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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티 커피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스페셜티 커피란 무엇인가’에 답하는 과정




안녕하세요, 데릭입니다.


오늘은 지난 20여 년간 스페셜티 커피 업계를 가장 곤혹스럽게 했던 질문 하나로 레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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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 던져본 바로 그 질문.ⓒ박은실Momo


바로 ‘스페셜티 커피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에요. 유튜브에 ‘스페셜티 커피란’을 검색하면 이 질문에 답하고자 했던 많은 시도가 보입니다. 냉정하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그 도전에 성공한 사례는 없는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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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티 커피 정의에 대하여: 속성에 기반한 이해 ⓒSCA

그래서 스페셜티 커피 협회(SCA)가 나섰습니다. 2021년 9월에 발행한 백서(white paper)를 통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했는지’ 그리고 ‘그 결론은 무엇인지’를 설명했지요. 커피 강국 한국(!)의 위상에 걸맞게 한국어 버전도 있으니 커피 업계에 종사하고 계신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그래도 한 줄 요약이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백서의 결론을 인용해 볼게요.


“스페셜티 커피는 독특한 속성을 인정받은 커피 또는 커피 경험을 말하며, 이런 속성으로 인해 시장에서 상당한 부가 가치를 가진다.”


이 문장을 읽으신 후에도 이 정의가 마음에 와닿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 생각에 이 백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론이 아니라 결론 도출 과정에 담긴 사고입니다. 그것을 이해해야 비로소 결론을 이해할 수 있어요. 오늘 독자님에게 들려드리고 싶었던 이야기 또한 그 과정에 대한 것입니다. 정의하기 어려운 것을 도대체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요? 저와 함께 이 과정을 살펴보면서 스페셜티 커피가 과연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시죠!


✍🏻 오늘의 포인트 3가지


1. 품질이 아니라 속성으로 평가한다.

2. 내적 속성뿐만 아니라 외적 속성도 평가한다.

3. 이분법적인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것으로 바라본다. 




1. 품질이 아니라 속성으로 평가한다. 


커피는 기호식품입니다. 좋은지 나쁜지 평가할 때 필연적으로 개인의 선호가 반영될 수밖에 없어요. 똑같은 커피에 대한 평가가 사람마다 쉽게 달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가장 대표적 논쟁이 소위 ‘산미 있는 커피’가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큰 즐거움을 주는 커피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마시기 힘든 음료가 되기도 하니까요. 이런 커피는 품질이 어떻다고 평가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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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 커핑 주간. 한 팀이지만 선호하는 커피가 다를 때도 많지요. ⓒ정아름Joy


스페셜티 커피 협회는 여기에 문제의식을 느꼈습니다. ‘측정하기 어려운 품질(quality)이 아니라 측정할 수 있는 커피의 속성(attribute)을 평가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요.


그렇다면 속성은 품질과 무엇이 다를까요? 얼마나 뛰어난지(excellence)를 나타내는 품질과 달리 속성은 커피가 갖고 있는 본연의 특성(characteristic)을 나타냅니다. 당연히 그 속성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일 테고요. 커피를 이런 속성들의 총합으로 이해하자는 것이 스페셜티 커피 협회의 제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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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이 아닌 속성으로 평가하기.ⓒ박은실Momo




2. 내적 속성뿐만 아니라 외적 속성도 평가한다. 


커피의 속성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기존에 커피 업계에서 ‘평가’했던 것은 주로 내적 속성들입니다. 커핑 점수나 외관, 크기, 테이스팅 노트 같은 것들이요.


1679091c5a880faf6fb5e6087eb1b2dc_163905.jpgSCA 커핑 폼. ⓒSCA


여기서 스페셜티 커피 협회는 두 번째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소비자들은 이러한 내적 속성들만으로 어떤 커피가 좋은지 여부를 판단할까요? 스페셜티 커피 협회의 답변은 ‘아니다'입니다. 커피의 산지나 농장, 로스터리와 같은 외적 속성들도 분명히 커피를 느끼는 데 영향을 주죠. 사실 누구나 이미 알고 있는, 상식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빈브라더스를 포함한 많은 커피 브랜드에서는 이미 이러한 외적 속성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스페셜티 커피 협회에서 제안하는 것은 실제 커피 평가 프로토콜에도 외적 속성에 대한 평가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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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평가에 영향을 주는 내외적 속성들. ⓒ박은실Momo


똑같은 커피라도 북미 시장과 아시아 시장에서 반응이 다른 경우가 있죠. (대표적인 경우가 무산소 발효 커피가 아닐까 싶은데요.) 외적 속성도 평가에 포함하는 것은 다양한 시장의 서로 다른 반응을 인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는 어느 한 시장의 반응이 정답일 수 없고, 각각의 반응이 모두 의미 있다고 여기는 태도입니다. 스페셜티 커피 협회는 이렇게 다양성을 포용하는 태도가 장기적으로 스페셜티 커피에 더 긍정적일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3. 이분법적인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것으로 바라본다. 


스페셜티 커피는 기존에 존재하던 상업적인(commercial) 커피 혹은 소비재(commodity) 커피에 대한 안티테제로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는 커피들을 소비재와 스페셜티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 물어보신다면 아마 명확히 답하지 못했겠지만요.


그런데 커피가 가진 속성들의 총합으로 커피를 평가하는 방식에서는 이러한 이분법적인 구분이 덜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독특한 속성’을 가지는 것이 스페셜티 커피의 자격 요건인데, 이 독특함이란 것도 결국에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에요. 똑같은 커피도 어떤 커피와 비교되느냐에 따라 독특해질 수도, 평범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스페셜티 커피 협회는 스페셜티와 소비재의 관계를 이분법(duality)적으로 바라보던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연속적인 것(continuum)’으로 바라보자고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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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적으로 분류할 수 없는 소비재와 스페셜티.ⓒ박은실Momo


이 부분을 읽고 이 솔루션의 탁월함에 무릎을 쳤어요. 스페셜티와 소비재 사이에 선을 긋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들이 그 선을 훌쩍 뛰어넘는 커피를 판매하는 상황에서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닌 것 같고요. 중요했다면 이미 오래전에 해결하려고 했겠죠. 큰 의미 없는 선 긋기에 치중하기보단, 스페셜티와 소비재의 관계를 연속적인 것으로 이해하자는 말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제안으로 느껴집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스페셜티 커피를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커피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일 테니까요.




스페셜티 커피 협회에서 하는 일을 늘 눈여겨보는데, 이 백서를 읽고 나서는 묘한 기분이 들더군요. 스페셜티 커피를 정의하는 것은 커피 회사 한 곳이 하기는 어렵고, 공신력 있는 협회 정도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멀리 미국 포틀랜드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던 사람들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든든했어요. 그 팀이 이 레터를 읽으실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고생 많으셨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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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스페셜티 커피 협회에서 커피 가치 평가(Coffee Value Assessment)라는 새로운 커피 평가 방식을 제안했습니다. ‘속성에 기반한 스페셜티 커피의 정의’를 커피 평가 프로토콜로 발전시킨 거예요. 현재는 업계에서 베타 테스트 중인데, 지난 5월 부산에서 열린 SCA Educator Summit에서 이 평가방식에 관한 교육 프로그램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영문으로 58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이라 저도 빠르게 스캔하면서 봤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혹은 독자님들이 원하시면) 이 내용도 한번 다뤄볼게요. 그럼 저는 다음 레터에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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