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회원 2,000P 지급



꿀인지 커피인지
오랜만에 르완다와 부룬디를 출시하며





안녕하세요, 데릭입니다. 기온이 내려가서 그런지 따뜻한 커피가 더 맛있게 느껴지는 요즘인데요. 일교차가 크니 감기 걸리지 않도록 건강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지난 레터 <아시아의 커피>에서 이제 막 저희가 관심을 갖기 시작한 아시아의 커피 산지 태국과 말레이시아를 다루었는데요. 굳이 대륙으로 나누어보자면 제 개인적인 커피 취향은 언제나 동아프리카쪽입니다. 스페셜티 커피의 입문을 에티오피아로 했고, 나중에 케냐의 독보적인 향미에도 눈을 뜨게 되었죠.


그러다 올해 들어 다른 아프리카 산지에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바로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작은 두 나라 르완다와 부룬디예요. 사실 커피 일을 하기 전에는 어디에 있는지, 어떤 나라인지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었던 나라들인데요. 지금도 잘 알지는 적어도 아프리카 대륙 어디에 붙어 있는지는 알게 되었습니다.


르완다와 부룬디 모두 커피 생산량과 수출량이 적어서 커피 업계에서 ‘양’적인 존재감은 미미한 편입니다. 2019년 기준으로 보면 르완다(1.5만 톤)와 부룬디(1.2만 톤)의 커피 수출량을 모두 합해도 태국(3만 톤)보다 적으니까요. 참고로 같은 해 브라질은 265만 톤의 커피를 수출했습니다.


4af52202f77beb11ba59ce2056aa7878_154743.png
동아프리카 중부 서쪽에 위치한 르완다와 부룬디. ⒸUNITED NATIONS


그런데 두 나라의 커피 품질은 전혀 미미하지 않습니다. 체계적인 생산 과정을 거치고 엄격한 기준으로 선별된 스페셜티 등급의 경우 오히려 탁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르완다와 부룬디 커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유의 달콤함과 과일스러운 향미가 있다고 생각해서요.


예전에 맛있게 마셨던 르완다 커피를 떠올려 보니, 2020년에 저희가 출시한 블렌드 ‘세븐(SEVEN)’이 생각납니다. 빈브라더스 7주년 기념으로 출시한 블렌드였는데요. 버번 품종의 워시드와 내추럴을 조합한 상당히 과일스러운 커피였습니다. 르완다 커피로만 이루어진 7주년 블렌드라니, 지금 생각하면 꽤나 모험적인 시도였네요. 그만큼 블렌드 재료로 선정한 두 르완다 커피의 품질이 좋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c5f32b2f19f61ef18565b2507a0fc9c8_154818.png

e7e17643bd5e750c8b94d5ffe6c542c9_154831.png

 

‘기억에 남는 부룬디 커피는 뭐가 있었지’ 생각해봤는데, 역시나 2020년에 마셨던 한 잔이 떠오르더군요. 로우키 성수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마신 커피였습니다. 2019년 부룬디 컵 오브 엑셀런스(Cup of Excellence) 1위를 차지한 커피였는데요. 지금은 농장의 이름도, 커피의 맛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절 맞아주신 바리스타께서 들려주셨던 커피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경매에서 이 커피를 낙찰 받고, 내륙 국가인 부룬디의 커피를 지부티(Djibouti) 항구를 통해 한국으로 수입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지 설명해주셨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듣고 마셨던 기억입니다.


제가 재미있게 읽었던 커피 이야기도 떠오르네요. 지금은 판매하지 않는 것 같은데, 예전에 미국 커피 브랜드 인텔리젠시아 커피(Intelligentsia Coffee)에서 출시한 ‘Great Lakes’라는 블렌드가 있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케냐와 르완다, 부룬디로 이루어진 블렌드였던 것 같은데요. Great Lakes는 번역하면 ‘대호수’쯤인데, 일련의 큰 호수들의 조합을 뜻합니다. 인텔리젠시아가 위치한 시카고에도 Great Lakes가 있고, 르완다와 부룬디를 포함한 동아프리카에도 Great Lakes가 있는 점에 착안하여 두 지역을 연결시키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르완다와 부룬디를 마음껏 즐겼던 2020년이었는데, 그후 4년 간 제 커피 경험에서 두 나라의 이름이 쏙 빠져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빈브라더스에서 이 기간 동안 르완다와 부룬디 커피를 거의 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개인적으로 카페를 갔을 때도 두 나라의 커피를 잘 고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둘 다 이유는 같은데요. 바로 ‘포테이토 테이스트 디펙트(Potato Taste Defect)’라 불리는 결함 때문이었습니다. 번역하자면 ‘감자맛 결함’이라고 해야할까요?

