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회원 2,000P 지급

보기 좋은 부자(父子)손님
바리스타 비숍의 <가장 사적인 커피 이야기>




안녕하세요, 독자님. 에디터 모모입니다.


차가운 날씨에 무탈하셨나요? 길어지는 겨울에 굳어질 때, 좋아하는 시구를 떠올리곤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아 / 우리에게 추운 겨울이 없다면 /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얼어붙기에 온기를 배울 수 있는 아름다운 계절. 오늘은 이 겨울에 어울리는 <가장 사적인 커피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며칠 전, 앨리웨이 인천점의 윤주교 바리스타(이하 비숍)가 바(bar)에서 있었던 일을 단편 에세이로 팀에게 공유해주었거든요. 이 글을 읽자마자 독자님께 전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소중히 담아왔습니다. 흔쾌히 글을 나눠 준 비숍에게 감사를 전하며, 비숍의 시선을 통해 독자님께도 따스함이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6196a5cf319335c3d7cbc101a0883bca_180403.jpg
앨리웨이 인천점의 비숍.©박은실Momo




<보기 좋은 부자(父子)손님>

written by 윤주교 바리스타


1. 

바리스타 파라와 2인 근무하는 날. 눈이 많이 와서일까. 뜸한 발걸음에 앨리웨이 몰 전체가 차분하다.


점심 손님들도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더 이상 오는 걸음 없이 한적해진 시간. 파라도 식사 시간이 되어 떠나고 나 홀로 바를 지킨다. 다음 달 커피를 잠시 탐구할 생각으로 2월의 에티오피아 데메카 원두를 소분하는 순간, 남성 두 분이 매장으로 들어오셨다.


메뉴판을 마주하자마자 드립 커피 쪽에 집중하는 어린 손님. 고등학생 정도로 추정되는데, 싱글 오리진 라인업을 뚫어져라 보며 좌우로 움직이는 눈동자에 신중함이 드러난다.


“나는 에티오피아.”

“어우야, 여기서 커피를 고르는 거야?”


아버지로 보이는 남성분도 메뉴판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붉어진 피부, 하얗게 서린 안경이 두 사람이 눈길을 걸어왔다고 말해준다. 가만히 메뉴를 읽기 시작했지만, 열의 가득했던 어린 손님과는 다르게 어른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다. 안내가 필요하겠구나.



[진동벨 14번 입력]

S4 HOT 1

S6 HOT 1



아들은 섬세한 꽃향과 단맛이 좋은 에티오피아 다바예, 아버지는 망고와 오렌지를 떠오르게 하는 케냐 티리쿠. ‘아들 따라왔으니 안 마셔본 커피, 산미 강한 커피 한번 마셔보자.’ 케냐를 고르는 목소리에 마음의 소리가 묻어났다. 서슴없이 바 좌석 메인 브루잉 존에 자리 잡은 두 사람. 원두를 분쇄하는 나의 등 뒤로 네 개의 눈동자가 뚫어져라 나만 보고 있다는 것은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2.

열렬한 눈빛의 손님들에게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을까. 분쇄한 원두의 시향을 권하고 잠시 떨어져 천천히 물을 준비했다. 두 사람은 바꿔가며 향을 맡고 서로의 느낌을 나눴다.


“뭔가 평소에 맡아보던 커피 향이 아닌데?”

“응, 뭔가 향긋해.”


두 사람의 대화가 충분하다 느껴질 때, 다가가 천천히 추출을 준비한다.


“향은 어떠셨어요?”


나의 첫 질문을 시작으로 두 사람의 질문도 쏟아진다.


“지금 이 향이 커피에서도 나나요?”

“에티오피아는 워시드인가요?”

“케냐는요?”


