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님 안녕하세요, 데릭입니다.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장마가 끝나고 나면 후덥지근한 여름이 찾아오겠죠? 이번 레터에서는 ‘커피에 서린 냉기’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갑자기 웬 냉기 타령이냐고요? ‘여름에는 역시 아이스 커피지’하다가 문득 꽤 재미있는 글감들이 떠올랐거든요.
산지에서 시작하여 로스터리를 거친 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순간까지의 이야기일 듯합니다.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지, 저와 함께 짧은 여정을 떠나보시죠. 첫 목적지는 커피가 발효되는 가공소입니다.
1. 커피 산지
아이스 퍼멘테이션(Ice Fermentation)
일반적으로 커피는 상온에서 발효됩니다. 지역마다 ‘상온’의 지점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고지대에 위치한 커피 농장은 기후가 서늘한 편이에요. 그런데 어떤 생산자들은 그보다도 더 낮은 온도에서 커피를 발효시킬 생각을 했습니다. ‘콜드 퍼멘테이션’이라고도 하지만, 빈브라더스가 2022년 1월에 출시한 콜롬비아 커피의 생산자는 자신들의 방법론을 ‘아이스 퍼멘테이션'이라고 불렀어요.
아이스 퍼멘테이션 진행 중인 커피 체리 ©Cofinet
아이스 퍼멘테이션의 취지는 이렇습니다. 발효에 관여하는 미생물들은 온도에 따라 활발한 정도가 다르죠. 라 몬타냐 농장의 엘비라 아야는 생각했습니다. 게이샤나 핑크 버번 같은 커피들을 0°C에 가까운 낮은 온도에서 발효하면 꽃 향과 바디감을 강조할 수 있다고요. 다른 변수들을 통제한 채, 발효 탱크의 온도만 바꿔가며 가공한 커피를 맛봤다면 정말 흥미로운 실험이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아이스 퍼멘테이션 커피의 맛은 어땠는지 궁금하신가요? 한창 무산소 가공 커피들이 나오던 시기였는데, 한 끗 다른 매력을 가진 커피였습니다. 테이스팅 노트를 보니 ‘장미의 화사함, 내추럴 와인의 펑키함'이라고 적혀 있네요. 그것이 아이스 퍼멘테이션 때문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좋은 커피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2. 로스터리
아이스 로스팅(Ice Roasting)
어떤 로스터리들은 로스팅 챔버에 생두와 얼음을 섞어 로스팅한다고 합니다. 당연히 농담이에요. 상식적으로 그럴 리가 없겠죠. 로스팅의 가장 중요한 화학 반응인 마이야르 반응와 캐러멜라이제이션을 위한 최소한 온도–130도에서 180도 정도일까요?–가 필요할 테니까요. 혹시 냉기가 서린 로스팅 방법론을 알고 계신다면 제보를 부탁드리며, 로스팅 단계는 살포시 뛰어넘겠습니다.(로스터 패트릭, 알고 계신가요?)
대답 없는 패트릭의 뒷모습©박은실Momo
3. 카페
핫브루(Hot Brew)
오늘 여정의 가장 중요한 목적지인 카페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우리가 아이스 커피를 마시는 가장 흔한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핫브루’입니다. 뜨거운 물로 높은 농도의 커피를 내린 후에 물과 얼음을 섞어 적정 농도의 아이스 커피로 만드는 것이죠. 한국을 대표하는 음료인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제조 방식이고, 아이스 드립 커피 역시 마찬가지의 원리로 만들어집니다.
합정점의 일상, 아이스 드립 커피 제조 중.©황요성Scene
콜드브루(Cold Brew)
17세기 일본 교토에 살던 사람들은 뜨겁지 않은 물로 커피를 내릴 생각을 했습니다. 네덜란드(Dutch) 상인들이 가져온 커피 가루에 물을 한 방울씩 천천히 떨어뜨려 커피를 만들었지요. 네, 유명한 ‘더치 커피’의 기원입니다. 찬물로 차를 우리는 방식이 익숙했던 교토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시도였을지도 모르겠어요.
더치 커피 ©Sprudge
현대에 들어와서 콜드브루도 여러 형태로 발전하게 됩니다. 물을 한 방울씩 커피 가루에 떨어뜨리는 더치 커피, 아예 커피 가루를 일정 시간 물에 담그는 침지식(immersion). 이 두 가지가 대표적인데요. 대용량의 콜드브루를 생산하는 공장에서는 스프레이로 커피 가루에 물을 분사하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더치 커피의 산업화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요.
