모르거나 잘못 알아서 정보가 틀리기 쉬운 영역입니다. 열매나 나무의 크기 등의 특징으로 알 수 있는 커피도 있지만, 대부분의 커피나무는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심고 나서 2-3년을 기다려 수확한 후 로스팅해서 마셔보면 어떤 품종인지 알 수 있을까요? 여전히 알기 어렵습니다.


정확한 품종 정보를 얻는 데 또 다른 방해물은, 같은 품종이라도 유전적으로 다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레드 버번이라고 해서 유전적으로 다 똑같은 레드 버번이 아닐 수 있다는 거죠. 유전 정보를 검사하는 곳에서는 먼저 해당 품종이 레퍼런스 샘플과 얼마나 유사한지를 판단합니다. 그리고 일정 이상의 유사도를 보일 경우에 그 품종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해요. 유전정보 검사를 해보지 않은 생산자는 씨앗을 받은 곳의 정보를 믿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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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에서 만난 커피나무들.©김민수Derek


그래서 월드 커피 리서치(WCR)에서는 비교적 낮은 가격에 생산자들에게 유전 정보 테스트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보를 투명하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생산자들이 각종 커피 질병에 저항력이 있는 품종을 재배하여 생계가 안정되게 도와주는 의미가 큽니다. 중요하고 의미 있는 서비스임은 분명하지요. 단, 샘플당 테스트 비용이 미화 130달러인 것을 보면 다수의 생산자들이 시도하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핑크 버번은 실제로 버번인가’라는 질문 역시 저는 이 영역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버번이 아님을 알면서도 마케팅을 위해 매력적인 이름을 붙인 것 아니냐고 추론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최초의 발견자가 유전 정보를 검사해서 버번이 아님을 확인했을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까 싶어요. 이번 카페 임포츠의 실험 결과는, ‘콜롬비아와 코스타리카에서 샘플링한 5개의 샘플이 버번보다는 에티오피아 품종에 가까웠다’라는 것인데요. 논의를 더 이어가기 위해서는 더 광범위한 범위에 대한 조사가 필요할 것 같지만, 그 조사가 이뤄지기는 쉽지 않아 보이네요.


이와 별개로 품종 정보를 고의로 잘못 알려주는 경우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역시나 실제 가치보다 높은 가격을 받기 위함일 텐데요. 아무리 카스티요나 카투라의 품질이 좋다 한들, 게이샤나 SL28의 이름표를 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높은 생두 가격 때문에 로스터리들은 더 엄밀한 눈으로 판단하려 할 텐데요. ‘저렴한 게이샤’로 둔갑한 카스티요라면 어떨까요? 일단 제 머리로는 그런 커피를 로스터리들이 구매하는 모습이 잘 상상되지 않아요. 로스터리의 필터를 통과했다고 해도, 업계 종사자들 못지않게 커피를 깊이 이해하는 최종 소비자 선에서 정리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3. 가공 정보


최근에 많은 관심과 의심(?)을 받는 영역입니다. 전통적인 가공 방식인 ‘워시드’와 ‘내추럴’은 둘 사이의 향미 차이도 크고, 어느 하나가 가격으로 특별히 높은 대우를 받고 있지는 않았죠. 원가를 생각하면, 더 오래 작업해야 하는 내추럴 커피가 더 높은 가격을 받아야 할 것 같지만, 시장이 그 노력을 특별히 인정해 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소위 ‘무산소 발효’ 커피가 등장했습니다. 커피 업계 종사자들뿐만 아니라 애호가들도 상세한 가공 정보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어떻게 무산소 환경을 조성했는지, 몇 시간 동안 발효했는지와 같은 정보를 토대로 왜 이 커피가 이런 향미를 가지는지 생각해 보게 된 것이죠. 워낙 향미가 특징적인 가공 방식이기 때문에 일반 커피를 무산소 발효했다는 주장은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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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탱크에 담겨 발효 중인 커피들. 콜롬비아 로스 노갈레스 농장.©김민수Derek 


