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자님. 커피 한 잔의 시작점, 산지와 생두 이야기를 들고 온 로스터리의 소이입니다.
생두를 고르는 로사의 첫 번째 이야기에 이어 새로운 로사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기 위해 찾아왔어요. 아시다시피 대만 국적의 로사는 한국어보다 영어가 편하기에, 제가 로사와의 대화를 재구성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레터는 한 달 전, 바리스타 파라가 보내온 메시지에서 시작됩니다.
한 줄 요약: 왜 또 같은 농장에서 생두를 구매했는지, 벌써 세 번째라 궁금해요!
10월 원두 공부를 파고들던 파라는, ‘과테말라 부에나비스타 내추럴’이 2020년과 2022년 초에 이어 세 번째로 같은 농장의 생두임을 발견합니다. 산지와의 직거래도 아닌 업체를 통한 거래인데도 반복해서 이 커피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던 것이죠. 파라 덕분에 생두 수출입 업체인 ‘프리마베라’로부터 과테말라 커피를 소싱해온 지난 3년을 복기하게 되었습니다.
생두 업체 이야기라니, 조금 낯설게 느껴지실 텐데요. 오늘 자주 언급될 프리마베라에 대한 설명을 보태 볼게요. 프리마베라는 언급했다시피 과테말라 생두를 전문으로 다루는 수출입 업체입니다. 수출업체는 생두를 판매하는 커피 농장의 대변인이고, 수입업체는 생두를 구매하려는 로스터리의 대변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프리마베라는 이 두 역할을 다 맡고 있습니다. 로사가 프리마베라를 만난 과정을, 로사의 생각과 함께 추적해 볼게요.
로스터 케이브와 커핑 중인 로사(왼쪽).©박은실Momo
💭 2년 전 로사: 생두를 더 다양한 곳에서 찾고 싶어. 먼저 폭풍 리서치를 해보자!
2020년 l 프리마베라 발견
리서치에 에너지를 불태우던 로사는 ‘Specialty Coffee Transaction Guide‘라는 자료에서 프리마베라를 발견합니다. 이 자료는 여러 농장과 로스터리 간의 매매 가격을 투명하게 공개해요. 합리적인 가격에 매매가 이루어지게 하고,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자 무료로 배포되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거기에 자발적으로 거래 정보를 제공한 100여 개의 업체 목록이 부록으로 실린 것이지요. 그중 수출입 업체로 분류된 곳에 차례로 연락을 시작했어요. 이런 철학에 공감하고 데이터를 기증할 수 있는 팀이라면, 최소한 이상한 업체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중에 프리마베라가 있었던 것이죠.
데이터 기증 업체 목록 중.©️Specialty Coffee Transaction Guide 2019
💭 로사의 머릿속: 프리마베라에서 샘플을 받아서 팀과 커핑해보자.
2020년 | 첫 구매와 첫 소개
프리마베라가 소개한 생두들을 팀과 함께 맛보고 두 종류를 구매하기로 했습니다. 신선하고 매력 있는 제철 원두를 매달 소개하는 싱글 오리진 카테고리로 출시하려고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 있던 13개의 생두 포대가 팔레트에 실렸습니다. 프리마베라 미국 사무실에서는 주로 미국 국내 판매를 관리해왔대요. 해외로, 더군다나 한국에 수출하는 건 처음인 듯했어요. 각종 서류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인천 빈브라더스 로스터리에 도착한 생두는 로스팅을 거쳐 2020년 10월과 11월, 싱글 오리진으로 소개됩니다. 10월의 아티틀란 티나밋은 ‘통아몬드 캔디’를 연상시키며 ‘고소한 커피’의 새로운 관점을 제안해주었습니다. 11월의 부에나비스타 허니는 당시 헤드 로스터 제임스의 ‘와일드카드’로 주목받았죠. 커피 선정팀 다수의 공감을 얻지 못했음에도 제임스의 강한 확신으로 선택되어 특별한 매력을 뽐낸 행운의 커피입니다. 마카다미아와 카야잼이 연상되는, 균형감 좋고 고소한 커피였어요.
