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데릭입니다.
지난 8월, 콜롬비아에 다녀왔습니다. 콜롬비아 스페셜티 커피를 대표하는 ‘나리뇨’와 ‘우일라’ 지역의 농장들을 방문했지요. 각 농장을 방문하면서 배우고 느낀 점도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작년 말에 방문한 브라질의 농장들과도 자연스레 비교하게 되더라고요.
이번에 방문한 콜롬비아 엘 디비소 농장에서 보이는 풍경. ©️김민수Derek
브라질과 콜롬비아. 각각 세계 1, 2위의 아라비카 커피 생산국입니다. 라틴 아메리카에 위치한다는 공통점도 있지요. 하지만 커피를 엄청 많이 수출하는 남미 국가라는 점 정도를 제외하면, 두 커피 산지는 오히려 흥미로운 차이점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오늘 레터에서는 그 이야기들을 다뤄보려고 해요. 다 읽으신 후에 브라질과 콜롬비아가 어떤 커피 산지인지에 대한 감각을 얻어가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레터 마지막에는 레터와 관련된 중요한 이벤트 소식(!)도 있으니 꼭 확인해 주세요.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브라질 몬테 알레그레 농장. 이런 풍경이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김민수Derek
Note. 이번 레터는 로부스타가 아닌, 아라비카 종 이야기임을 기억해 주세요!
1. 재배 고도(altitude)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라질과 콜롬비아의 차이, 역시 커피 재배 고도입니다. 지역에 따라 다릅니다만, 콜롬비아가 더 높은 곳에서 재배한다고 할 수 있지요. 브라질의 경우 해발 900-1,300미터, 콜롬비아는 보통 1,400-2,000미터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콜롬비아 남부 나리뇨 지역의 경우 해발 2,300미터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재배 고도가 높을수록 커피 향미가 우수하다’라는 말, 들어 보셨나요? 그렇다면 더 높은 고도에서 재배되는 대부분의 콜롬비아 커피는 브라질 커피보다 향미가 뛰어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브라질의 재배 고도가 콜롬비아보다 낮은 주요 이유는 브라질의 위도가 콜롬비아보다 높기 때문입니다. 적도에 가까운 콜롬비아 대비, 위도가 높은 브라질은 같은 고도에서 기온이 더 낮습니다. 아라비카는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데, 브라질의 경우 해발 900-1,300미터에서도 충분히 아라비카를 재배할 수 있는 것이죠.
빨간 사각형은 각 나라의 주요 커피 산지입니다. ©️Google Maps
위에 언급한 재배 고도와 커피 향미의 상관관계는 같은 토양과 기후를 지닌 지역에서 비교하는 것이 맞습니다.
2. 농장 규모
또 하나 떠오르는 것은 브라질과 콜롬비아 농장들의 규모 차이입니다. ‘브라질’ 하면 수천 헥타르의 대규모 농장들이 연상되는 반면, 콜롬비아는 100-200헥타르 정도 규모의 작은 농장들이 생각납니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브라질에도 작은 농장들이 있고, 콜롬비아에도 제법 큰 규모의 농장들이 있어요. 그럼에도 현재 스페셜티 커피 업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주요 농장들을 생각하면 두 나라 사이의 규모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브라질 리우 베르데 농장. 광활한 면적을 자랑합니다. ©️김민수Derek
브라질 농장처럼 대량 생산한다는 것은 ‘규모의 경제’가 발생함을 의미합니다. 자동화를 위한 설비 투자나 프로세스 최적화를 통해 평균 비용이 낮아집니다. 충분히 괜찮은 커피를 좋은 가격에 공급하는 것은 브라질 커피의 경쟁력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 많은 로스터리가 블렌드 주재료로 브라질 커피를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리우 베르데 농장의 생산 시설. 사람의 손길은 버튼에만 닿습니다. ©️김민수Derek
반면 작은 규모의 콜롬비아 농장들은 상대적으로 개성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미시기후가 다양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죠. 유독 콜롬비아에서 다채로운 품종을 시도하고 새로운 가공 방식을 도입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세계 2위 커피 생산국이라는 기본 토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점임은 감안해야겠지만요.
3. 가공 방식
자연스럽게 가공 방식이라는 주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가공 방식 또한 브라질과 콜롬비아 커피의 큰 차이 중 하나입니다. 브라질 커피의 대표적인 가공 방식은 내추럴과 펄프트 내추럴(pulped natural)이고, 콜롬비아 커피를 대표하는 것은 워시드 가공입니다. 반대로 브라질의 워시드 커피나 콜롬비아 내추럴 커피 찾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각 나라의 기후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브라질을 먼저 볼게요. 대서양에 접해있는 이스피리투산투와 몇몇 지역을 제외하면, 브라질의 내륙 커피 산지들은 강수량이 많은 편은 아닙니다. 일조량이 많고 건조한 기간도 충분히 길게 이어지죠. 내추럴 가공에 적합한 기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조 중인 펄프트 내추럴 커피 ©️CAFE IMPORTS
그에 반해 콜롬비아는 비가 많이 오고 습합니다. 야외에서 몇 주간 커피 체리를 건조해야 하는 내추럴 커피 생산은 상상하기 어렵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건조 기간이 짧은 워시드 가공을 많이 합니다. 우리가 콜롬비아의 내추럴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것은 이런 기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온 콜롬비아 프로듀서들 덕분이라고 봐야 할 듯합니다.