도무지 커피에서 날 것 같지 않은 향을 가진 커피들이 시장에 많이 나오면서, 가공 정보의 투명성이 화두에 올랐습니다. 커피 가공 과정 중에 특정 향미 성분을 인위적으로 주입한 게 아닌지 의심되는 커피들이 등장하며 로스터리의 커핑 테이블이 흥미로워졌어요. 어떤 샘플을 맛보고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커퍼(cupper)들 사이에 무언의 눈웃음이 오가는 순간들을 업계 동료분들은 경험해 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몇 년간 진행된 가향 커피(infused coffee)에 대해, 업계에서 진행한 논의의 결론은 간단합니다.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문제 될 게 없고, 그 이후는 시장의 선택에 맡기면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토크 때 물어보신 분도 계셨지만, 지금 콜롬비아의 적지 않은 생산자들이 적극적으로 가향 커피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의 카페 씬에도 이런 커피들을 재미있게 갖고 노는 장면들이 보입니다. 가향 커피가 하나의 장르로서 시장에 자리 잡는 모습으로 이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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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가향커피에 관한 레터에 한 익명의 독자분이 남겨주신 피드백.


‘가향 커피 시장이 정말 투명해졌는가?’라는 질문에 저는 판단을 유보하고 있습니다. 커피에서 ‘뽕따’ 아이스크림 향이 나서 어떤 커피인지 물어봤더니 ‘워시드 가공한 카투라’라고 돌아온 답변은 지금까지 수긍이 어렵긴 해요. 아마 저 같은 사람들이 많았기에, 작년 아이덴티티 커피랩의 윤원균 대표님이 제기한 의문에 업계의 열렬한 반응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레터에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지만, 이해관계자분들의 적극적인 대응이 흥미롭게 전개되었던 사안이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찾아 보셔도 좋습니다.




결론


이제 글을 마무리해야겠네요. 큰 용기를 내어 결론을 내보려고 합니다.


커피 정보가 완벽히 투명해지는 날이 올까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가능합니다. 생산자가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과 그것을 그대로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이요. 둘 다 똑같이 중요하고 기본에 가까운 일입니다만, 저는 전자가 조금 더 무겁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에티오피아 산골의 농부가 우리 돈으로 수십 만 원짜리 유전정보 테스트를 의뢰하는 일이 잘 상상되지 않아요. 현재의 업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커피 대회인 컵 오브 엑셀런스(Cup of Excellence) 정도에서나 품종이 검증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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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빈 바이어 로사가 참석했던 올해 엘살바도르 CoE.©Rosa Hung


저는, 다소 비약으로 느껴지실 수도 있겠지만, 오늘의 검토를 통해 결국 커피 생산자들의 삶이 좋아져야 스페셜티 커피의 정보도 더 정확해질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모든 생산자가 자신들이 재배하는 커피의 유전 정보를 조사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생산자들이 자신의 커피를 로스팅하고, 커핑도 하고, 필요시 유전 정보도 조사해 볼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커피 정보의 정확성 측면에서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런 환경에서 생산되는 커피의 품질과 우리가 전달받게 될 커피 이야기는 분명 지금과 다를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요.


현재 커피 생산자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이상적인 주장에 가깝습니다. 내전에 시달리고 있는 아프리카와 중미의 농민들, 도로가 정비되어 있지 않아 좋은 커피를 수출할 방법이 없는 농장들을 생각하면 정말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커피 생산국 농민들의 생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면, 그다음 과업은 커피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정보 격차를 줄이는 일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평균적인 커피 생산자들이 그린빈 바이어나 로스터 못지않은 커피 전문가가 되는 날이 오면 - 커피를 누가 재배하는지 생각하면 그것은 꽤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 스페셜티 커피도 다음 단계로 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커피 정보가 맞는지에 대한 고민은 우리에게 조금 덜 중요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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