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자님. 에디터 모모입니다.
독자님은 몇 월생이신가요? 저는 생일이 있는 달이 되면 왠지 모를 설렘을 느끼는데요. 요즘 팀 안에서도 비슷한 설렘의 기운이 감돕니다. 3월 21일이 BB의 10번째 생일이었거든요. 10주년의 레터, 누구에게 마이크를 드려볼까 고민하다가 이 두 분을 떠올렸습니다. 10+a년 장기 근속자, 빈브라더스의 고인물, 최전방의 리더이자 창립자인 박성호 대표(이하 루이), 성훈식 브랜드 디렉터(이하 디디)를 소개할게요.
합정점에서 만난 루이와 디디.©박은실Momo
들어가며
루이, 디디 안녕하세요.
루이 | 어, 모모 일찍 왔네요! 오늘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어젯밤부터 고민되더라고.
디디 | (통화 중)
평소에 하던 대로 하시면 될 거 같아요. 요즘 두 분은 어떤 일 하세요? 두 분 다 워낙 바쁘시겠지만, 특히 힘을 쏟고 있는 덩어리랄까.
디디 | 아, 모모 미안해요. 안 그래도 상수 프로젝트 때문에 통화했네요. 올 하반기, 마포구 상수동에 BB의 새로운 공간이 생기는데요. 건물이 올라가면서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되었어요. 신경 쓸 게 많네요. ‘안 해 본 것을 하는 것’과 ‘하던 것을 더 잘하는 것’, 둘 다 잘해야 하는 상황이라 시간을 많이 쏟아요.
루이 | 정말 여러 덩어리가 있죠. 지금은 바리스타팀에 집중하고 있어요. 올해 상수 오픈처럼 팀이 더 성장하게 될 마일스톤(프로젝트 과정의 중요한 분기점)들이 있는데요. 그걸 잘하려면 바리스타팀이 가장 탁월해야 해서 에너지를 많이 쓰고 있어요. 10주년을 맞아 매장을 하나 더 내는 차원이 아니라, 커피 회사로서 새로운 면모를 보여줘야 하는 프로젝트여야 할 것 같아서요. 상수는 BB의 앞으로의 10년을 내다보는 비중 있는 프로젝트이기도 하고요.
공사가 한창인 상수.©Thila
인터뷰에 앞서, 두 분을 모르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서로를 소개해 주시면 어떨까요?
루이 | 저희가 하는 일은 남들과 비슷하게 더 잘하는 게 아닌, 선도하고 새로운 걸 추구하는 영역일 때가 많은데요.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과 깊게 파고드는 능력이 중요해요. 디디가 그 역할을 하죠. ‘앞으로 이런 게 뜰 것 같아’라는 게 잘 맞아서 디디와 다른 분야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곤 해요.
디디 | 저는 주로 사업의 새로운 영역을 맡는 편이고, 루이는 얼개가 형성되면 형태를 잡아가며 섬세하고 단단하게 다듬어요. 루이를 만난 지 18년 정도 되었는데, ‘루이는 어떤 사람인가’ 생각할 일이 별로 없었네요.(웃음)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어요. 루이가 그릇이 커서 저를 잘 받아준 것도 있죠. 저희는 정기미팅보다 수시로 전화하거나 만나는데, 형식적이란 느낌이 전혀 없어요. 늘 연결돼 있어서 그 결정을 같이하는 것 같아요.
합정에서 자주 포착되는 두 사람. 데릭과 회의 중인 디디, 화상 회의 중인 루이.©️박은실Momo
루이 | 나는 이 연결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 상호작용으로 1년, 5년, 10년이 지나며 관계가 발전하거든요. 인사이트는 언제나 모호한 것이라, 디디가 처음 던지는 개념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는데요. 디디에게 새로운 게 있다고 확신하고, 일단 시작해요. '나는 공감하고 진행하는 역할이다’라고 사고방식을 바꿨어요. 그 이상은 제 판단의 영역이 아닌 거죠. 창업자로서 디디의 생각이 계속 뿜어져 나와야 하는데 저의 판단으로 그게 막힌다면 팀에 역효과니까요.
