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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초콜릿의 발견
페루 커피 & 초콜릿 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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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데릭입니다.


어떤 대상을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순간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벨벳화이트를 처음 마셨던 순간이라든가, 혼자 집에서 히비키 위스키를 언더락으로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했던 순간이 그러합니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그 기억들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계속 되새기기 때문이겠죠.


최근에 페루 초콜릿을 통해 또 한 번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페루 커피의 발견>이란 레터에서 다룬 적 있지만, 저희는 페루 커피에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2023년 10월에 로사가 페루 컵 오브 엑셀런스(COE)에 심사위원으로 다녀온 것도 좋은 페루 커피를 찾기 위함이었죠.


그때 예상치 못하게 페루 커피와 함께 발견한 것이 바로 초콜릿입니다. 수도 리마에 위치한 시클로스 카페(CICLOS CAFE)에 들른 로사는 여기서 커피와 초콜릿 페어링 코스를 경험하게 되는데요. 페어링 코스 자체도 흥미로운 경험이었지만, 로사는 이 초콜릿들을 한국에 있는 팀에게 꼭 맛보여줘야겠다 생각합니다. 로스터리에서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페루 여러 지역의 초콜릿을 설명하던 로사의 모습은 지금 봐도 인상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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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초콜릿을 설명하는 로사. ©김민수Derek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초콜릿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는 마음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누가 주면 맛있게 먹지만, (많은 초콜릿들이 갖고 있는) 과한 단맛과 그 뒤에 숨은 쓴맛이 불편하여 제 의지로는 잘 찾지 않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날 로사의 테이스팅 세션을 통해 제가 모르던 초콜릿의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가지를 느꼈는데요. 하나는 초콜릿이 이렇게 '깔끔할 수 있다'는 것. 그전에 제가 경험한 초콜릿들은 먹고 난 뒤에 불편한 느낌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사가 맛보여준 페루 초콜릿은 전반적으로 쾌적(?)하더라고요. 다른 하나는 초콜릿 '향미의 다양성’이었습니다. 커피나 와인 같은 다른 기호식품처럼 초콜릿에도 이렇게 다채로운 향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우리만 하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저희가 초콜릿 회사는 아니지만, 식음을 다루는 회사로서 한번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반년 뒤인 2024년 4월 26일에 실제로 실행에 옮기게 됩니다. 로사가 리마에서 만났던 시클로스 카페팀을 빈브라더스 커피하우스로 초대하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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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와 아만다. ©Ciclos 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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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클로스 카페에서. ©Ciclos Cafe


페루 리마에 위치한 시클로스 카페는 재미있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클로스 카페는 기본적으로 페루 커피를 다루는 로스터리지만, 엘 카카오탈(EL CACAOTAL)이라는 초콜릿 숍과 한 공간에 위치하고 있어요. 시클로스 카페를 이끄는 것은 창업자 펠리페이고, 엘 카카오탈의 초콜릿 큐레이터는 아만다입니다. 이 두 사람의 파트너십에 의해 운영되는 커피와 초콜릿의 복합 공간(?)인 것이죠. 커피와 초콜릿 페어링 테이스팅 코스가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커피하우스에서 펠리페가 선보인 프로그램 또한 페루 커피와 초콜릿 모두를 맛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페루 북부와 중부, 남부에서 온 커피 3종과 서로 다른 브랜드의 초콜릿 5종을 테이스팅했습니다. 아쉽게도 이번 한국 여행에 초콜릿 큐레이터 아만다가 오지 못하였는데요.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아만다가 특별히 녹화한 영상을 함께 보면서 초콜릿에 대한 아만다의 철학과 테이스팅 방법론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오늘 레터에서는 이날 제가 아만다에게 배운 것을 간략하게 전달드려볼까 합니다. 제일 좋은 것은 역시 실제로 테이스팅해보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나중에 리마에서 직접 경험해보시는 것을 추천해 드리고요. 제가 인상 깊게 들었던 메시지들만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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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와 데릭. ©정아름Joy


페루 초콜릿의 위상

카카오가 어느 지역에서 처음 나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아마존 우림 근처의 세 나라 페루와 콜롬비아, 에콰도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중에서도 페루가 카카오의 다양성에 기여하고 있는 정도가 꽤 크고요. 실제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초콜릿은 포라스테로(forastero)라는 품종이지만, 그 외 많은 카카오 품종들이 페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혹자는 전체 카카오의 60% 정도가 페루 태생의 품종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남북으로 길쭉한 페루는 다양한 미시기후(microclimate)를 갖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같은 품종의 카카오라고 해도 어느 지역에서 재배되었느냐에 따라 다른 특성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 기후적인 특성은 사실 카카오뿐만 아니라 커피를 비롯한 다양한 농산물에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다양한 품종과 미시기후 덕분에 페루의 초콜릿은 그 어떤 카카오 산지보다도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페루 초콜릿만 파도 그 안에서 넓은 세계를 만날 수가 있다는 것이죠. 저의 과장일지 모르겠지만 커피에 에티오피아가 있다면 초콜릿에는 페루가 있는 느낌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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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에서 날아온 흔적. ©정아름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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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팅한 다섯 가지 초콜릿. ©정아름Joy


