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레터로 인사드리는 데릭입니다. 잘 지내시죠?
며칠 전, 편의점에 들렀는데 못 보던 콤부차를 팔더라고요. 말레이시아에서 살 때 즐겨 마시던 음료라 반가운 마음에 사서 마셔보았지요. 콤부차에서 으레 느껴지는 산미와 은은한 탄산 그리고 특유의 쿰쿰한 향까지, 제가 기억하던 그 맛 그대로였습니다.
박테리아와 효모 등으로 발효하는 콤부차. ©Getty Images
벌컥벌컥 콤부차를 마시다 보니 다소 엉뚱한 생각이 들더군요. 처음 마실 때는 꽤 낯설었는데, 지금은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가 궁금해졌어요. 콤부차도 그렇고 내추럴 와인도 그렇고, 우리는 결국 이런 향미를 좋아하게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맛을 추구하다 보면 미식의 끝에는 발효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다소 드라마틱한 생각까지 하게 되었지요.
네, 오늘 레터의 주제는 ‘발효’입니다. 콤부차는 세상에 있는 수많은 발효식품 중 하나지요. 우리가 즐겨 먹는 된장이나 청국장의 향을 생각하면 콤부차의 쿰쿰함은 귀여운 수준인 것 같아요. 오랜 시간 발효한 커피의 향미를 떠올려도 그러합니다. 생각해 보면 ‘쿰쿰하다’는 말도 귀여운 느낌이네요. (저만 그런가요?)
1. 발효식품의 향
발효식품이라고 다 같은 건 아닙니다. ‘발효’하면 떠오르는 향미가 있긴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발효했는지에 따라 향의 범주나 강도가 달라지기도 하니까요. 맥주나 와인, 콤부차처럼 비교적 쉽게 마실 수 있는 식품도 있는 반면, 홍어나 취두부, 블루치즈 같은 것들은 소수 애호가의 전유물처럼 느껴집니다.
취두부, 드셔보셨나요? ©Wikipedia
왜 후자의 식품들이 먹기 어려울까 생각해 보면 결국 ‘향’이 문제인 듯합니다. 특유의 고약한 향이 뇌를 통해 ‘이건 먹으면 안 된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코를 막고 홍어와 취두부를 먹었을 때 먹을 만했던 기억이 있어서 더욱 발효식품의 이슈는 향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향이 발효식품을 먹는 데 높은 진입장벽이라면 우리가 지금처럼 많은 발효식품을 먹고 있지는 않겠죠. 후각 시스템은 매우 예민하여 세밀한 분석을 할 수 있지만 동시에 굉장히 빠르게 적응하는 감각기관이기도 합니다. 분석해야 하는 것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일단 놔두는 것일까요? 사람이 자신의 체취를 잘 맡지 못하는 것, 어떤 공간에 오래 있으면 그 냄새를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 처음에는 낯설어서 기피했던 음식의 향도 많이 먹다 보면 익숙해지는 것같이 말이죠.
2. 발효식품은 왜 맛있는가
이렇게 ‘향’에 익숙해지면 비로소 홍어나 취두부처럼 고난도 음식의 ‘맛’을 온전히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식품마다 다르겠지만 발효식품에서 고소함이나 달달함, 진한 감칠맛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지요.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세계적인 식당 노마(noma)의 셰프 르네 레드제피와 데이비드 질버가 쓴 <노마 발효 가이드 The Noma Guide to Fermentation>라는 책을 보면 왜 발효식품이 맛있는지 설명한 부분이 있어요. 약간 길어서 요약, 번역하여 소개해 보겠습니다.
교양서보다는 실용서에 가깝습니다. ©한스미디어
🔖 왜 발효식품은 맛있는가? (What Makes Fermentation Delicious?)
• 우리의 미각과 후각은 몸에 좋은 음식을 판별하여 인류의 생존을 돕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훌륭한 에너지원인 당(sugar)이 많으면 달게 느끼고, 단백질이 풍부한 고기 굽는 냄새를 맛있게 느끼는 식으로 작동한다. 반대로 쓴맛을 느끼거나 구역질하게 되는 경우에는 잠재적으로 독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게 된다.
