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자님,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로스터리 리드 소이입니다.
오랜만에 제가 등장한 이유는, 생두 소싱 코디네이터 로사를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기 위해서예요. 대만 국적의 로사가 로스터리 팀에 합류한 건 2년 전 여름입니다. 지금은 커피 생두 구매를 총괄하며 빈브라더스의 라인업을 책임지고 있죠.
생두 소싱이라는 흥미로운 분야, 외국인으로서 한국 로스터리에 근무한다는 경험. 로사의 이야기가 BB레터를 더 풍성하게 해줄 것 같지 않으신가요? 앞으로 로사와 종종 영어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로사의 커피 히스토리를 여러분께 전달해드리려고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로사의 커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로사, 여기 잠시만 봐 주세요!” ©박은실Momo
로사, 먼저 업무 루틴이 궁금해요. 어떤 일들을 하나요? 그중 커핑의 비중은요?
크게 세 영역이에요. 비중이 큰 것부터 생각해보면,
- 파트너와의 커뮤니케이션(이메일과 메신저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요)
- 수요 예측과 재고 관리(feat.BB에서 일하면서 단짝이 된 구글 시트)
- 커핑과 QC(Quality Control, 품질관리).
처음 소싱 업무를 생각했을 때 떠오른 이미지는 커핑과 QC였는데 실제로 커핑하는 시간은 한 주에 하루를 넘지 않아요. 보통은 일주일의 10% 정도인 것 같아요.
로사의 첫 커핑
로스터리 팀에 합류하기 전에도 커핑 많이 해보셨어요?
아니요. 출근 첫날이 저의 첫 커핑이었어요.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코피넷(Cofinet)이라는 회사에서 받은 콜롬비아 커피 샘플이었는데 그때는 모든 커핑이 다 그렇게 재미있는 줄 알았어요. 어떤 커피가 어떤 향인지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은 잘 몰랐지만 각 컵의 개성이 다 달라서 너무 재미있었어요. ‘앞으로도 이렇게 하면 되겠네? 안 어려운데?’라고 생각했죠.
와... 저는 전혀 아니었는데. 감각을 타고났나 봐요.
그 생각은 바로 다음 커핑에서 와르르 무너졌어요. 고소한 블렌드를 새로 만드는 프로젝트가 시작되던 참이었어요. 후보인 브라질 커피들을 모아놓고 커핑하는데 두 번째 컵, 세 번째 컵을 지나면서 점점 물음표가 많아졌어요. 그제야 지난번 커핑은 운이 좋았던 거구나 싶었죠. 하나는 테이블에 오른 커피들이 다 비슷비슷해서였고요. 두 번째로는 ‘고소’하다는 게 뭔지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에요.
커핑 중인 로사. 귀여운 웃음기가 사라지고 집중이 시작되는 순간. ©박은실Momo
‘고소하다’가 어려웠다고요?
‘고소’는 영어에도, 중국어에도 없는 표현이에요. 누구는 ‘참기름’이라고 하고, 누구는 ‘누룽지’라고 하고, 누구는 구운 견과의 향이라고 했어요. 그 셋 모두 다른데 말이에요. 심지어 이 커피는 ‘고소’고, 저 커피는 ‘구수’하다는 얘기를 나눌 때는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이었죠. 사실 지금도 그 둘의 차이는 잘 모르겠어요.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노트가 누룽지스러움이라는 얘기가 나왔어요. 최종 커핑 날 아침, 누룽지의 느낌을 기억하기 위해서 아침으로 먹던 시리얼 대신 누룽지를 끓여 먹었죠. 커핑에는 정말 도움이 되었지만, 사람들은 아침으로 그렇게 뜨거운 걸 어떻게 먹는지 신기했어요. ‘문화적 배경에 따라 같은 커피의 향미도 다르게 표현하게 되겠구나’라고 가장 선명하게 느꼈던 기억이에요.
로사는 어떤 방식으로 커핑하세요?
혼란이 가득했었던 두 번째 커핑 날, 케이브가 오더니 제 머릿속의 엉킨 실타래가 보인다는 듯 말했어요.