2020년의 두 과테말라 커피. ©빈브라더스
특히 10월의 아티틀란 티나밋은 팀 내에서도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로스터리팀의 커피 리뷰에서 브라질 CoE, 케냐 커피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공동 3위에 오른 것이죠. 데일리 커피 카테고리에서 쉽지 않은 성과였어요. 꽃이나 과일 향을 자랑하는 에티오피아 커피들은 이색적인 경험으로 느껴져 높은 점수를 받기 쉽지만, 초콜릿이나 견과 노트의 커피들은 편안하게 마실 수 있기 때문에 구운 향이 좋다는 정도로 단순하게 평가받곤 했거든요. 배전도가 높지 않았음에도 고소함이 선명하고 구체적인 노트를 느끼게 하기에 훌륭한 커피로 인식될 수 있는, 살아있는 사례가 되었던 것이죠. 게다가 한 해 동안 소개했던 다섯 개의 과테말라 커피가 전체적으로 평균 이상의 순위에 올랐습니다.
💭로사의 머릿속: 프리마베라와 첫 거래였는데 너무 만족스러워. 또 구매해봐야겠다!
2021년 2월 l 온라인 미팅
재구매 의사를 가지고 프리마베라의 설립자이자 대표인 나딘과 처음으로 온라인 미팅을 가졌어요. 지난 생두에 대한 팀의 만족도와 시장의 반응을 나누고, 모두가 기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나딘은 겸손하고도 똑똑한 사람이었어요. 커피 농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영국에서 금융을 공부했다고 하더라고요. 나딘은 카메라를 여기저기 비추며 과테말라 사무실 옆에 자리 잡은 로스터리 카페도 보여주고, 샘플 로스터가 줄지어 있는 연구 공간도 구경시켜주었습니다. 여전히 커피 산지의 많은 농부가 본인이 재배한 커피를 즐기지 못하는 것과는 대조적이었어요. 원산지와 로스터리, 생산국과 소비국이 대등하게 관계 맺는 모델을 만났다는 안도감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프리마베라의 창립자이자 대표, 나딘 러쉬(Nadine Rasch). ©Primavera
💭로사의 머릿속: 아티틀란 티나밋, 부에나비스타 같은 품질 좋은 커피가 또 있는지 요청해보자.
2021년 6월 l 두 번째 구매
견과, 초콜릿, 캐러멜 계열의 커피를 찾는 중이었던 우리는, 또 한 번 프리마베라에 샘플을 요청했습니다. 노트가 선명하고 단맛이 출중한, 86점 이상의 생두를 추려달라고요.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새로운 생두 샘플이 도착했습니다. 높은 만족도를 얻었던 아티틀란 티나밋과 부에나비스타 내추럴도 또 만날 수 있었죠. 이 두 커피는 블라인드 커핑에서 또다시 두각을 나타내어 높은 득표수로 각각 2022년 1월과 3월에 다시 소개되었습니다. 새롭게 수확한 생두였지만, 같은 커피를 같은 업체에서 또 선택한 순간이었습니다. (재미있게 읽고 있나요, 파라?)
블라인드 커핑으로 다시 만나게 된 두 과테말라 커피.©빈브라더스
📲 마케팅팀: 로사, 드립백에 담을 싱글 오리진을 추천해주세요. 매일 마셔도 질리지 않는 견과, 초콜릿, 캐러멜 계열이었으면 좋겠고요. 산미가 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선호도가 높은 원산지면 더 좋고요!
로사의 머릿속: (엉켜 있음)
2021년 12월 l 드립백용 구매
마케팅팀의 의뢰에 프리마베라에서 보내준 ‘라 콜리나 La Colina’ 커피가 떠올랐어요. 마케팅팀이 원하는 기준에 모두 잘 맞겠더라고요. 테스트를 거쳐 드립백으로도 프리마베라에서 받은 커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드립백처럼 1년 내내 운영해야 하는 커피는 신선도가 얼마나 오래 유지되는지가 가장 중요한데요. 라 콜리나를 2년 연속 구매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훌륭한 퀄리티와 더불어 품질 지속력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에요. 사용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뉴 크롭*과 비교해서 뒤지지 않는 뛰어난 향미와 단맛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기준으로 2년 연속 신선한 ‘라 콜리나’를 구매해 드립백으로 소개했어요.
*뉴 크롭: 수확 후 1년이 지나지 않은 햇콩(생두).
