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로스터리 김민수 연구원Derek입니다. 요즘 케냐 커피가 한창입니다. BB 뿐 아니라 어느 카페를 가도 케냐 커피를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시즌이에요. 그래서 오늘은 케냐 커피에 대해 수다를 좀 떨어보려고 합니다.
케냐가 어딨나 보자. 적도를 밟고 있다. 북쪽으로는 그 유명한 에티오피아.
케냐 커피 좋아하세요?
그런데 말이죠. 2019년 기준, 한국이 케냐 커피를 네 번째로 많이 수입하는 나라더라고요. 매년 조금씩 다른 모양인데, 케냐 커피 수출량의 8~9% 수준인 모양입니다. 엄청나지 않나요? 케냐에서 생산되는 커피생두가 많을 때는 10백bag 중에 1백이 한국에 온다는 이야기니까요.
우리나라는 케냐커피를 네 번째로 많이 수입하는 나라(출처. OCE)
참고로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브라질 커피의 경우 2019년 한국의 수입량이 1.55% 수준입니다. 물론 실제로 수입하는 양은 브라질 커피가 훨씬 많겠지만, 케냐 커피가 한국으로 수출되는 비율이 놀라웠어요. 케냐 커피를 찾는 한국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꽤 많은 모양이에요.
무언가를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게 마련입니다. 케냐 커피를 다른 산지의 커피보다 좋아하는 것은 케냐 커피의 **'케냐다움'**을 좋아하기 때문이겠죠. 여러분도 '케냐의 워시드 커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으실텐데요. 저는 종종 커핑할 때 테이스팅 노트를 '케냐'라고 적는 경우가 있어요. 솔직히 길게 적기 귀찮아서인 것도 있지만, 이 두 글자가 이미 많은 정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더 말해 뭐해, 이건 케냐인데' 같은 느낌이랄까요.
'케냐 커피는 왜 케냐다운가'라는 질문에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SL로 시작하는 품종의 기여도가 클 것이란 점에는 이견이 별로 없을 것 같아요. SL28과 SL34로 대표되는 케냐 품종들이 워시드Washed 가공되었을 때 느껴지는 공통된 향미가 있는 것 같아서요. 흑설탕/캐러멜 같은 달콤한 노트와 망고/리치/파인애플 같은 열대과일 그리고 빠질 수 없는 토마토. 모든 커피는 아니지만 간혹 섬세한 케냐 커피에서 느낄 수 있는 블랙커런트 같은 것들이요.
케냐커피에서 자주 등장하는 테이스팅 노트. 망고, 파인애플, 토마토, 흑설탕, 캐러멜.
케냐 가톰보아야와 세 번의 만남
올해 3월에 로스터리 커핑 테이블에 오른 케냐 커피가 바로 SL28과 SL34로 이루어진 케이스였습니다. 함께 커핑한 김선민 로스터(이하 케이브)와 로사는 열대과일의 향이 선명하고 클린컵도 좋은 커피라고 평가했지만, 저는 뭔가 강렬하긴 한데 노트가 잘 식별이 안 되고, '과연 사람들이 이걸 좋아할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 구매 의견을 내진 않았어요. 그런데 케이브가 이 커피에 대해 굉장히 좋은 평가를 내려서 좀 더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로스터리 커핑에 참여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케이브는 커핑 후 토론할 때 가볍게 의견을 내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로스터리의 커피를 리드하는 로스터이자 커퍼Cupper로서 최대한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의견을 내려고 노력하는 걸 느낄 수 있어요. 그런 케이브가 자신감을 보이는 커피라면 가는 게 맞겠죠. 기본적으로 커피에 대한 팀의 평가도 좋았으니까요. 그렇게 이 커피는 올해 여름에 출시하는 걸로 결정되었어요.
주간커핑, 품질관리(QA)팀. 왼쪽부터 김선민 로스터(케이브), 정혜진 바리스타(린다), 생두 코디네이터 로사, 댕댕이 보르도, 윤혜정 바리스타(포니), 김민수 연구원(데릭).
한 달이 지나 4월이 되었습니다. 로스터리에서는 팩시밀리라는 커피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데요. 팩시밀리에서 4월에 보내준 커피 중에 하나가 알고보니 위에 언급한 바로 그 케냐 커피인 거예요. 어떤 커피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커핑을 하고 토론을 했는데 이번에도 케이브의 열광적인 반응을 볼 수 있었어요. 팩시밀리 서비스를 운영하는 라이언Ryan Brown과 게스트 커퍼였던 개비Gabby도 좋은 평가를 주더라고요.
저는 여전히 '응, 이거 케냐 커피네' 정도의 느낌이었지만, 이 커피에 대한 케이브의 일관된 평가는 정말 놀랍고 든든하게 느껴졌어요. 우리가 이미 구매한 커피를 프로페셔널 커퍼인 라이언과 개비가 좋게 평가해주니 '그래도 우리가 커피를 잘 고르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도 들었고요. 비록 제 취향의 커피는 아니지만, 이게 좋은 품질의 커피라는 것을 인정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네 달의 시간이 흘러 7월이 되었습니다. 케이브, 로사와 함께 9월 커피에 대한 가이드 커핑*을 진행했는데 세 가지 커피 중에 하나가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그 케냐 커피였습니다. 니에리Nyeri 지역의 가톰보야Gatomboya 워싱 스테이션에서 생산된 이 케냐 커피의 배전도(Roasting Point)를 선정하고,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테이스팅 노트가 무엇일지 의논했어요.
📌 가이드 커핑 : 출시 예정인 커피가 어떤 향미를 갖고 있는지, 어떤 키워드로 소개할지 정하기 위한 커핑. 이날 팀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된 테이스팅 노트가 원두카드, 홈페이지, 원두 패키지에 적힌다.
여러 번 맛보다보면 새로운 취향이 생기기도 하죠.
취향의 발견
영어에 '획득된 취향'(acquired taste)이라는 말이 있는데,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획득되는 취향이란 뜻입니다. 아마 저에게 케냐 커피가 그런 게 아니었나 싶어요. 작년 옥션시리즈 티에라에 대해서 미카바 농장의 폴이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열린 마음과 열린 미각으로 자신의 커피를 마셔주기를 당부했었죠. 어떤 커피들은 그런 노력을 들여야 진가를 알아볼 수 있는 걸까요.
새로운 취향을 획득하였으니 이제 열심히 좋아할 일만 남았습니다. 이번주 로스터리 커핑은 케냐 품종 특집이었는데, 코스타리카와 케냐에서 재배된 SL28, SL34와 같은 품종의 커피들을 평가했어요. 커핑하는 동안 저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마구마구 높은 평가를 날려댔죠. 커핑 후 진행한 토론에서 팀의 차분한 반응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제가 들떠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근차근 알아가야겠습니다.
케냐 커피에 대해 알면 알수록 커피 산지로서 케냐의 포지션이 참 독특하다고 생각하게 돼요.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열렬히 좋아하는 매니아가 있는 커피. 커핑 테이블에서 존재감을 자랑하는 에티오피아조차도 ‘무난’하게 만드는 강렬한 플레이버. 이런 커피를 생산하면서도 정작 국민들은 커피보다 홍차를 즐겨 마시는 세계 최대의 홍차 수출국가. Cup of Excellence의 모델이라고 알려진 옥션 시스템을 갖고도, 중개상들의 부패가 심각해 농부들의 삶이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곳. 커피 산지로서 케냐는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진 곳입니다.
그런 케냐의 커피를 좋아하냐고 물으신다면, 이제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 케냐 커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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