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굳이 동남아에 가지 않아도 현지의 날씨를 체험할 수 있는 요즘이네요. 부디 나름의 방법으로 이 열기와 습기에 잘 대처하고 계시길 바랍니다.
들어가면서
저는 얼마 전에 말레이시아와 태국에 다녀왔어요. 5월에는 쿠알라룸푸르를, 7월에는 방콕에 다녀왔지요. 두 여행의 목적은 달랐습니다. 쿠알라룸푸르는 지난 4년간 팬데믹으로 가지 못한 빈브라더스 말레이시아 법인에 다녀온 것이었고, 방콕은 그린빈 바이어 로사의 태국 컵 오브 엑셀런스(Cup of Excellence) 심사에 붙여 다녀온 것이었어요.
태국 컵 오브 엑셀런스 심사위원 소개 ⓒRosa Hung
귀국 후에 여행을 되돌아보면서, 두 나라를 커피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커피 산지와 시장의 관점에서요. 둘 다 전세계에서 드물게 자국에서 생산된 커피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법 다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동남아의 커피’라는 주제로 레터에서 한번 다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동남아의 커피’라는 주제를 다루려면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순서이긴 합니다.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한 커피 산지들이니까요. 나중에 실제로 두 나라를 방문하게 되면 그때 후속편을 써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오늘은 말레이시아와 태국의 커피 이야기를 먼저 들려 드릴게요.
커피 산지: 태국 & 말레이시아
태국과 말레이시아 커피를 드셔본 적 있으세요? 한국에서 쭉 살아오셨다면 경험이 없으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만큼 태국과 말레이시아는 전세계 커피 시장에서 존재감이 미미한 편입니다. 연 생산량을 보면 태국이 약 만 8천 톤, 말레이시아가 약 4천 톤으로, 대표적인 산지인 브라질(약 317만 톤)이나 베트남(약 195만 톤)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짐작이 가시죠. (모두 2022년 기준)
2022년 커피 생산량 순위 ⓒ위키피디아
구체적으로 어떤 커피를 생산하고 있는지 뜯어보면 흥미로운 사실들이 나옵니다. 정확한 통계를 찾기는 어려웠지만, 태국과 말레이시아 모두 생산량의 절반 이상이 로부스타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스턴트 커피의 재료로 수출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태국의 경우 로부스타를 제외하면 대부분 아라비카를 생산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말레이시아는 독특하게도 아라비카 외에 리베리카라는 희소한 종류의 커피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아라비카, 로부스타, 리베리카 비교 ⓒSurma S, Oparil S. Coffee and Arterial Hypertension.
이야기 나온 김에 풀어보자면, 리베리카는 단맛이 좋고 독특한 풍미를 가진 커피입니다. 예전에 한국에 한번 소개하고 싶어서 말레이시아 팀 통해 샘플을 구해본 적이 있었는데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커피 업계 종사자를 위한 경험으로는 충분히 흥미로웠지만, 일반 고객들에게 선보이기에는 아쉬운 품질이었습니다. 이번에 쿠알라룸푸르의 한 카페에서도 우연히 리베리카를 맛볼 수 있었는데요. 적은 표본이긴 하지만 제가 리베리카에 받은 인상을 말하자면 단맛의 강도가 일반 커피에 비해 유의미하게 강하다는 점일 것 같습니다.
스페셜티 커피 업계의 관심은 아마도 이 두 나라에서 재배하는 아라비카의 품질일 것입니다. 저는 이 영역에서는 태국이 말레이시아보다 한 발 앞서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부의 치앙라이와 치앙마이가 태국 아라비카의 주요 산지인데요. 게이샤 같은 비싼 품종에 집중하는 대신, 카티모르처럼 생산성 좋은 품종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가공 기술을 발전시켜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이번에 방콕에서 마신 태국 커피들이나, 로사가 따로 태국에서 가져온 커피들을 맛보았을 때도 향미의 복합성 측면에선 아쉽지만 가공기술 차원에선 꽤 괜찮은 수준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태국의 커피산지 ⓒHelena Coffee
말레이시아의 아라비카는 제가 아직 (인식하고) 마셔본 경험이 없어서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어디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을까요? 태국의 스페셜티 커피도 초기 단계에 가깝지만, 말레이시아에서 생산된 아라비카 커피는 아직 단계를 논의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나 규모는 아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정해봅니다.