한 모금 마시고 커피의 모든 면을 한꺼번에 평가하는 게 아니에요. 한 커피를 여러 번에 나눠 마시면서 한 번 마실 때 한 가지 요소씩 차례로(step by step) 평가하면 돼요. 이를테면, 향-맛-촉감 순서로요.
그 말이 도움이 되더라고요. 이 순서대로 커핑 방법을 소개해 볼게요.
커핑의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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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 (아로마/플레이버)
- 처음에는 넓은 카테고리만 생각해요. 견과 계열인지, 과일 계열인지. 그다음에는 과일이라면 어떤 과일인지. 시트러스 계열? 건과일? 핵과류? 베리류? 하는 식으로 좁혀가는 거죠.
- 일반적으로 칼리브레이션(최대한 유사한 평가를 내리기 위한 조정 과정)을 자주 하는 팀원들끼리는 향의 큰 분류에서 의견 차이가 거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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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미와 단맛
- 산미를 느낄 때는 헷갈리기 쉬워요. 향과 맛을 분리해 생각하려고 노력하는데요. 향이 산미의 강도를 느끼는 데 영향을 주거든요. 예를 들어서 시트러스 계열의 향이 느껴지면 산미가 더 강하다고 느껴지는 식이에요. 그래서 자몽이 생각나는 커피라면 다시 맛보면서 잘 느껴 봐요. 자몽 같은 향이 나는지, 산미가 자몽 정도로 느껴지는 건지.
- 단맛의 강도는 산미에 비해 향과 구별해서 느끼기 쉬운 편이에요.
- 지금 함께 커핑하는 QA 팀과 합을 맞춘 지 1년 반이 넘었는데요. 팀원마다 편차가 가장 큰 영역이 맛(산미/단맛)의 강도예요. 누군가는 편안한 산미가 누군가에게는 찌르는 것처럼 날카롭게 느껴지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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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디
- 저에게 가장 어려운 영역이에요. 말로 표현하기가 가장 까다롭기도 하고요. 네 가지 요소 중에 팀끼리 동기화하는 데 가장 시간이 오래 걸렸던 영역이에요. 같이 여러 커피를 맛보면서 이 정도를 ‘5점짜리 바디(full-body)라고 하자’, ‘이 정도를 2점짜리 바디(tea-like)라고 하자’하는 식으로요. 절대적인 2점과 5점은 평가하기도 설명하기도 어려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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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쓴맛 그리고 마우스필
- 쓴맛은 가루약을 먹을 때처럼 혀에서 ‘씁쓸한 맛’의 강도에 주는 점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제가 평가할 때를 떠올리면 삼킬 때 목구멍 안쪽에 느껴지는 불편한 느낌이 더 가까운 표현일 것 같아요.
- 커핑 초반에는 목 넘김에서 느껴지는 촉감을 평가하려고 모든 커피를 다 삼켰다가 밤잠을 못 자거나 속 쓰려 하기도 했어요. 이제는 대부분을 뱉지만, 여전히 쓴맛을 평가하기 위해 일부는 삼키면서 확인해요.
- 마우스필도 가끔 팀원들 의견이 갈리는데요. 4명 중 반은 거칠다, 반은 괜찮다고 느낀다면 다음 날 감각을 새로 고침하고 다시 확인한 뒤 최종 평가를 내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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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외: 로스팅
커핑 테이블에 오르는 커피들은 일관되게 로스팅하려고 하지만, 사람이 수동으로 하는 거라 로스팅 강도가 약간씩 달라요. 블라인드 커핑이라 맛볼 때는 어떤 커피가 어느 강도로 로스팅된 줄 모르지만, 마지막에 함께 정보를 확인하면서 팀원들의 평가가 로스팅 강도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면 한 번 더 로스팅해서 다시 커핑하기도 해요.
QA팀과 테이스팅 중인 (우측)소이, 로사. ©박은실Momo
2년 전과 지금, 가장 큰 변화
커핑 시작하던 2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커핑할 때 어떤 점이 제일 다른가요?