디디 | 서로 생각하는 방식을 이해하게 되니 새로운 아이디어도 생뚱맞은 방향으로 벗어날 일이 없어요. 생각이 다른 건, 브랜드와 퍼포먼스 사이 균형의 차이이지 만날 수 없는 대립은 아니에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사업 전체의 밸런스를 보면서 적절한 시기나 무게에 관해 자주 토론하죠.
1. 창업 그 후
오늘 인터뷰는 빈브라더스 팀 전체에게 받은 질문을 녹여보려고 해요. 그 전에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것 먼저 여쭤볼게요. 왜 매체에 자주 등장하지 않으세요? 대표가 여기저기 출연하며 유명해지는 곳들도 많잖아요.
디디 | 축구클럽 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예를 들어볼게요. 맨유가 잘 알려지는 것과 맨유 대표가 잘 알려지는 건 다르죠. 선수들이 클럽의 후광 덕분에 잘 알려지는 것이 중요하고요. 맨유가 대표보다 더 드러나야 선수들도 구단도 오래 가요. (아, 저는 굳이 EPL에서 고르자면 아스날 팬이라고 적어주세요.) 개인이 팀의 인지도를 견인하는 건 주목이 필요한 창업 초기 단계에서는 좋을 수 있지만, 어떤 시점부터는 해온 일로 알려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경영으로 평가받아야겠죠.
루이 | BB의 지향점은, 팀원들이 각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다방면으로 등장하는 거예요. 지난해 유튜브 채널 ‘안스타’에 등장한 우리 팀의 모습이 상징적인데요. B2B팀의 어스, 바리스타 아도이와 준, 로스터 케이브, 연구원 데릭 등 커피 전문가로서 다양한 팀원들이 BB를 대표하여 출연했어요. 언론 매체 등에 대표나 창업자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더 갖추어야 할 점들이 많아요. 물론 저희의 성향도 반영되긴 하죠.
디디 | 수많은 성격의 리더십이 존재하는데, 쇼맨십 있는 외향적인 리더십이 당연히 더 알려지니, 리더는 외향적이어야 한다고 편견을 갖기 쉬운 것 같아요. 정작 훌륭한 성과를 내는 회사의 리더십을 살펴보면 리더가 내향인지 외향인지는 큰 상관이 없죠. 저희와 맞는 자연스러운 옷을 입고 싶어요.
2013년의 디디, 루이. 오른쪽은 당시 수석 바리스타, 현 로스터 패트릭.©venturesquare
두 분은 창업 동아리에서 처음 만나셨죠. 학습하는 차원으로 강남에 카페를 내셨고, 좋은 원두가 없어 원두 사업을 시작하셨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공동 창업 후, CEO와 브랜드 디렉터로 역할은 어떻게 나누셨어요?
디디 | 처음에는 나누는 게 큰 의미 없었어요. 초기 멤버들이 모두 올인해서 열심히 하던 단계였죠. 컵을 채울 때 누구는 돌로 가득 채우고 누구는 자갈, 다음엔 누가 물로 채우고 하면서 비로소 가득 채울 수 있다는 말을 나눈 적이 있어요. 사업도 초기엔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직무를 칼같이 나눠도 빈 곳은 생기거든요. 모두가 한 컵을 채우려고 해야 꽉 채워지던 시기였어요.
루이 | 다 같이 미친 듯이 비슷한 레벨로 일해야죠. 안 그러면 삐져.(웃음) 처음부터 일을 나누면 분업일 뿐, 팀이 아니죠.
디디 | 사업이 성장하면서 자연스레 직무가 나뉘는 시기가 오더라고요. 토너먼트와 리그의 차이를 자주 예로 드는데요. 사업 초기는 토너먼트 경기예요. 이번 경기에서 이기거나 집에 가거나 둘 중 하나죠. 한 경기, 한 경기를 죽을 각오로 뛰어야 해요. 리그의 단계로 접어들면 양상이 바뀌는데요. 한 해 동안 뛰어야 할 많은 경기가 있는 거죠. 어디에 집중하고 어느 경기에서 힘을 뺄지 긴 호흡의 전략이 필요해져요.