침지식 콜드브루 ©Hario
‘콜드브루가 핫브루와 어떤 차이가 있나’하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대답하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커피의 추출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상당히 많고, 핫브루와 콜드브루 안에서도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차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에요. 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 물의 온도가 높을수록 추출 성분의 양이 많아지겠지만, 핫브루와 콜드브루의 차이가 물의 온도만은 아니기 때문에 엄밀히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커피와 물이 접촉하는 시간이 콜드브루가 핫브루에 비해 압도적으로 길죠.)
다만 제가 콜드브루로 마시기를 선호하는 커피가 있다는 점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잘 익은 과일과 발효 느낌이 나는 커피를 콜드브루로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2022년에 커피 크리에이터 안스타님과 바리스타 제이스가 이 주제로 이야기 나눈 적이 있어서 유튜브 링크를 첨부합니다. 제이스의 콜드브루 내리는 꿀팁도 얻어가실 수 있을 거예요.
4. 새로운 기술
이번에는 세상에 나온 지 불과 1년도 안 된 최신의 기술들을 소개해 드릴게요. 기존 추출 방식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개선하려고 한 혁신가들의 이야기입니다.
상온 에스프레소
에스프레소 추출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변수는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추출수의 온도와 압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뜨거운 물이 아닌 상온수를 사용하면 어떨까요? 그렇더라도 압력을 정교하게 통제하면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일관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팀이 한국에 있습니다. 바로 제로쓰로(Zeroth-Law) 팀인데요.
커피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할 만한 아이디어였고, 저희도 그랬습니다. 제로쓰로 팀과 머신을 합정점에 초대하여 3주간 함께 이벤트를 진행했어요.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들께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에스프레소 머신과의 비교 테이스팅 경험도 제공해 드렸는데, 상당히 재미있어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예전에 <정확한 커피 머신, 누가 만들었을까?>라는 레터에서 모모가 안형전 대표와 나눈 인터뷰가 있으니, 아직 못 보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빈브라더스 합정점에 놓인 제로쓰로의 리얼나인©박은실Momo
파라곤 브루어
요즘에는 한국의 카페들도 사용하고 있어서 이미 경험해 보신 분들도 계실 텐데요. 파라곤 브루어는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적용된 독특한 구조의 추출 기구입니다. 사진을 보시는 게 가장 이해가 빠르실 것 같아요.
파라곤 브루어 ©ONA Coffee
가운데에 보면 노란색의 공이 보이시죠. 냉장고에 보관하여 차가운 이 공이 파라곤 브루어의 핵심입니다. 상단의 드리퍼와 하단의 서버(추출된 커피를 받는 용기)라는 전통적인 추출기구의 조합에 새로운 요소가 추가된 것인데요.
사샤 세스티치(호주 오나 커피ONA Coffee의 창업자)의 설명을 빌리자면, 추출된 커피 속 좋은 향미 성분을 지키기 위해 파라곤 브루어를 사용합니다. 아무래도 커피의 온도가 높을수록 날아가는 성분이 많을 테니, 커피가 추출된 직후에 바로 차가운 공을 만나게 하여 온도를 떨어뜨리면 휘발 속도를 늦출 수 있을 거라는 아이디어입니다.
저도 파라곤 브루어로 내린 커피를 몇 잔 마셔보긴 했지만, 칠링 볼을 거치지 않은 커피와의 비교 테이스팅을 해본 적이 없어서 이 브루어의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을 내리지 못한 상태인데요. 왠지 우리 독자님들 중에 이미 실험을 해보신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그렇다면 어떠셨는지 꼭 이야기 나눠주세요.
커피에 서린 냉기를 찾아 산지에서 카페까지 먼 길을 달려왔는데요. 오늘의 여정은 어떠셨어요? 저는 냉기의 면면이 생각보다 다양해서 글 쓰는 재미가 쏠쏠했어요.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네요.
무더운 바깥 날씨와 과도한 실내 냉방에 유의하시고, 수분도 충분히 보충하시면서 건강하게 여름 나시길 바랍니다. 아, 배가 차가워지면 탈 날 수 있으니 냉기 서린 커피는 조심히 드시고요!
제목 커피에 서린 냉기<br>아이스 발효 원두부터 차가운 커피까지
글쓴이 김민수 Derek
발행일 2023/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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