 

이 결함의 증상은 간단합니다. 커피에서 생 감자 냄새가 납니다. 음료 뿐만 아니라 원두에서도 맡을 수가 있어요. 주로 르완다와 부룬디, 콩고 민주공화국을 비롯한 동아프리카 산지에서 발생하는데 오랫동안 커피 생산자들을 괴롭혀 왔습니다. 안테스티아(antestia)로 불리는 벌레가 커피 체리에 상처를 입힌 후에 아직은 밝혀지지 않은 메커니즘으로 생 감자 냄새를 내는 물질을 발생시키는 것인데요. 미국의 커피 로스터리 카운터 커피 컬처(Counter Coffee Culture)의 자체 연구에 따르면 약 1.55kg 원두에서 1g 정도의 비율로 발생했다고 합니다. 1g이면 원두 두세 알 정도이니 정말 적은 비율이지만, 그 몇 알이 커피 향미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큽니다. 건강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알려져있지만요.


891f769af58056705606f291290bebed_154955.png
월드 커피 리서치에서 발행한 백서 ⒸWorld Coffee Research



하지만 카페에서 주문한 커피를 마시고 포테이토 디펙트를 경험하셨을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분쇄 과정에서 이미 감자 향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바리스타 분들이 그 분쇄두를 버리고 새로 분쇄하여 커피를 내려드렸을 가능성이 높아서요. 만약에 집에서 커피를 자주 내려 드시고, 해당 시기에 르완다나 부룬디 원두 1-2kg 정도 소비하셨다면 어쩌면 경험하셨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런 경우도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커피 소비국에서 포테이토 디펙트로 가장 골치가 아픈 것은 로스터리와 카페가 아닐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로스터리가 포테이토 디펙트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적은 비율로 발생하는 포테이토 디펙트로 발생하는 비용적인 손실을 감수하고 르완다와 부룬디를 판매하는 것, 또는 아예 두 나라의 커피를 판매하지 않는 것. 르완다와 부룬디 커피가 에티오피아나 케냐에 비해 특별히 저렴하지 않는 현재 시점에서 후자는 로스터리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적은 비율로 발생한다 해도 리스크이긴 하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개별 로스터리들이 ‘합리적으로’ 르완다와 부룬디의 커피를 선택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두 나라 커피에 대한 수요가 줄면서 가격이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커피 생산자들의 소득이 줄어들면서 어느 시점이 되면 커피를 재배할 동기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게 극단적으로 가면 르완다와 부룬디 커피가 시장에서 점차적으로 사라지게 될 수도 있는 것이죠.


다행히도 전세계의 많은 커피 로스터리들은 르완다와 부룬디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도 지난 몇 년간 많이 출시하진 못 했지만, 꾸준히 두 나라의 커피를 샘플링해 왔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에티오피아나 케냐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품질의 르완다와 부룬디 커피를 발견하여 올 하반기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부룬디 마샤’라는 커피인데요. 달콤함의 속성이 열대과일과 핵과, 꽃을 넘나듭니다. 과일스러운 커피를 좋아하신다면 드셔보실 만합니다.


c1889ad57929ea9a1ac3ba10085e6881_155028.png
부룬디 마샤




지난 8월에 커피 팟캐스트 <5TH WAVE>에서 부룬디의 커피 회사 JNP를 창업한 저닌(Jeanine)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주로 창업자인 저닌 개인과 회사의 성장사이긴 했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현재 부룬디의 커피가 예전에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체계적인 방식으로 생산되고 있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올해 좋은 품질의 르완다와 부룬디 커피를 맛보았던 기억이 스쳐가면서, ‘이 지역의 커피 품질이 점점 더 발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추정을 조심스럽게 해보게 되었어요. 그래서 아직 르완다와 부룬디의 커피를 많이 접해보지 못 하셨다면 이제는 한번 시도해볼 만한 시기가 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에티오피아와 케냐를 포함한 동아프리카의 커피를 더 다채롭게 즐기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오늘은 르완다와 부룬디 이야기를 저의 개인적인 커피 경험과 함께 가볍게 들려 드렸는데요. 동아프리카 커피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Bb레터에서 다뤄보려고 해요. 본격적인 에티오피아와 케냐 산지 이야기, 르완다와 부룬디보다도 더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 우간다와 콩고민주공화국, 독특하게 하이엔드 커피에 포지셔닝이 되어 있는 탄자니아까지 할 이야기가 은근히 많습니다. 다음 기회에 또다른 동아프리카 커피 이야기로 만나요!




ef323b80c2b80e02199dadc6eaf78b92_235516.jpeg


TODAY VIEW

0/2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