토너먼트 경기 뛰던 시기. 10년 전, BB의 첫 카페쇼.©빈브라더스
그럼 어느 정도 규모가 되었을 때, 루이가 대표를 맡겠다고 손을 드신 건가요?
루이 | 저는 분명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디디 | 아무도 안 하려고 해서, 아무래도 동방예의지국이니 연장자를…(웃음) 창업 멤버 중 소위 ‘관종’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것 같아요. 나중엔 바리스타 출신이 대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팀 안에서 바리스타부터 성장해 다양한 커리어와 경험을 쌓은 사람이 자연스럽게요.
‘BB는 카페가 기업이 된 좋은 케이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처음부터 기업을 생각한 카페였네요.
디디 | 건축을 예로 들면, 짓기 전에 땅을 파잖아요. 이층집을 지을 때 그 정도의 터를 팠으면, 이후 한두 층 이상으로 더 올리는 건 무리죠. 고층 빌딩을 지으려면 거기에 맞는 기초가 필요해요. 저희는 그 기초를 그래도 깊게 파지 않았나 싶어요. 가끔은 아직 기초공사 중인 것 같긴 하지만.(웃음)
어디까지 파셨나요?
디디 | 창업 초기엔 5년 정도 계획을 세웠어요. ‘비전 2015’ 이러면서. 어느 시점에서 더 깊게 파기도 했고요.
루이 | 말로는 천하를 호령했지. “저는 대통령이 될래요!” 이런 느낌.
디디 | 아직 공유되어 있을 텐데. 검색하면 바로 나올걸요.(검색) 이거 보세요. 예상하는 최종 그림(end image)을 팀 다 같이 적었어요. 목적지에 대한 같은 상을 가능한 한 높은 해상도로 공유한 게 유용했어요. 시점은 다를 수 있겠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맞춰져 있으니까요. 다투더라도 방향보다는 방법의 차이인 거니까.
카페 매장 두세 개는 개인의 역량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기업은 좋은 제품부터 좋은 조직, 좋은 공간, 좋은 고객 경험까지 모든 걸 평균 이상으로 해내야 잘하는 거겠죠. 어떤 건 압도적으로 잘해야 하고요. 그래서 저희는 팀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요. 개인 취향을 기반으로 카페를 여는 업과 저희가 하는 일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하고 싶은 건 업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리더십을 바탕으로 시장을 선도하는 거예요.
구글 드라이브에서 검색된 ‘VISION 2015’.©박은실Momo
2. 빈브라더스라는 브랜드
빈브라더스가 10주년을 맞았습니다. 굵직한 성취를 꼽아볼 수 있을까요?
루이 | 10년을 아주 작은 그림으로 보고 있어서 지금까지가 하나의 성취예요. 돋보기로 들여다본다면, 빈브라더스의 탄생 배경인 온라인 커피 구독 사업이 있겠고요. 합정에 첫 오프라인 매장을 내고 로스팅을 시작한 순간도 있었고, 인천 로스터리를 오픈하면서 커피 회사로서의 자격을 갖춘 시점,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말레이시아에 지점을 내며 해외 사업에 진출한 것 정도 되겠네요.
디디 | 브랜드가 되었다는 게 가장 크죠.
2016년 문을 연 인천 로스터리.©빈브라더스 | 말레이시아 최초의 에스프레소바, 4호점.©️빈브라더스 |
지금의 빈브라더스는 어떤 브랜드라고 자평하시나요? 다른 브랜드와 다르게 이것만큼은 탁월하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을까요?
디디 | 커피 산업 내에서 비교할지, 리테일 사업 전반과 비교할지에 따라 다르긴 한데요. 커피 업계에서는 ‘가장 팀으로 일하는 브랜드’라고 생각해요. 고객은 브랜드를 순간의 사진처럼 경험하니 이렇다 저렇다 평가가 나뉠 수 있어요. 그러나 브랜드를 만드는 관점에서는 장기적이고 동적으로 봅니다. 긴 호흡으로 봤을 때, 지난 10년간 팀 전체의 역량은 굴곡을 그리며 우상향하고 있거든요. 순간의 브랜드 이미지는 자원을 써서 쉽게 올릴 수 있지만 팀의 역량은 그렇지 않아요.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요. 투입 대비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고요.