나무에서 바까지 Tree to Bar 

초콜릿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빈투바(bean to bar)라는 말이 익숙하실 거예요. 카카오 빈의 가공부터 초콜릿의 제조까지 동일한 생산자가 관여함으로써 품질 좋은 초콜릿을 생산하고 정보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개념인데요. 엘 카카오탈의 아만다는 여기서 더 나아가 결국에는 트리투바(tree to bar)여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카카오 농부가 초콜릿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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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Bar)로 나가길 기다리는 중. ©정아름Joy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농산물로서 카카오의 재배가 최종 결과물인 초콜릿의 품질에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인식이 들어가 있습니다. 또한 초콜릿 생산의 모든 가치사슬(value chain)에 농부가 관여함으로써 단계마다 발생하는 부가가치 또한 농부에게 돌아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기존에는 중간 유통업체들이 가져갔던 이익을요. 이를 통해 초콜릿 생산 농가의 삶을 지속가능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소비자 또한 높은 품질의 초콜릿을 즐기게 된다는 모델입니다. 스페셜티 커피 업계에서 이야기하는 다이렉트 트레이드와 비슷한 결을 갖고 있어요.


현재 엘 카카오탈에서 다루는 모든 초콜릿이 트리투바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최소한 빈투바의 모델은 지키고 있죠. 언젠가 더 많은 트리투바 초콜릿을 다루게 되는 날이 분명히 올 것이고, 그때가 오면 우리는 더 많은 농부들의 카카오 이야기를 듣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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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하는 펠리페. ©정아름Joy


초콜릿 테이스팅

기본적으로 기호식품의 테이스팅 방법론이 갖고 있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감각을 동원하여 판단하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초콜릿의 색깔을 보고, 냄새를 맡고, 맛을 느껴보는 과정은 커피나 차의 그것과 꽤 비슷합니다. 감각으로 느껴지는 것들을 분석하면서 품질을 평가하고 제조과정이 어떠했는지 추정해보는 것이죠.


다만 다른 기호 음료와 달리 초콜릿이 ‘고체’라서 가진 독특한 평가항목이 있습니다. 바로 초콜릿을 부러뜨릴 때 나는 소리인데요. 스냅(snap)이라고 합니다. 어떤 초콜릿은 둔탁한 소리가 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선명하게 쪼개지는 소리가 납니다. 또 어떤 초콜릿은 큰 소리 없이 조용히 부러지기도 하고요. 이것은 초콜릿의 카카오 함량, 템퍼링(tempering)이라는 제조과정, 두께와 관련이 있습니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카카오 함량이 높을수록 더 큰 소리가 나는 경향이 있고, 액상 초콜릿을 굳히는 템퍼링 과정이 잘 진행되어야 균일한 스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스냅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고, 스냅이 초콜릿 품질을 보여주는 지표로써 사용된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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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테이스팅. ©정아름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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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한 바리스타 벨. ©정아름Joy


초콜릿 평가 과정을 전반적으로 들여다본다면 이렇습니다. 먼저 초콜릿의 색과 광택이 어떤지 살펴봅니다. 그 후에 초콜릿을 귀에 가져가 부러뜨린 후 소리를 듣고, 바로 코에 가져가 냄새를 맡습니다. 이제 초콜릿을 입에 넣은 후 5회 이상 씹으며 느껴지는 맛과 녹는 속도를 확인합니다. 씹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턱을 움직이는 동작이 입안에 있는 향미 성분들을 입안과 목 뒤로 확산시켜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실제로 해보니 혼자 테이스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같이 듣는 게 꽤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느낀 것과 아만다의 생각을 비교해보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는데요. 생각해보니 커피나 차, 와인 모두 입문자일 때의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주는 코치의 존재가 중요한 것은 비슷한 것 같아요. 그 단계를 넘고 나면 그 후에는 자유롭게 그 세계를 탐험할 수 있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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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를 탐험하는 Bb팀. ©정아름Joy


오늘 레터는 펠리페의 이야기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빈브라더스 커피하우스에 와서 페루의 커피와 초콜릿을 열렬히 알리던 펠리페가 사실은 칠레 사람이었다는 점은 무척 재미있었지만, 더 인상 깊었던 것은 펠리페가 커피와 초콜릿에 대해 가진 시야와 관점이었습니다. 커피 이야기를 하는데 초콜릿과 와인을 연결짓고, 커피 리큐르를 만들 때 거기에 럼과 카카오 뮤실리지를 넣을 생각을 하는 것은 펠리페가 가진 독특한 정체성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표적인 와인 산지인 칠레 사람으로서 와인이 친숙한 펠리페가 이렇게 다른 카테고리의 제품들을 연결지어 생각하는 관점이 흥미로웠어요. 저도 커피 일을 오래 하면서 생각이 커피 안에 갇히는 경우가 있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이렇게 커피가 다른 기호식품과 연결되었을 때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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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가 가져온 리큐르. ©정아름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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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한 잔씩 맛보았습니다. ©정아름Joy

개인적으로 페루 초콜릿을 알게 되기 전과 후의 제 초콜릿 라이프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다음에 콜롬비아 출장을 가게 된다면 현지의 초콜릿 숍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될 것 같고요. 아프리카와 남미의 초콜릿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도 탐구해보고 싶습니다. 커피와 초콜릿은 여러모로 닮아있어서, 만약 커피를 좋아하신다면 초콜릿을 좋아하실 가능성도 꽤 높다고 생각합니다. 스페셜티 커피가 보여주는 다채로운 향미를 즐기신다면, 페루를 비롯한 다양한 오리진의 초콜릿을 즐겨보시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처럼 새로운 취미를 갖게 되실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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