• 곡물에 있는 전분(starch)이나 육류의 단백질은 우리 몸이 맛있거나 감칠맛이 난다고 느끼기에는 매우 큰 분자들이고, 작게 쪼개졌을 때야 비로소 맛있다고 느끼게 된다(데릭 주-작게 쪼개진 후에야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원이 되거나 인체의 구성성분으로 소화 및 흡수가 되는 점을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 당과 단백질을 작은 분자로 쪼개어서 우리가 맛있다고 느끼는 물질로 바꿔주는 일, 이것이 발효가 하는 일이다. 쌀을 발효한 코지(koji)는 일반 쌀이 가지지 못한 강렬한 단맛을 갖고 있고, 날고기를 발효하여 만든 가룸(garum)은 원초적 짭짤함(savoriness)을 느끼게 해준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발효식품의 가치는 기본적으로 향이 아니라 맛에서 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쿰쿰한 향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일반 식품에서는 즐기기 어려운 단맛 혹은 감칠맛을 즐기게 되는 것이지요. 놀라운 것은, 처음에는 다소 낯설게 느껴졌던 이런 쿰쿰한 향이 어느 순간부터는 그 식품의 매력으로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전히 홍어의 향이 매력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내추럴 와인과 콤부차에서 나는 쿰쿰한 향은 이 음료들의 개성이자 매력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홍어삼합. 발효식품 옆에 발효식품이… ©목포맛집
3. 무산소 발효 커피
지난 몇 년간 꽤 많은 ‘무산소 발효(anaerobic)’ 커피를 마시며 제가 느낀 점도 비슷합니다. 예전에 <짜파게티가 다크 초콜릿이 되기까지>라는 레터에서 제가 커피의 발효 향미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요. 요새 훌륭하게 발효된 커피들을 마실 때면 어느새 이것들이 어엿한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짧은 기간 안에 지나치게 다양한 커피를 마시는 저의 직업적인 특성도 커피의 발효 향미를 높게 평가하는 데 영향을 주는 듯합니다. 저에게는 적절히 발효된 커피가 전통적인 커피들보다 ‘재미있게’ 느껴지거든요. 일 때문이 아니라 기호식품으로만 커피를 소비했다면 지금처럼 커피 발효 향미에 열려있을까 싶은 생각은 여전히 있어요. 오랜만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을 고를 때와 매주 수십 종의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한 잔 더 고를 때의 마음은 다를 테니까요.
얼마 전, 미국 생두회사 캐털리스트 트레이드(Catalyst Trade)가 빈브라더스 합정점에서 진행한 <에티오피아 옥션 커핑>에 참여하면서도 커피의 발효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발효를 통해 얼마나 커피의 향미가 매력적으로 구현될 수 있는지를 경험할 수 있는 커핑이었거든요. 발효탱크 안의 산소량과 발효 시간을 조절하고, 미생물의 영양분이 될 물질에 변화를 주는 일이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가능한 일이죠. 제가 프로세싱 전문가는 아니지만, 지금껏 마셔온 커피 경험으로 판단해 보면 그런 미션을 달성하는 커피들은 소수이긴 합니다. 인연이 닿으면 이번 커핑에서 저희 팀이 좋아했던 커피들을 연말에 소개해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커핑하는 크리스(Catalyst Trade 소속), 데릭, 케이브. ©이은주Jay
최근 해오던 ‘미식과 발효’에 관한 생각들을 주저리주저리 말씀드려 보았는데요. 사실 이번 레터는, 지난 100호 레터에서 한 독자님이 질문해 주신 ‘커피 발효’라는 주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커피를 발효시키는 가공 기술 측면에서 지난 몇 년간 의미 있는 변화가 느껴졌거든요. 그러한 커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역시 그렇고요. 적어도 ‘컵오브엑셀런스(Cup of Excellence)’ 대회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어떤 커피들을 ‘김치 커피’라고 부르던 시절에서는 벗어난 듯합니다.
오랜 시간 미식(gastronomy)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온 발효가 이제 커피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코스타리카와 콜롬비아와 같은 커피 프로세싱 강국에서 발전한 트렌드가 이제는 에티오피아같이 커피 원석들이 가득한 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는데요. 앞으로 수년간 어떤 새로운 커피들을 만나게 될지 무척 궁금하고 기대되는 시점입니다.
뉴스레터 발효식품이 맛있는 이유<br>무산소 발효 커피가 맛있게 느껴진다면
컨트리뷰터 김민수 Derek
발행일 2023/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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