루이 | 아무리 잘하고 칭찬받아도 아직 점수는 낮은 것 같아요. 우리 팀의 탁월한 점이라면 기준이 높다는 것.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어서 노력의 정도가 큰 팀이라고 느껴요.
디디 | 스포츠에서 선수를 평가할 때 실링(ceiling)이란 말을 종종 써요. 천장이란 뜻인데요. 천장이 높다는 건 잠재력이 높음을 의미하죠.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실링이라는 기준이 없어서, 약간만 높아져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요. 애초에 상한선이 낮게 형성되면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기 쉽거든요.
커피와 함께한 인터뷰. 아침에는 플랫화이트를 마시는 같은 루틴.©박은실Momo
빈브라더스라는 브랜드를 만들며 가장 공들이시는 부분이 있을까요?
디디 | 역시 ‘팀’이에요. 팀 문화나 팀 교육 같은 것들이요. 커피를 다루는 직업군을 만들려는 노력도 해요. 흔히 ‘커피 일을 한다’라고 하면 바리스타나 로스터 혹은 점장이나 매니저 정도를 떠올리잖아요. 커피를 잘해도 커리어 측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직군의 종류나 양이 한정적이라고 느껴요. 회사가 성장한다는 건 지속 가능한 여러 자리를 많이,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거겠죠.
온라인 마케팅이나 B2B 사업 영역도 바리스타들이 많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BB를 들여다보면, 매장 말고도 바리스타 출신들이 일하는 포지션이 많아지고 있죠. B2B팀 자체도 그렇고, 합정점의 리드 바리스타였던 베로가 온라인 팀으로 자리를 옮긴 것도 그렇고요. 이 지점 또한 다른 회사보다 저희가 잘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팀에 에너지를 투입하면 바로 성과가 나오지는 않지만, 돈으로 만들 수 없는 결과를 얻죠. 좋은 공간, 좋은 디자인은 일정 자본만으로도 높은 수준까지 올릴 수 있는데 팀, 그러니까 조직문화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지난달, 온라인 커뮤니티 매니저 베로가 오피스 팀원들을 대상으로 자체 진행한 에스프레소 세션.©️박은실Momo
사람도 돈으로 데려올 수 있지 않을까요?
디디 | 그 가설이 옳다면 대기업에서 훌륭한 스페셜티 커피회사가 진작에 나왔겠죠(웃음). 정말 많은 자본이 들어와서 실력 있는 사람들을 고용하고 사업을 크게 해보려고 할 수도 있을 텐데요. 커피에 대한 핵심 가치를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규모가 조금만 커져도 개인이 역량을 발휘하기가 어려워진다고 봐요. 시스템으로 조직을 움직이기 때문이죠. 저희는 의사결정의 레이어가 세 단계를 넘어가지 않게 하려고 해요. 팀원-리드-대표 이렇게요. 개개인의 목소리와 실력이 앞단까지 잘 드러날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저희가 하는 업에서 중요한 개념이기도 하고요.
다시 또 구단 얘기를 하게 되는데요. 박지성이 뛰었던 맨유와 지금의 맨유는 선수가 하나도 겹치지 않지만, 맨유는 맨유죠. 선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팀 철학과 팀스피릿이 브랜드의 코어이기 때문이에요. 석유 재벌이 나타나서 좋은 선수들을 사 모으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면 철학이 사라지죠. 돈을 많이 투입해서 카피하더라도 못 따라올 무언가가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고, 롱런할 수 있다고 봐요. 저는 직업인으로서 우리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커피 커리어 관점에서 그 어느 곳보다 좋은 환경이라고 확신해요.
루이 | 그게 기업을 하는 이유인 것 같아요. 개인 사업이 아니라 팀 문화와 정신에 기반한 조직이 되는 것. 100년 후엔 우리가 아무도 없겠지만, 기업은 그대로 남을 수 있죠.
주간 커핑. 생두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로사, 데릭, 케이브.©️박은실Momo
로스터 케이브가 그러더라고요, 다른 사업을 하셨어도 잘하셨을 거 같다고요. 요즘 유망한 업종을 택하셨다면 더 잘 되지 않으셨을까요? 커피라는 아이템으로 시작하신 데 후회는 없는지 궁금해요.