콜롬비아 생산자들의 새로운 시도가 일반적인 내추럴 가공만 있는 것은 아니죠. 흔히 ‘무산소 발효’라고 부르는 가공을 한다거나, 향미 성분을 발효 탱크에 직접 주입하는 가향 커피(infused coffee)를 생산하는 일도 현재 콜롬비아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커피 프로세싱이 가장 다이나믹한 곳은 콜롬비아가 아닌가 싶습니다.
4. 언어
잘 아시는 것처럼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쓰고, 콜롬비아는 스페인어를 씁니다. 어쩌면 산지를 방문하는 외국인에게는 영어 의사소통이 얼마나 가능한지가 더 의미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현지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최고겠지만요.
작년 말 브라질에 방문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영어 의사소통에 큰 무리는 없었습니다. 기업화된 큰 농장들 위주로 방문해서 그랬던 것도 있겠고요. 제 추정일 뿐이지만, 브라질 커피 농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스페인어 대비 포르투갈어를 구사하는 외국인의 수가 적을 테니까요.
지난 8월, 콜롬비아를 방문한 첫날에 저는 아차 싶었습니다. 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스페인어를 구사했기 때문입니다. 저의 스페인어는 숫자만 겨우 세는 수준이라, 쏟아지는 설명을 스페인어로 들으며 막막함을 느꼈습니다. 다행히 제 상황을 알아차린 일행이 그때그때 영어로 통역을 해줘서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만, 준비가 미흡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저 말고도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르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캐나다에서 온 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팀은 따로 통역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잘 따라오는 모습이었어요. 어떻게 이해하냐고 물어보니, 자기들은 퀘벡에서 왔고 프랑스어가 모국어라고 하더라고요.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사이에 유사한 단어가 많아서,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나중에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로 돌아오니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에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만약 보고타를 여행하실 예정이라면 스페인어 때문에 너무 걱정하시지는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다만 저처럼 지방을 다니실 거라면 어느 정도 스페인어 준비를 하시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5. 기타 등등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인상적이었던 점 하나는 브라질 농장의 민족 구성이었습니다. 표본이 크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편향된 경험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가 만난 브라질 커피 생산자 중에는 이탈리아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20세기 초중반에 상파울루를 통해 들어온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많았음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일 같기도 해요.
제가 만난 브라질 농장주들이 이탈리아계였다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농장에서 먹는 음식들이 끝내주게 맛있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모든 식사의 마지막이 에스프레소였다는 것이었죠. 먹는 것에서 큰 즐거움을 느끼는 저에게 브라질 투어가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브라질 파세이우 농장. 어떤 농장에 가든 도착하면 맛있는 커피와 치즈볼을 대접해 주셨습니다. ©️김민수Derek
그에 비해 콜롬비아 농장에서는 어떤 뚜렷한 경향성을 찾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제가 보는 눈이 아직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스페인어 의사소통이 안 되다 보니 브라질에서 나눈 대화들에서만큼 많은 정보량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번역 서비스의 정확도가 굉장히 높아진 지금이지만, 여전히 외국어 공부가 필요하고 생각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이번 콜롬비아 투어 때 저는 라스 플로레스, 엘 디비소, 로스 노갈레스 농장을 방문했습니다. 저희뿐만 아니라 현재 전 세계 많은 로스터리가 관심을 두고 있는 농장들이죠. 운 좋게 커피 수확부터 발효 및 건조까지 모든 가공 과정을 체험해 볼 수 있었어요. 이번에 제가 이 농장들을 방문하며 보고 배운 것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맛있는 커피도 마시면서요. 공식적인 참가 신청기간은 10월 6일(금)부터지만 레터 독자님들께는 이틀 먼저 오픈해 드리려고 해요. 오랜만에 독자님들을 만나 뵈려니 저도 기대가 큽니다.
커피 향미에 영향을 주는 3요소를 설명하는 커피 컨설턴트 세자르의 노트 ©️김민수Derek
10월 20일(금) 저녁에는 토크 세션을 진행하고, 당일 낮에는 라스 플로레스 농장의 핑크 버번과 레드 버번을 주제로 한 커피와 디저트를 빈브라더스 합정점에서 선보일 예정이에요. 일명 버번즈 데이(Bourbons Day)입니다.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버번즈 데이도 한번 경험해 보시기를 추천해 드립니다. 그럼, 곧 뵙겠습니다.
뉴스레터 브라질 농장 vs 콜롬비아 농장<br>라틴 아메리카의 두 대표 선수, 어떻게 다를까?
컨트리뷰터 김민수 Derek
발행일 2023/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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