지금은 커핑이 즐기는 대상은 아니에요. 제가 마음에 드는 커피이기 때문에 구매 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니까요. 그러다 보니 쉬는 날 카페에 가도 ‘이 커피가 좋아’가 아니라 ‘단맛이 어떻네, 산미는 어떻고, 어떤 노트가 어떤 강도로 느껴지네’처럼 속성별로 커피를 읽게 돼요.
로사는 개인적으로 어떤 커피 좋아해요?
이제 그 질문에 대답을 못 하겠어요. BB에서 일하기 전을 생각해보면 전형적인 에티오피아 워시드 커피나 게이샤 커피를 좋아했어요. 어쩌면 아직 이 일을 한 지 몇 년 안 돼서 업무 모드와 개인 모드 전환이 잘 안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로사와 소이. 생두 구매 결정을 위한 3차 커핑 중. ©박은실Momo
감각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 것
아까 로사가 커핑할 때 한 번에 하나씩 평가한다고 하긴 했지만, 어쨌든 지금은 엄청 빠르게 몇 가지 키워드로 커피를 읽잖아요. 이렇게 되기까지 어떤 경험들이 가장 도움이 됐는지 궁금해요.
그냥 계속 커핑하는 거죠. 여러 나라에서 온 여러 품종, 여러 프로세스의 커피를 계속 맛보면서 어떤 게 일반적인 범위인지, 어떤 게 튀는 건지에 대한 감각을 익힌 거지 왕도는 없는 것 같아요. 그중 특히 기억나는 것들을 정리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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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 훈련 (Seonsory Training)
- 첫 6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했던 훈련이에요. 르네 뒤 카페(Le Nez du Cafe) 아로마 키트로 시작했어요. 아침이나 점심시간 전후에 모여서 퀴즈를 내고 점수도 트래킹했어요. 긴장감이 대단했죠. 한 번에 비슷한 계열 4-5개씩을 평가하고 맞추는 방식이었는데 각자 익숙하지 않은 영역을 보강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 그 후, 여전히 둔탁하다고 느껴지는 것들은 실제 식재료를 구해와서 같이 맛보기도 했어요. 견과류 세션에서는 아몬드, 호두, 피칸, 피스타치오, 마카다미아, 땅콩 등을 사 와서 생으로도 맛보고 구워서도 맛보고요. 한국에서만 언급되는 노트인 ‘조청’이나, 한국 요리에 잘 사용되지 않는 ‘팔각’, ‘넛맥’ 같은 향신료의 향을 경험해 보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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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CoE 커핑
- 각 원산지에서 지금 가장 핫한 품종과 프로세스의 정수를 집중적으로 커핑한 감사한 기회였어요. 전문가들이 까다로운 기준으로 엄선한 기본기가 탄탄한 커피인 건 물론이고요. 팀에서도 경험이 쌓이면서 블라인드 커핑으로 품종과 프로세스를 맞춰보는 재미도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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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 커핑 (Virtual Cupping)
- 작년에는 유명한 그린빈 바이어 라이언 브라운(Ryan Brown)과 로스터 스캇 라오(Scott Rao)가 런칭했던 팩시밀리(Facsimile)라는 서비스로 무척 즐거웠어요. 같은 커피를 원격으로 맛보고 다른 전문가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 경험해볼 수 있었거든요. 우리 팀의 평가와 어떻게 비슷하고 다른지 느껴보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 한 가지 느낀 건, 특히 다국적 참석자가 함께하는 커핑 자리에서라면 어디에서나 두루 쓰이는 테이스팅 노트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나라에서는 서로 명확하게 통용되지만, 특정 나라에서만 판매되는 사탕이라면 다른 나라 사람들은 공감하기 어렵겠죠. 한국의 조청 노트도 마찬가지일 수 있겠죠?
어떤 커핑이든, 같은 집중력으로. ©박은실Momo
마치며
이제는 커핑을 낭만으로 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일주일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로사. 커피를 일로 하든 취미로 즐기든 커피에 진심인 분들에게 이 영역은 분명 특별한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다를 것 없어 보이는 검은 음료가 각자의 경험과 스파크를 빚어내는 순간이자, 지극히 개인적인 후각과 미각의 영역이 연결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순간이니까요. 로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여러분의 기억에 남아있을 커핑이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