디디 | 사업 시작할 때 투자 공부를 많이 했어요. 좋은 기업이란 무엇인가 스터디도 했죠. 여러 관점이 있겠지만, 사업의 관점에서 좋은 브랜드를 만든다는 건 수익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거예요. 트렌드에 민감한 산업은 너무 빨리 바뀌어서 큰 실패도 많고 성공할 확률도 낮아요. 10년 뒤에도 존재하는지, 어떤 결정이 5~10년 후에도 유효한 결정인지가 기준이에요. 커피는 건강에 문제가 없는 한 저도 노년까지 마시지 않을까요. 제가 이 세상에 없어도 사람들이 다 마실 거예요.
루이 | 우리가 수익이 더 많이 나면 케이브가 아마 다른 얘기를 하겠지.(웃음)
F&B 업계를 보면 짧은 시간에 브랜드를 키워서 매각하는 흐름이 보여요. 그런 생각은 안 하시나요?
디디 | 진짜 좋은 건 남한테 안 팔잖아요. 진짜 좋은 걸 만들면서 그 과정과 결과를 오래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일해요. 자본이 회사를 사면, 철학이나 문화가 바뀔 수밖에 없어요. 우리 팀은, 회사에 크고 작은 불만이 있을지언정 이 브랜드의 문화를 좋아해서 온 사람들인 것은 명백하거든요. 바꾸어 말하면, 그게 흔들리면 존재 이유가 없어지는 거죠. 동료나 정책은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주인이 달라지면 다 달라져요.
루이 | 비전을 잘 공유해서 브랜드나 회사를 저희보다 더 멀리 데려다 줄 파트너를 만난다면, 언젠가는 가능성도 있겠죠. 다만 커피 시장이 워낙 커서 아직 팔고 말고 논할 단계는 아니에요. 전체 시장을 보면 저희의 영역은 정말 작은 부분이어서 갈 길이 멀어요.
3. 10주년을 맞이하며
브랜드가 10주년을 맞는 것이 업계에서 흔한 일은 아닌데요. 부담이나 책임도 느끼시는지 궁금해요.
디디 | 저희 둘 다 그런 거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니긴 한데요. 산업 안에서 10년간 리더십 위치를 지향하다 보니 여러 시선은 느껴요. 거기에 걸맞은 액션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죠.
루이 | 리테일 분야에서 10년 이상 하는 곳이 많이 없다 보니, 유지했다는 자체가 꽤 고난도인 거더라고요. 지구력도 하나의 특별한 능력이라는 걸 깨달았죠. 또 오랜 기간 쌓아오면서 생기는 ‘업력’이 있어요. 우리 자신도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지만, 10년간 쌓인 업력은 1-2년 차에서는 획득하기 어려운 역량일 거예요. 그걸 뿜어낼 시기인 건 맞아요.
10년 동안 절대 타협하지 않은 게 있다면?
디디 | 많은 걸 타협해왔는데...(웃음)
루이 | 수많은 타협의 연속이었다.(웃음) 그래도 회사의 비전이나 꿈의 크기는 양보하지 않은 것 같아요.
디디 | 회사 일은 자아실현과 구분돼야 하기에 많이 조율하고 양보했다고 생각해요. 이제 익숙해져서 이후의 10년은 더 쉬울 거예요.
‘커피 퀄리티’라고 답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디디 | 먹을 걸 만드는 사람이 재료에 타협하지 않는 건 당연하죠. 매 시점에서 가능한 한 최고의 결정을 해왔어요. 후진 거 가져와서 고급스러운 척 파는 건 직업윤리 위배니까요. 식음료를 다루는 모든 사업자가 같은 생각일 거라고 생각해요. 방법과 지속성의 문제죠. 단순하게는 얼마나 좋은 재료를 좋은 가격으로 가져올 수 있는가, 그런 모델을 어떻게 중장기적으로 수립할 수 있는가 하는.
10주년, 특별한 듯 일상적인 합정점 풍경.©️박은실Momo
10주년을 맞은 두 창업자, 지금도 성장하고 있으신가요?