💭 로사의 머릿속: 좋은 원두를 구매하는 건 좋은데, 생두 가격이 이렇게 오르다니. 콜롬비아는 정말 많이 올랐네. 어떤 대안이 있을까?
2022년 10월 l 블랙수트용 구매
모든 생두 가격이 폭등한 2022년입니다. 콜롬비아의 대체재로 과테말라, 페루 등 중미 커피의 수요가 많이 늘었어요. 콜롬비아와 비슷하게 마일드한 커피가 생산되는 지역이거든요. 콜롬비아는 빈브라더스의 대표 블렌드인 ‘블랙수트’에도 25% 정도 들어가는데요. ‘산미가 튀지 않고 단맛이 좋은 편안함’을 담당하고 있어요. 저희 역시 콜롬비아를 대체할 다른 원산지를 열어놓고 검토하기 시작했어요. 다양한 곳에서 샘플을 받아본 결과, 프리마베라에서 과테말라 커피를 다이렉트로 구매하게 되었습니다.(올해 10월을 시작으로 내년 3월까지는 ‘프리마베라에서 수입한 과테말라’가 포함된 블랙수트를 맛보실 수 있어요.)
‘왜 세 번이나 프리마베라에서 구입했어요?’라는 파라의 질문으로 돌아가면, 싱글오리진은 세 번째이지만 드립백이나 블랙수트용까지 더하면 더 높은 빈도로 프리마베라와 거래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2022년 9-11월 l 세 번째 구매
매월 새롭게 소개되는 BB의 싱글 오리진 라인업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과일이나 꽃을 연상하는 화사한 커피 카테고리와 데일리로 마실 수 있는 고소하고 편안한 커피. 이 두 범주의 커피는 반드시 하나씩 소개해요. 2022년 가을의 데일리 카테고리는 프리마베라의 과테말라 커피가 채우게 되었습니다.
2022년 9월과 10월에 소개된 과테말라.©빈브라더스
거기에 올해 뉴 크롭 중 마지막으로 소개할 커피가 있습니다. ‘Tzun Witz’(전 윗츠)라는 농장의 커피인데요. 이 커피 또한 프리마베라에서 소개한, 품질 좋은 과테말라 커피입니다. 테이스팅 노트는 이 커피를 소개한 윤혜정 바리스타(포니)의 표현을 빌려볼게요.
11월의 과테말라 전 윗츠. 테이스팅 노트는 빈투바 초콜릿, 메이플 시럽, 피칸.©황요성Scene
커피를 마시면 처음에는 귀리나 보리 같은 곡류의 향이 느껴지고, 애프터에는 누룽지와 블랙티의 노트가 느껴집니다. 커피의 고소하고 달콤한 향이 산미와 잘 어우러져 가볍고 편안하게 마시기 좋습니다. 쌀쌀한 가을날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커피입니다. 업무를 마무리하는 오후 시간에 따뜻하게 드시면 좋으실 것 같아요.
- 11월 과테말라 원두 카드 중
이번 달 과테말라 전 윗츠는 이 레터와 함께 더 인상적으로 즐기실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긴장하기 쉬운 요즘, 마음을 이완시켜 줄 소중한 커피가 되었으면 합니다.
나가며
이렇게 3년이라는 긴 시간을 통과하여 이달의 과테말라 소개에 도착했네요. 지금까지 여러 수입/수출업체 파트너와 일해왔는데요. 지속해서 협업하게 되는 곳의 특징은, 몇 년 동안 사고나 실수가 없었다는 점이에요. 아무 사고가 없다는 것은 수많은 과정 — 생두 프로세싱, 보관, 포장, 운송, 수출입 등 — 을 모두 훌륭하게 관리한다는 의미입니다. 여러 종류의 사고를 경험해 보았기에, 이런 매끄러움이 더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프리마베라에서 구매를 이어온 이유는,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데서 드러나는 프로페셔널리즘 때문인 듯해요.
오늘 레터는 어떻게 읽으셨나요? 반복되는, 그래서 때로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루틴을 성실히 해내며 우리의 일상을 빛내고 계실 독자분들께도 진심으로 멋지다는 인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로스팅을 기다리고 있는 프리마베라의 신선한 과테말라 생두.©김선민Ke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