부자 모두 궁금한 것 한가득, 흥미 한가득. 손님의 질문에 답하며 린싱을 시작하자 아들은 조용히 휴대폰을 들어 촬영 버튼을 누른다. 아버지 역시 내 답변을 들으면서도 시선은 드리퍼에 고정된다. 드립 커피는 처음이라는 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며 이왕 셋뿐인 시간, 내가 하는 행동에 설명을 붙여 추출하기로 한다. 린싱-블루밍-원푸어. 하나씩 차분히 정보를 곁들인다. 이어서 원두 카드를 건네자 말없이 정독하는 두 사람. 아들은 휴대폰을 들고 무언가 열심히 검색하기도 한다.


“아들이 커피 학원에 다니는데, 거기 선생님이 여기는 꼭 가보라고 했대요.”


이 흥미 가득한 부자가 추운 눈길을 뚫고 우리에게 오게 된 이유를 알았다. 평일 오후. 아버지가 원래 쉬는 날인지 연차를 썼는지, 심심해서 따라왔는지 아들이 졸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순간 부자가 나란히 커피를 마시는 광경은 자체로 아름다워 한마디로 표현해내기 어렵다.


3.

어느덧 매장이 북적이고, 부자는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다른 손님의 음료를 준비하며 흘깃, 두 사람은 가까이 붙어 원두 카드와 핸드폰을 보며 대화 중이다. 커피 한 모금, 말 한마디의 반복. 두 사람에게 커피 한 잔은 부족해 보인다.


“괜찮으시면 이 원두 향도 한번 맡아보시겠어요?”

“이것들이랑은 전혀 다른데요?”


부자의 흥미를 돋우기엔 몰트 블렌드가 제격이겠다. 이전에 마신 두 잔과 전혀 다른, 구운 곡물을 연상시키는 커피다. 이번에도 역시 원두 카드를 건네자마자 바빠지는 눈동자, 이어지는 질의응답.


“로부스타?는 뭐지?”

“로부스타는 말이야. 그, 커피가……”


로부스타의 설명은 아들에게 맡겼다. 열심히 머릿속을 뒤져 설명을 이어가는 아들과 그것을 지켜보는 아버지. 나는 조용히 몰트를 나눠 두 사람 앞에 놓았다.



4.

두 사람은 매장을 나설 때까지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의 손에 들린 책은 끝내 펼쳐지지 않았다.


“다음엔 아내랑 올게요. 잘 마셨습니다. 감사합니다.”


30분 남짓한 짧은 순간이었지만 기억에 오래 남을 시간이었다. 메뉴를 안내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버지는 익숙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책을 읽다 돌아갔을 수도 있다. 시향을 권하거나 질문에 잘 대답하지 않았다면, 나를 말 없이 지켜보다 조용히 잔을 비우는 두 사람을 상상해본다. 몰트 시음을 권하지 않았다면, 아들은 아버지에게 공부한 내용을 꺼내게 되었을까. 그저 가능성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오늘 이 부자의 시간 속에 나는 괜찮은 바리스타이지 않았을까. 항상 이럴 수 없겠지만, 언제든 그럴 수 있기를.


f32f3045111def8e6690c95ee55aa1c4_180645.jpg



바리스타 비숍의 이야기, 어떻게 읽으셨나요? 마지막으로 비숍의 소감을 전하며 오늘 레터를 마칩니다. 피드백 버튼으로 여러분의 이야기도 함께 나눠주세요. 비숍이 떨리는 마음으로 답장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 저는 다음 레터에서 또 인사드릴게요.


“무뚝뚝한 아들과 그 옆의 아버지, 두 사람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흔한 일상의 한 장면이고 어디서나 있을 법한 상황이지만, 그 안에서 두 사람의 소통에 함께할 수 있어서 감성이 터진 것 같습니다. 인상 깊은 순간을 생생하게 남기고 싶어 몇 시간 뒤에 바로 글을 써 내려갔거든요. 두 부자의 모습에 노래 한 곡이 떠올라 조심스레 추천해 봅니다. 잔잔한 R&B라 졸릴 수도 있지만 좋은 곡이에요. 진한 순간을 남겨주신 두 부자 손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 비숍의 추천곡

Luther Vandross - Dance With My Father





ef323b80c2b80e02199dadc6eaf78b92_235516.jpeg

TODAY VIEW

0/2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