루이 | 어떤 분야에서 성장하고 있는지 질문을 받으면, 이젠 주제를 못 정하겠어요. ‘요즘 영어 공부해, 수학 공부해?’라고 묻는데, 영어로 쓴 수학 같기도 하고 수학을 가장한 과학 같기도 한 거죠. 전체 팀의 다음 스텝을 잘 정해야 할 요즘, 저에게 필요한 역량은 복합적인 사고예요. 팀 전체가 자원을 쏟아붓게 되는 결정이니 좋은 판단을 위해 의심하고 골똘히 생각하는 능력이 요구돼요. 규모가 작을 땐 잘못 선택해도 ‘다시 합시다!’가 쉽게 됐는데요. 이제는 뭘 결정해도 10이 아닌 100의 힘이 드니까 조심스럽죠. 잘못된 판단이 너무 큰 시행착오가 되고 긴 시간을 늦추기도 하거든요. 더 높은 시야에서 전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고 싶어요.
디디 | 여전히 모든 일이 도전이에요. 사업할 생각이 없었던 시기에 창업은 학습의 도구였어요. 창업 후에는 브랜딩, 디자인 등 필요한 부분을 계속 공부하면서 일해왔죠. 저는 제너럴리스트에 가까워서 다양한 분야를 두루 익히는 게 적성에 맞더라고요. 사업이 다양해지고 성장할수록 이 역량이 특화될 수 있다고 느껴요. 전에는 다양한 영역을 적당히 막아내면서 최선을 다해 싸웠다면, 지금은 해당 영역의 전문가들을 만나고 협업하는 역량을 가다듬고 있어요.
나가며
10주년 이후,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네요.
디디 | 휘황찬란한 미래를 이야기하는 건, 어릴 때는 잘했는데 지금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요. 비전은 비슷한데, 지금 시점의 자원과 역량을 바탕으로 최선의 결정을 해나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걸 잘하기 위해 하루하루 개인으로 또 팀으로 준비하고요. 커피를 오래 잘 할 수 있는 것에 부합하게요.
루이 | 투자 IR자료나 증권사 리포트처럼 장밋빛 미래를 그리거나 100% 신뢰하기 어려운 스토리텔링은 안 해요.
디디 | 사실 우리한테 필요한 역량인데(웃음).
루이 |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를 쓰고 싶어요. 당장 우리에게 있는 걸 진짜 잘 해내야죠.
마지막 질문입니다. 20주년엔 뭘 하실 거죠?
디디 | 저희가 기념일에 굉-장히 무딘 사람들이에요. 생일도 별 의미가 없고. 손가락이 열 개여서 십진법을 쓰게 되니까 10주년을 더 중요하게 느끼는 게 아닐까요?
루이 | 로스터리를 확장 이전하거나 말레이시아 사업을 더 성장시키거나 그런 건 있지만 숫자 계획은 2, 3년 정도 지나면 바뀌어요. 예측 불가능이죠.
디디 | 정성적인 상(象)은 있어요. 한국을 넘어서서 아시아에서 커피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가장 다니고 싶은 회사. 커피인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직업 선택지가 있는 회사가 되고 싶어요.
루이 | 모모가 알아서 담백하게 써줘요. 밥 먹으러 가자.(웃음)
디디와 루이의 가장 익숙한 모습.©박은실Momo
오늘 인터뷰 어떻게 읽으셨나요? 루이와 디디를 처음 만난 날, 빈브라더스라는 브랜드를 훨씬 선명하게 이해했던 기억이 나요. 루이에게서 능동적인 에너지를, 디디에게서 예리하고 정제된 시각을 볼 수 있었거든요. 오늘 레터가 독자님께도 빈브라더스를 이해하는 계기였길 바라게 됩니다. 매번 BB의 생일에는 팀과 고객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었는데요. 평소에 워낙 주목받지 않는 두 분이라, 오늘만은 루이와 디디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많은 분께 소중한 브랜드가 된 BB를 열심히 꾸려 온 고마움을 담아서요. 독자님도 피드백 버튼으로 응원의 한 마디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