커피 시장: 태국 & 말레이시아
방콕과 쿠알라룸푸르는 국제화된 도시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커피 시장 관점으로 바라보면 몇 가지 차이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일단 방콕의 인구가 천백만 정도로 쿠알라룸푸르(약 180만)보다 훨씬 많습니다. 도시의 면적도 인구의 차이와 유사하게 방콕이 쿠알라룸푸르의 6배 정도로 크고요.
방콕 수쿰빗 전경 ⓒDavid McKelvey
쿠알라룸푸르 페트로나스 타워 ⓒJames Kerwin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압도적인 도시 규모 차이에 비해 카페 숫자는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대략적인 추산은 방콕에 1,100여 개의 카페가 있고, 쿠알라룸푸르에 700여 개가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로 넓혀보면 태국에 약 8천 개, 말레이시아에 약 6천 개가 있다고 하고요. (여기까지 읽으셨으면 한국의 숫자가 궁금하시겠죠? 2023년 기준 한국에 9만 3천여 개의 카페가 있고, 서울에만 2만 5천여 개가 있다고 합니다.)
커피 시장의 성숙도로 보았을 때는 방콕과 쿠알라룸푸르 사이에 큰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카페에서 파는 메뉴에는 눈에 띄는 차이점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쿠알라룸푸르의 카페는 기본적으로 브런치 메뉴를 판매합니다. 호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되는 지점이죠. 그에 반해 방콕의 경우 음식을 판매하는 카페들도 상당수 있지만, 그 비율이 쿠알라룸푸르처럼 높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빈브라더스 말레이시아 2호점의 음식과 커피 ⓒLINC
호주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또 하나는 쿠알라룸푸르 카페씬의 높은 플랫화이트 주문 비율입니다. 한국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주문하는 비율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아요. 방콕의 카페도 라떼나 카푸치노 같은 밀크 베버리지의 비율이 꽤 높겠지만, 쿠알라룸푸르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하는 게 저의 체감이었습니다. (혹시 방콕 카페들의 대략적인 블랙/밀크 비중을 알고 계시다면 제보 부탁드려요!)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로스팅 정도입니다. 제가 방콕에서 다닌 카페들이 스페셜티를 하는 곳이라 유독 그랬을 가능성이 있지만, 평균적인 로스팅 정도가 상당히 라이트했습니다. 마치 예전 저희를 보는 것 같았어요(지금 빈브라더스 커피의 로스팅 정도는 라이트부터 다크까지 비교적 고르게 분포해있지요). 추정컨대, 아직 스페셜티 시장이 작아서 소수의 마니아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결국에는 더 다크한 방향으로 움직일 거라는 게 저의 예측인데 과연 맞을지 한번 지켜보겠습니다.
쿠알라룸푸르 카페들의 로스팅 정도도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만, 체감상 방콕보다는 더 다크한 방향으로 가 있는 느낌입니다. 플랫화이트를 많이 마시는 특성 때문일까요? 제가 이번 쿠알라룸푸르 여행에서 마신 필터 커피가 대부분 라이트 로스팅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에스프레소 블렌드의 경우 어느 정도 로스팅 정도를 가져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로스팅 스펙트럼. 왼쪽부터 생두, 라이트 로스팅, 미디엄 로스팅, 다크 로스팅 ⓒGiesen Coffee Roaster
나가면서
오늘 레터에서는 커피라는 키워드로 제가 바라본 태국과 말레이시아 이야기를 들려드렸는데요. 현지에서 열심히 들여다보고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저의 경험으로만 두 나라의 커피 씬을 이해하는 것은 아무래도 한정적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저희 법인이 있는 말레이시아 이야기는 꽤 자신감을 갖고 말씀드릴 수 있긴 하지만요.
직접 방문해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커피만을 위해 방문하기 애매하게 느껴지신다면, 음식을 포함한 식도락을 주제로 가셔도 충분히 좋은 시간이 되실 거예요. (식당 추천해 드립니다!)
혹시 방콕이나 쿠알라룸푸르의 카페에 다녀와보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어떤 경험을 하셨을지 궁금합니다. 편하게 의견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